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봉사가 우선…사회에 받은 은혜 갚아야
일보다 봉사가 우선…사회에 받은 은혜 갚아야
  • 승인 2012.11.25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윤 덕영치과병원장
/news/photo/first/201211/img_82552_1.jpg"와이드인터뷰-이재윤/news/photo/first/201211/img_82552_1.jpg"
수십여개의 단체를 맡으면서도 늘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이재윤원장은 가족과 이웃, 사회에 대한 따뜻한 인간미, ‘낭만적 사고’를 지닌 휴머니스트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직함은 늘어갔다. 흔들리는 인생 순간순간에 ‘바둑’은 나침판이 되어 주었고, 그 속에서 ‘세상의 이치도 삶의 법칙’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얼빵한 2세대’라 칭하는 국내 임플란트 기술 발전의 산증인 이재윤(李在允·61) 대구 덕영(德榮)치과 병원장. 족히 20여개가 넘는 단체의 직함을 가지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괴력의 사나이다. ‘섬김’과 ‘나눔’, ‘베품’의 3원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볼론티어(Volunteer)다. 가족과 이웃, 사회에 대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휴머니스트(Humanist)이기도 하다. 그의 임플란트 수술 5만례는 비공인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 감이다. 우리나라의 자랑이다. 한 치의 소홀함도 없는 가장(家長), 지역의 리더로 1인 다역(多役)을 마다하지 않는, 우리들 틈에 섞여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를 어렵게 만났다.

◇봉사는 ‘품앗이’,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

하얀 가운을 입은 이 원장이 걸어왔다. 금방 수술을 마치고 나온 그의 모습은 피곤해보였다. 하지만 눈빛은 형형(炯炯)했고 가슴은 넉넉해 보였다. 대뜸 이 원장은 “점심을 하면서 합시다”라고 한다. 덕영치과 내 식당으로 향했다. 잘 꾸며진 식당은 웬만한 행사를 치를 수 있을 정도다.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병원건물의 용도가 궁금했다.

“많은 일을 하다 보니 각종 행사와 회의를 우리병원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6~7층을 그런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회의실이 4개, 400명 수용이 가능한 대강당이 있습니다. 식사도 이곳에서 해결이 가능하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차원에서 구비했습니다.”

그는 여러 단체를 이끌고 있다. 대한민국 통일고문회의 고문,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 (사)전국APT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 회장, (사)대구광역시APT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 회장, (사)자연보호대구광역시협의회 회장, 낙동강숲실천본부 상임대표,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겸임교수, 대구환경미술협회 고문, 대한바둑협회 수석부회장, 대구광역시바둑협회 회장, 음식쓰레기안남기기운동회 대표, 서재초등학교 총동창회회장 등 12개의 현직 직함을 가지고 있다. 덕영치과 병원에는 이 원장이 직·간접적으로 봉사하는 단체도 입주해 있다.

봉사를 ‘품앗이’라 표현하는 이 원장은 “일보다 봉사를 우선 생각하게 됩니다. 맡은 동안 최선을 다해 남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고 한다.

그는 단체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 단체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품앗이’와 ‘사랑’은 그가 맡은 단체를 반석위에 올려 놓는데 위력을 발휘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단체가 뭔지를 물었다. 이 원장은 “애착보다는 성과라고 봅니다. 그 중 성과를 냈던 것은 국제로타리 3700지구(2001~2002) 총재와 영남대 AMP 총동창회 회장를 맡았을 때 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당시 로타리 회원을 2천240명(114%) 늘려 회원을 4천200명까지 이르도록 했다. 한 해 여성클럽을 10개 더 만들고 혼성클럽도 몇 개 만들었다. 여성클럽은 10년 동안 8개 밖에 없었으니 그가 이룬 성과는 세계적인 기록인 셈이다.

이 원장은 영남대 60주년 기념행사 때 영남대를 빛낸 사람으로 상을 받았다. 당시 한강이남에서 영남대 AMP가 가장 센 것은 이 원장 때문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이 원장은 아파트(APT) 입주자 운동의 선구자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전국APT입주자 대표회의 연합회는 대구가 출발점이다. 현재 전국연합회장과 대구시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APT 입주자 대표회의가 그동안 쏟은 노력이 아파트 입주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주체를 관리소장으로 해놓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파트는 입주민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APT 입주자 대표들의 노력으로 관리비도 많이 합리적으로 개선됐고 저렴하게 됐습니다.”

그는 입주민 편리를 위한 제도들이 입주자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한다. 주택관리사가 아니면 관리소장이 될 수 없는 것과 아파트 관리회사가 용역에 부가세(VAT)를 붙여 입주민에게 부담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사례를 들며 조목조목 소개했다.

이 원장은 “할 일이 많습니다. 법정단체가 제대로 보호받으면서 활약합니다. 곧 될 것이라 봅니다. 전체 주거 형태의 60%가 아파트 주민입니다. APT 주민이 행복하면 대한민국이 행복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한 가지가 더 궁금했다. 민족통일중앙협의회 회장으로서 그의 통일관이다. 눈빛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는 곧바로 “통일은 우리의 지상과제입니다. 통일이 되기 위해서 정부가 하면 손해입니다. 민간 주도가 중요합니다. 민간을 통해 교류협력 및 지원을 하면 북한도 받아들일 겁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현재 수많은 단체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맡고 있다. 그의 리더십이 궁금했다. 그는 리더십에도 ‘섬김’, ‘나눔’, ‘베품’ 3가지 속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NGO의 리더십은 참 힘들죠. 뭘 줄 것이 없으니까요. 직책하나 주고 일한 뒤 칭찬밖에는 줄 것이 없어요. 옛날에는 카리스마가 뛰어난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회원이 따르지 않죠. 중요한 것은 ‘겸손’ 입니다. 회원들을 겸손으로 챙기다보니 터득이 되더군요. 결국 봉사는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는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것, 윗어른을 모시는 것도 봉사죠 이것은 ‘섬김’입니다. 회원들과 시간과 마음 감성을 나누는 것은 ‘나눔’이죠.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부모, 스승, 힘 있는 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눈높이를 맞춰 하는 것은 ‘베품’이죠. 이 3가지 속성으로 끌고 가야 회원이 따른다고 봅니다”라고 강조했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민주주의, 선택의 순간에 도움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흔들리는 인생을 다잡아 준 것이 바둑입니다. 몰입하면 엔돌핀이 나오고 익숙하게 즐길 수 있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그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바둑계도 인정하는 아마 6단인 그의 바둑에 대한 ‘집중과 몰입’은 남달라 보였다.

“서서는 골프, 앉아서는 마작이라는데 고스톱은 많이 쳐 봤지만 마작은 배우지 못했어요. 골프도 하지 않아요. 유일한 취미가 바둑이죠. 초창기 바둑이 좋아 3일 밤샘으로 몸이 상할 정도로 몰입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 원장은 “바둑이 체육이 된 것은 최고의 두뇌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많고 포커나 화투보다 확률이 적고 실력으로 좌우되죠.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가 가장 선호하는 ‘자기류(自己流)’의 바둑을 만들 수 있죠. 자기 취향대로 둘 수가 있게 됩니다”라고 했다. 그의 바둑 연구와 성격 규명은 한국바둑협회 회장 때 적극 이뤄진다. 그 바쁜 일상에서도 유일한 취미에 대한 몰두와 무한 애정이 발현된 셈이다.

“첫번째, 바둑은 민주주의의 실천입니다. 돌 크기가 같고 기회가 동등하니 평등사상이죠. 바둑은 끝까지 둘 수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과학입니다. 과학은 재미있습니다. 과학은 그 시대의 진리죠. 최선의 수를 찾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선택의 기로에 빠른 결정을 내리도록 해줍니다.”

이 원장은 언제나 한 수 앞을 내다봐야 하는 병원경영에서도 새로운 사업을 펼칠 때도 바둑은 선택의 순간에 결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됐다고 강조한다.

이 원장은 저서 ‘임플란트 이야기’에서 그의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두 가지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술을 마실 때 그만 마시라고 하지 말 것, 바둑을 그만 두라고 하지 말 것’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바둑은 사색을 통해 스스로의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위안이었다.



◇나는 얼빵한 2세대…결국은 치과의사였고 봉사가 생활이 됐다.

이 원장은 달성군 서재가 고향이다. 계성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치대를 졸업했다. 병장으로 제대했다. 군의관이 아니고 헌병대에서 복무했다. 그가 치과의사의 길을 가게된 것은 치과기공사였던 형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형님 때문에 그 길을 알게 됐고, 형님이 보내고 싶어 했어요. 나는 형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치과의사가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봤습니다.”

치과의사, 사회단체장으로 살아온 이 원장의 30여년의 길은 어떠했을까. 그가 스스로를 일컫는 ‘얼빵한 2세대’, ‘뒷걸음 쳐 봐도 의사’란 의미는 뭘까.

“초등학교 때 저녁 학교 나무 밑에서 생각했습니다. 문학과 철학자가 되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형님께서 밥 굶기 딱 좋다고 하시더군요. 호구지책으로 치대를 갔는데 그때 생각한 것이 10년 정도 의사생활하고 그 다음 자유롭게 봉사하며 살려고 했습니다. 10년 지나고 ‘보리와 이빨’ 시집 등도 내고 출판기념회도 했지만 출세한 의사가 재미로 쓴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군요. 결국 뒷걸음질 치며 치과의사로 돌아오더군요.”

이 원장은 의사생활 10년 후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지만 의사의 길, 지역사회를 벗어나는 것이 힘들고, 떨치고 가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치대를 진학하고 그 때의 결심을 되새겨 ‘공부 좀 하고 산 2세대’로서 직업인으로 나눔과 봉사를 펼치며 살 것을 다짐한다.

“가난하게 태어나 사회에 신세를 졌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1세대 부모님과 고향에 빚을 지고 살았죠. 국립대학에서 공부도 했습니다. 직업으로 이 사회에 받은 것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치과의사가 아는 사람을 만나기 좋은 직업이라 좋고, 수입도 되니 봉사를 더 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인술을 펼치는 의사로, 문학가로서 생활하면서 직업과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프레임을 완성한 것 같다. 그는 “스스로 직업을 게을리 하고는 아무리 위대한 문학가, 봉사가가 되어도 소용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의 ‘성실한 직업관’은 ‘최선’이며 ‘전문가(Pro)’다. 그리고 개인의 가치와 성취의 수단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그동안 민간외교 아동미술 교류, 로타리클럽, 바둑, ‘메디시티 대구’ 의료관광 등을 통해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며 그의 세상을 넓혀왔다.

그는 ‘메디시티 대구’와 관련, “처음부터 앞장서 했습니다. 중동·중국 의료관광객 10팀을 받았어요. 치과는 한 번에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실제 효과를 내기가 힘듭니다. 대구는 두발과 성형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경비, 교통문제 등이 외국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건강이 허락되는 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었던 철학과 문학의 결실을 매년 조금씩 가꿔가고 있다.

이 원장은 “앞으로 10년 정도 지금처럼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은퇴 후 철학, 문학, 실용주의, 실학, 프로테스탄티즘 등을 공부해 존재론적 실용주의로 집대성하는 것을 마무리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수필(현실참여), 시(낭만적 사고, 개인, 봉사 등에 대해), 밀레니엄 임플란트 이야기 3개를 재구성해 묶어 볼 생각이죠”라며 웃었다.

삶의 형태가 다양해 온전히 한사람에게 받고 따라가는 것이 어렵다는 이 원장에게도 지금의 그를 만들게 한 존경하는 사람이 있었다. “멘토(Mentor)라 부르고 싶다는 사람은 4~5명 정도 있습니다. 중학교 때 은사님, 초대 로타리 총재, 국내 최고의 임플란트 권위자로 저를 지도해 주신 김홍기 박사입니다.”

대선이 있는 정치의 계절이다. 이 원장은 “현실적으로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는 아니죠. 정치는 순수한 사람이 가기는 너무 큰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제게는 봉사가 정치입니다”라며 의미있는 메세지를 던졌다.

그의 이름처럼 늘 ‘옳은 곳(允)에 존재(在’)하며 ‘낭만적 사고’가 영원히 빛을 발해 세상을 치유해주길 소원한다.

김종렬기자 daemun@idaegu.co.kr

▨이재윤 원장은 계성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구 중구에 덕영치과병원을 개원했다. 덕영치과병원은 전국 개원 치과의원과 병원을 통틀어 단일 클리닉으로는 가장 많은 치과의사 수와 규모를 자랑한다.

그는 로타리코리아 위원장, 국제로타리 3700지구 2001~2002 총재, 영남대AMP 총동창회 회장, 한국바둑학회 회장, (사)대구지체장애인 후원회 회장 등 9개 단체장을 역임했다. 또 대한민국 통일고문회의 고문, (사)전국APT입주자 대표회의 연합회 회장, (사)자연보호대구시협의회 회장, 낙동강생명의 숲 실천본부 상임대표, 대구환경미술협회 고문, 대구시바둑협회 회장, 음식물쓰레기 안남기기 운동회 대표 등 12개의 현직을 맡고 있다.

시집으로 ‘보리와 이빨’, ‘위대한 사랑은 꽃잎가를 맴돌고’, ‘비소리’를, 수필집으로 /news/photo/first/201211/img_82552_1.jpg'밀레니엄이슈(1,2,3권)’, ‘일등국으로 가는 길’, ‘낭만적 사고’, ‘자유동화’, ‘치아임플란트 설명서’ 등을 냈다. 이러한 노력으로 국민훈장 동백장, 문화체육부장관 표창 등 다수를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