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전문가 시대에 전문가가 없다.
<달구벌 아침>전문가 시대에 전문가가 없다.
  • 승인 2012.11.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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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묵(수성아트피아 관장)

21세기 현대를 흔히 전문가의 시대라 말한다. 무엇을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매진하면, 성공하다는 메시지다. 또한 현대는 모든 일이 복잡하게 여러 분야와 얽혀있기 때문에 그 분야에 관하여 일을 하거나 도모하기 위해서는 피상적으로 아는 비전문가가 나설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의 조언을 듣거나, 전문가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정치와 행정에서 많이 쓰인다. 그래서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어떤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그들의 조언을 듣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자 한다. 때에 따라서는 그 정책의 실행을 공무원이 아닌, 흔히 말하는,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도 한다.

최근 문화정책의 흐름을 보면, 이와 같은 전문가에 의한 전문가의 정책 집행이 많다. 일시적인 축제와 문화 이벤트로부터 영구 관리해야 하는 문화관련 기관 설립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문화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심지어 도시 브랜드 가치 제고와 같은 추상적 이념과 미래 비전 설정에도 문화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그리고 참여한 전문가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의견을 표시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정책 방향에 대한 반대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 그러한 의견이 반영되기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공무원은 행정에 대한 전문가이지, 정책의 대상인 콘텐츠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콘텐츠의 속성과 형식이 왜곡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건실하게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콘텐츠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존중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콘텐츠와 정책 실행, 즉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룸으로써 해당 분야 발전은 물론, 나아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이와 같은 아름다운 조화에 흔쾌히 응할 공무원의 인식과 자세는 나중에 논하도록 하고, 이와 같은 상생에 기꺼이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전문가는 이미 해당 분야 이해 관계자이다. 그리고 이론과 실제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전문가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날 학문 대부분은 미세화 되어 있고, 순혈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이론과 실기로 나뉘어져 있고, 이론은 이론대로 시대, 영역, 형식.... 등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실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형식과 사조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예를 들어 국문과 교수라 하더라도 현대문학 전공자는 고전문학을 논하지 않으며, 현대문학이라도 시 전공자는 소설과 희곡을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에서 바라보면 국문과 교수는 모두 국문과 교수다. 그래서 광고 카피와 같은 슬로건 혹은 비전 등을 제정하거나 심사할 때 국문과 교수가 참여한다. 차라리 광고주 경험이 있는 기업의 홍보실장이나 광고 대행사 카피라이터가 훨씬 더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술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극장을 설립할 때, 자문위원으로 연극, 무용, 음악 관련 분야 교수들이 참여한다. 그러나 연극, 무용, 음악 분야가 활용하는 극장의 형식과 내용이 서로 다르다. 연극과 무용은 중소형 극장을 사용하며, 음향의 울림보다 세트의 설치와 철거 운용이 편한 곳을 원한다. 그러나 음악은 음향의 울림이 좋은 중대형의 극장을 원한다.

또한 음악 중에서 기악을 하는 사람들은 무대 기계 장치보다 음향 반사판의 성능에 관심을 갖지만, 오페라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음향 반사판보다 장대한 무대 세트의 설치 및 운용이 가능한 무대 메커니즘이 완비되는 것을 원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연극이든 무용이든 음악이든 극장의 실제 메커니즘의 원리와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보다는 오히려 오랜 경험을 가진 음향, 조명, 무대감독들이 오히려 더 전문가이다.

그러나 하급직 직원이거나 기능직 직원에 불과한 그들을 대규모 투자가 따르는 극장 설립의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왜냐하면, 관련 분야 오피니언 리더들의 반발을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애매모한 타협이 이뤄지고, 그러고 나면 대체로 이것저것이 다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극장이 설립된다.

오늘날 문화정책 분야는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경영, 과학, 산업, 행정, 법, 복지... 등 융복합 되는 그 범위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아직 미세한 분야의 전공만 고집하고 있고, 행정은 사회적 신분이나 정치적 역학을 고려한 전문가 선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문화정책 분야 새로운 정책을 입안할 때마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이든 정책입안자이든 눈과 귀를 열고 새로운 분야와 범위로 확대하여 탐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다시 말하자면, 21세기 현대는 전문가의 시대이기는 하되, 특정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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