<와이드인터뷰> '문화人' 백산 김정옥 사기장
<와이드인터뷰> '문화人' 백산 김정옥 사기장
  • 승인 2012.10.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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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년 이어온 도자기 가업...작품완성도 위해 전통 고수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원형의 백자 달항아리가 은은한 달빛 속에서 미소 짓고 있다. 달빛에 취하고 항아리에 취할 때쯤이면 항아리가 달인지 달이 항아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항아리의 빛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아 있다. 그의 항아리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도공의 겸손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백산(白山) 김정옥(金正玉) 사기장(沙器匠)의 백자 달항아리는 그런 느낌이다.

◆ 7대째 이어온 도자기 명인 가문의 숨결

김정옥 선생의 도자기는 가마에서 나오는 순간 단박에 수백 년의 나이를 먹은 듯 조선 도예의 전통미(傳統美)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의 도자기에 스며있는 깊이감과 전통미는 결코 우연의 결과도, 그렇다고 오직 백산 혼자만의 노력의 산물도 아니었다. 7대째 조선도자의 맥을 이어온 가문의 장인정신과 백산의 전통에 대한 우직한 신념이 빚어낸 필연의 산물이었다.

백산 김정옥 사기장은 "장인은 먹고 사는 것보다 작품의 완성도에 더 목마른 법이지요. 제가 전통을 지켜온 것은 무엇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것이었지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청와대 사랑채 오픈기념 시연 장면.

백산 김정옥. 그에게는 우리나라 도자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이라는 묵직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은 한국 도자기의 적통이 그에게 있음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도공들이 일제시대 이후부터 도공의 길을 걸어왔다면, 그는 200여년 대대손손 가업으로 이어온 국내 유일의 사기장 집안 출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통적인 조선 도자기의 특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국가가 인정한 그의 정통성은 그의 유전자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가문의 유산이었던 것.

백산 김정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의 집안내력부터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손자까지 9대째 도공의 길을 걷고 있는 김정옥은 국내 유일의 조선왕실 도자가문 출신이다.

그의 집안이 도자기를 시작한 것은 1800년대 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김취정 선생이 경북 문경 관음리에서 도예의 터를 닦은 이래, 5대 김비안 선생이 광주 분원에서 왕실 도자를 빚던 조선시대 최고의 사기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 기록은 조선시대 사료에 남아 전해온다.

선친인 6대 김교수 선생 또한 일제시대 때 극소수만에게만 허락된 요장에 차출될 정도로 기예가 뛰어났다. 지금은 7대인 김정옥 선생을 이어 그의 아들인 우남 김경식이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로 8대의 맥을 잇고 있고, 그의 손자이자 우남 김경식의 장남인 김지훈은 한국도예고등학교에 진학해 9대째 가업 계승을 준비하고 있다.

◆ 순탄치 않았던 도공의 삶

김정옥 선생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도공의 길로 접어든 시기는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견뎌야 할 인고의 세월과 겪어야할 가난이 도공의 삶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의 모친은 막내 아들의 가업 계승을 반대했다.

아버지의 도자기가 좋았고 도자기 만드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졌던 김정옥 선생의 고집은 결국 그의 모친도 꺾지 못했다. 그로부터 30여년 간 부친 김교수 선생에게 각종 도예 기술을 전수받으며 도자기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그는 “문경 관음리 일대를 시작으로 지금의 주흘산 자락으로 이전할 때까지 문경 일대 능선과 골짜기 아래 묻힌 각종 도자 원료를 캐내고 실험하기 위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지요”라며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태토 선별에서 물레 연습, 일필휘지와 같은 힘 있는 운필 연습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오늘의 제가 있도록 한 토대가 됐던 것 같습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선생의 중요무형문화재 지정과 조선 도자기의 화려한 부활로 그의 명성이 국내외에 자자하다고 하지만, 한국도자기의 역사가 그랬듯 그의 인생역정도 시대적인 질곡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의 조부인 김비안이 당대 최고의 가마 기술자이자 사기 장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조선의 요업 상황이 일본인들의 하청 수준에 머물렀고, 장인들 역시 하루 품삯으로 연명해야 했기 때문에 도공의 가난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대라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 역시 현대식 대량생산과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 선조들보다 더욱 힘겨운 삶을 지나와야 했다. 그의 나이 40대 때 문경 관음리 깊은 골짜기에 묻혀있던 터전을 지금의 진안리 영남요로 옮긴 것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큰 길가에 있으면 도자기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흙이 불을 통과해야 아름다움을 얻듯이, 나의 생도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며 빛을 얻고 생명을 얻은 것이지요. 쉬운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조선 도자기의 적통이 되다.

김정옥 선생의 정통성에 대한 인정은 선조들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빛을 발한 때문이다. 성형 뿐 아니라 원료 배합과 수비, 조각, 독특한 문양 시문과 전통 가마인 망뎅이 가마와 불 땔 때 쓰는 적송 장작 등 하나의 도자기가 완성되기까지 그 많은 과정들에 손쉽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현대식 방식의 개입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대대로 이어져 온 그의 선조들의 전통방식을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다.

2006년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때 모습.
지금이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유명세를 타니 전통에 대한 고수가 조명을 받고 있지만, 그가 지금의 영남요로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도자기만 만들어서는 생활이 되지 않아 농사짓는 일을 병행해야 할 정도도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을 현혹시킬 여지가 높았던 창작도예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우직한 장인정신 때문이었다. 그는 “장인은 먹고 사는 것보다 작품의 완성도에 더 목마른 법이지요. 제가 전통을 지켜온 것은 무엇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지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냈다.

김정옥 선생이 주로 하는 작품은 분청사기와 백자로 빚은 찻사발과 백자로 빚은 다기류, 백산 선생 특유의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포도문 청화백자 항아리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에는 소박하고 정감 있는 조선시대 사대부와 장인들이 표방했던 아름다움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그가 가난과 인내의 세월을 감내하며 전통을 지켜온 이유다.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장식과 기술을 못해서가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우리 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을 그릇에 담기 위해 기교를 최소화 했습니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아니겠습니까.”

백산의 도자기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이미지가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도자기에 묻어있는 그만의 독자성이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에 대한 그의 겸손함에서 연유한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흙과 물을 잘 섞어 빚은 후 불과 바람을 전해주는 일일 뿐입니다. 사람의 역할은 작고, 자연의 역할이 크지요. 선조들 역시 도공의 채취를 억지로 도자기에 담으려 하지 않았지요”라고 운을 뗀 후, “선조들의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도자기에 녹여내고자 한 그 겸손함이 조선 백자의 순수성을 만든 것이듯, 저 역시 그런 정신을 따르려 한 것 뿐이지요”라며 도자기에 담겨있는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다.

선생의 전통에 대한 지독한 고집과 성실함은 점차 세상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 1986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계기가 돼 중요무형문화재 대상에 등록되고 학계에 알려지게 된다. 1988년 1989년 내리 연속으로 전승공예대전 특별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는가 싶더니, 1991년 도자부문 최초명장, 이후 11년의 긴 조사기간 후 마침내 1996년 도자부문 유일의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7대째 이어져온 도자 가문의 맥이 창대한 한국 도자의 맥이 된 것이다.

백산 선생의 도자기 가치는 외국에서 먼저 알아봤다. 그의 작품들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호소가와 전 일본 수상 등 미국과 일본의 전·현직 대통령과 수상 뿐 아니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달라이 라마 등 각국의 명사들이 앞다투어 소장하고 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등지의 유럽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캐나다왕립박물관, 일본과 아시아 전역의 대표적인 박물관,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가 빚어낸 도자기들이 전 세계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 여전히 목마른 일흔의 장인.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직접 흙을 고르고 물레를 돌리며 일필휘지로 문양을 그려놓는 사그라들 줄 모르는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선생은 “태어나는 순간 백년 이백년의 숨결을 머금는 유려하고 독창적인 미학을 만들고 싶고, 세대를 넘어 보존될 문화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창작의 끈을 이어가게 하는 것 같습니다”며 “앞으로도 손끝에 힘이 남아 있는 한 작품활동을 계속 할 것입니다. 제가 만드는 그릇들이 단순한 차 도구가 아니라 끝없이 성찰하고 수양하던 200년 전 조상들의 마음을 담는 민족의 틀이라는 생각으로 후대를 위해 작업을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며 청년의 열정을 비쳐보였다.

선생은 무형문화재로서 국가에서 선정한 전수장학생을 지원하고 양성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선배인 그가 후배인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궁금했다. 그는 ‘성실함’과 ‘인간성’을 꼽았다. “훌륭한 도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부터 돼야 하지요. 사람의 손끝에서 빚는 것이 도자기인데 그 사람의 됨됨이가 그 도자기에 투영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욕심을 버리고 오직 성실하고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가는 것이 장인의 길 아니겠는지요.”

단풍이 아기자기한 문경의 산하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던 어느 눈부신 가을날 만난 백산 김정옥 선생의 전통을 향한 치열했던 삶이 석지현 시인의 싯귀에 오롯이 담겨있어 옮겨보며 그와의 만남을 반추해본다.

‘흙과 불의 조화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녹여가며 우리의 옛그릇을 빚는 사람/白山 金正玉/ 白山의 도자((陶磁)여/불 속에서 갓 피어난 한 덩어리의 연꽃이며/그대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리/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경력

·1941 경북 문경 출생
· 1987 제12회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전승공예대전 입선
·1988·9 제13,14회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1991 법무부·노동부 장관상 수상, 도자부문 최초 대한민국 도예명장 선정
·1996 도자부문 유일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105 사기장 선정
· 2000 대통령상
· 2002 대한예술대상 수상
· 2005 대한민국
· 2006 제6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수상
· 1999 경상북도 문경대학 초대 명예교수
· 2003∼10 문경 전통 찻사발축제 추진위원장 역임
· 2004 일본 79대 총리 호소가와 모리히로에게 청화백자 도자기법 전수
· 미국, 태나다, 독일, 영국 등의 유명 박물관 상시전시 및 특별전 개최
· 2012 통일부주최 ‘달항아리로 남북 통일을 품다’ 통일 달항아리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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