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인터뷰> 상백장학회 최상원 명예이사장
<와이드인터뷰> 상백장학회 최상원 명예이사장
  • 승인 2012.11.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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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때부터 머슴살이...힘든 학생에 희망 되고파"
힘들게 모든 재산 10억원 출연 포항 개인 최초 장학회 설립
“평생 모아온 재산을 의미 있고 소중하게 써야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루지 못한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후손들에게 되물림되지 않도록 하고 싶습니다. 또 포항에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지난 5월 포항지역에서 개인 최초로 상백장학재단을 설립한 명예이사장 최상백(79·사진)씨는 “부인과 함께 십여 년을 꿈꿔온 장학 사업을 통해 불우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 장차 큰 인물이 되도록 하는 작은 밀알의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상백장학재단을 설립한 명예이사장 최상원(79)씨는 "부인과 함께 십여 년을 꿈꿔온 장학 사업을 통해 불우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 장차 큰 인물이 되도록 하는 작은 밀알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1934년 4월 경주시 천군동 아동마을에서 태어난 최 씨는 어릴 때 머슴살이에서부터 미나리장사, 국화빵 장사, 뻥튀기, 건재상 등을 통해 평생 모은 재산 10억 원으로 장학회를 설립해 포항지역 사회로부터 칭송이 자자하다.

상백장학회는 지난달 24일 오후 6시 30분 포항시 웨딩케슬에서 장학재단 출범식을 갖고 포항시 관내 고교생 40명에게 장학금 수여행사를 가졌다. 이로써 최 씨는 오래전부터 꿈 꿔 왔던 자신의 숙원사업인 장학재단을 출범시켰기 때문에 더욱 뜻이 깊다.

최씨는 경주에서 6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 때까지는 천석지기 부자였으나, 점점 가세가 기울어져 당대에 이르러서는 먹고 살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3남으로 태어나다보니 학교에 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또 가족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모두가 자신의 먹을 것을 위해 일해야만 했다. 최 씨는 15살 때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당시 머슴살이 댓가로는 그날그날 주는 밥과 그해 지은 소출 조금뿐이었다. 그러나 그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신의 일처럼 부지런히 일했다.

1956년 22살 때 최 씨는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 백말순 씨와 결혼을 한 뒤 군에 입대했으며, 아내는 서울에서 콩나물 장사와 군고구마 장사로 생활을 이어갔다. 제대 후 나오는 쌀 두말과 전역비 3만원을 갖고 경주집을 떠나 포항으로 이사했다.

사업에 첫 발을 내딛었던 경주 건재사를 운영하던 시절의 최상원씨.
포항으로 이사 온 후 미나리장사, 국화빵 장사, 빵배달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한 끝에 최 씨는 포항북부시장의 4평짜리 가게에서 뻥튀기 장사를 시작했다. 비로소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포항북부시장 안에 안착하게 된 최 씨는 고되고 힘든 뻥튀기 사업을 통해 셋방살이였던 가게를 1959년 10만7천원에 매입했다.

최 씨는 북부시장 작은 방에서 6~7년간 새우잠을 잤다. 피땀 흘린 노력으로 재산이 조금씩 불어났고, 그동안 모은 돈과 경주 불국사 근처에 사뒀던 집 보상비를 합쳐 그곳에 경주건재상을 열었다.

처음에 못 몇 관, 시멘트 19포, 모래 한 차 등으로 시작한 건재사업이었지만 그는 부지런함, 성실함과 함께 장사수완까지 갖춰 사업이 나날이 번창했다. 이후 벽돌공장, 굴뚝공장을 운영하면서 사업은 날로 번창해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잡게 됐다.

최 씨가 52세가 되던 해에 경주건재상을 막내 동생에게 물려줬다. 더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욕심을 부려 재산을 더 모으면 그 돈으로 집 안팎이 시끄러울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최 씨의 이런 정신이 오늘의 상록장학회를 출범하게 했다.

비록 배우지 못했지만 80여년의 동안 쌓아온 최 씨의 성실함,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두 장학회에 담겨있다. 북부시장의 4평짜리 뻥튀기 가게에서 시작된 최 씨의 꿈은 장학회를 통해 배출한 인재들을 통해 더 크게 자라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1일 상백장학회 사무실에서 최 씨를 만나 장학회설립 동기, 설립과정, 장학회 정신, 향후 운영계획, 최 씨의 삶의 자취, 장학기금 집행 및 관리 등에 대해 들어봤다.

-장학회를 만들게 된 동기는

“내가 이루지 못한 배움의 길을 후학들에게 열어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업이 번창했을 때에도 권력이나 명예를 쫓지 않았고, 주변의 불우한 사람들이나 고향사람들, 경노당 노인들을 보살피는 등 작으나마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또한 내가 근검절약해 모은 재산을 의미 있고 소중하게 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후학 양성에 뜻을 두고 방법을 강구하던 중 지난해 가을 부인을 교통사고로 저 세상에 보낸 뒤에 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장학회 명칭을 ‘상백장학회’로 했는데

“‘상백’은 최상원의 ‘상’자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내 백말순의 ‘백’자에서 따온 것입니다. 더 깊게 설명하자면 저와 아내의 염원과 우리 부부의 삶의 정신을 전수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상백장학회 최상원(오른쪽) 명예이사장과 고인이 된 아내 백말순 여사.
-상백장학회 설립과정은

“지난 2010년 10월 장학재단 설립준비에 이어, 2011년 5월 발기인 구성 및 2012년 1월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2012년 2월 (재)장학회 설립에 대한 이사회 구성 및 (재)장학회 설립 창립총회 개최, 3월 포항교육지원청에 (재)장학회 설립신청을 했으며, 5월 경북도교육청으로부터 설립허가증을 교부받았습니다.

지난 6월 현금 10억 원을 확보한 뒤에 7월 법인명의 및 이사 감사선임 후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등기소에 등기를 완료함으로써 상백장학회가 태어나게 됐습니다.”

-상백장학회 정신은

“장학회 정신의 기초가 되는 것은 저와 고 백말순 여사의 삶의 자세인 ‘근면, 성실, 사랑, 봉사’ 4가지의 덕목에 있습니다.

-장학기금 지원금 집행이나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모든 장학기금 지원금은 신청에 의해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장학기금 지원금은 학교예산과 별도 관리해 수입과 지출내역이 명확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사업완료 정산보고는 사업이 완료되는 즉시, 그러나 계속 사업의 경우에는 익년 1월10일까지 보고토록 했습니다.

회계처리는 매년 1월1일부터 12월 31일 원칙으로 하되 당해연도 계획사업이 다음연도까지 계속되는 경우에는 다음연도 사업비에서 집행하겠습니다. 또 목적한 사업을 완료하고 정산 후 잔액이 발생될 때에는 지체 없이 (재)상백장학회로 반납시키겠습니다. 지원금은 목적 외 임의사용이 불가능하며, 내용을 변경코자 할 때에는 반드시 (재)상백장학회의 승인을 얻도록 했습니다.”

-향후 운영계획은

최상원씨가 상백장학회를 설립한 후 지난 10월 24일 첫 장학금 수여식을 갖고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앞으로 저는 상백장학회 명예이사장으로 일하게 됩니다. 올해는 4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지만 내년부터는 매년 60여명의 학생들에게 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장학회는 2013학년도부터 고교신입생 장학금 지원, 중고교 ‘성적우수자, 저소득 자녀’ 장학금을 지급하고, 2013학년도 하반기부터는 ‘체육특기자 및 예능계열 수상자 격려금, 운동부 코치 격려금’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또 2014학년도에는 포항시 항도초등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영어교육활성화, 사교육비 경감, 영어문화권 체험 등 체험주의 학습 환경을 조성코자 ‘외국어 체험센터’를 지원할 방침입니다. ”

포항=이시형기자 ls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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