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찌질 한 남자
<달구벌 아침> 찌질 한 남자
  • 승인 2012.11.1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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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대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딸 둘 가진 엄마는 해외여행 전문가가 되지만 아들 둘 둔 엄마는 갈 데 없는 처량한 노파 신세다, 잘난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 되고 못난 아들이 내 아들로 남는다, 딸 둘이면 금메달인데 아들 둘이면 목 메달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이들이 어려서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아들 둘 둔 아비로서 내 아들이 그렇겠나 하면서도 뭔가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진다.

요즘은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뭔가 결핍을 내포하고 있는 인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KTX를 타고 가는 동안 열차 이용법을 안내하는 공익광고가 객실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것을 보면 객실 안에서 마구 떠들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안전사고를 내는 역할은 대책 없는 남자 아이나 어설픈 아버지가 하고 있고, 그런 남자의 못난 짓을 말리는 역할은 한 결 같이 엄마나 딸이 맡고 있다.

직장인을 교육하는 연수원에서는 입교하는 연수생을 대상으로 교육 내용이나 시설 사용 안내 프레젠테이션을 먼저 한다. 그 영상물을 봐도 연수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강의 중에 졸거나, 연수를 방해하고 시설물을 훼손하는 모습에서는 예외 없이 남자 직원이 출연한다. 그다음 시설물에 대한 바른 사용법과 올바른 연수생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세련된 용모와 복장, 매너 있고 단정한 말씨를 갖춘 여직원이 나타나 남자 직원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준다.

교과서에 실린 삽화에 아버지는 신문을 보거나 소파에 앉아 쉬고 있고, 여자 대표인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거실 바닥에 앉아 과일을 깎고 있는 식으로 성차별적 표현이 있어서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요즘은 반대로 표현된 장면이 많아서 남자들이 은근히 불편해진 것 같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아버지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아버지가 가부장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 하는 모습은 고전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고, 요즘 드라마에서 아버지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경제적 수입이 아내보다 훨씬 떨어져 아내 앞에 우뚝 서기는커녕 보잘 것 없이 작아져서 아내의 삶에 부수적으로 매달려 있거나 아내에게 사로잡혀 사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필요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는 농담이 그대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개입할수록 문제만 더 일으키기 때문에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이야기다.

`남자의 종말’이라는 책까지 나온 것을 보면 이러한 현상이 드라마에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남성호르몬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라며 시작하는 이 책은 이미 2009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가 일자리의 절반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관리직이나 전문직에서의 여성 비율도 50%가 넘고 로스쿨이나 메디컬스쿨에도 여성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가모장제가 시작되면서 `일 하는 엄마, 집안일 하는 아빠’ 의 모델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이미 낯선 풍경은 아니다.

이런데도 여전히 여성을 먼저 배려해야 하느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학교에서 체육시험을 칠 때 여학생에게는 체력이 약하다며 낮은 기준을 주면서 변성기를 심하게 겪는 남학생에게는 음악시험에서 왜 같은 기준을 주느냐며 남학생들이 항의한다. 남자화장실에 여학생이 실수로 들어가면 애교로 봐 주면서 여자화장실에 남학생이 급해서 들어가면 변태나 치한으로 보는 것이 억울하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여성 전용 좌석, 카페, 주차장, 찜질방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여성 전용 도서관까지 나오니 어이없다는 시선도 있다.

이런 생각하다 아들 둘을 보니 다시 걱정된다. 아들이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모시는 나무꾼으로, 서울소녀를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산골소년으로, 변신한 피오나 에게 버림받는 슈렉으로, 별당아씨 업고 뛰는 머슴으로, 엽기적인 그녀에게 정신없이 끌려 다니는 견우로, 오페라의 유령으로, 일곱 난장이로 찌질 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싶은, 정말 찌질 한 생각이 든다.

물론 이야기 속의 남자에는 왕자와 기사도 있다. 그런데, 미리 얘기한 대로 그런 멋있는 남자답다던 남자는 동화보다 현실성 있는 드라마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렸고 현실에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라 사돈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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