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만의 문화·명소 그림에 담아 후손들에 알리고파
대구만의 문화·명소 그림에 담아 후손들에 알리고파
  • 황인옥
  • 승인 2012.11.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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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행정가의 그림전시회 시민·언론 관심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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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주 전 대구시장은 “개인의 발전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공무원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봉산문화회관에서 이목을 끄는 전시회가 열렸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으며 마지막 관선 시장을 끝으로 퇴임한 이종주 전 대구시장의 그림 전시회가 열렸던 것. 흔치 않은 일이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 잊혀졌던 퇴임 행정가가 감성적인 예술가로 다시 돌아 온 것에 대해 모두가 신선해 했다. 그림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그림을 시작한지는 5,6년쯤 됐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붓글씨를 써왔었지요. 1962년 달성공원에 세워진 석주 이상용 선생의 비문도 제가 쓴 것입니다. 당시 시인 이은상씨가 글을 지은 것을 제가 글씨로 썼지요. 그것이 도화선이 돼 구미시장 할 때 금오산에 ‘금오산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비문도 쓰게 됐었지요. 유화는 붓글씨의 단조로움을 극복해 보다 많은 것을 담아내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전 시장은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행정학과에 다니다 군 제대 후 9급인 서기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대구시 대구 동구·중구청장과 내무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포항·구미·영주시장을 지냈다. 이후 대구 부시장을 지내다 1995년 관선 마지막 대구시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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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선 시장을 끝으로 퇴임한 이종주 전 대구시장의 그림 전시회가 지난 여름 봉산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대구만의 문화와 명소를 기록하다

- 평생을 대구·경북에서 행정가로 일하셨던 시장님의 그림은 다른 작가들의 그림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인지요.

“나는 특히 대구에서 오래 일을 했습니다. 9급으로 시작해 대구 시장까지 했으니, 대구를 나만큼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구를 테마로 한 그림을 그려 대구의 문화와 명소를 남기고 싶었지요. 처음에는 해방 전후의 대구를 그릴까도 생각했지만 앞으로도 개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몰라보게 변할 곳들이 많기 때문에 현재의 대구를 남기겠다고 결심하고 ‘대구의 현재’를 그리고 있지요.”

- 전시회 기간 동안 언론들이 퇴임한 전 시장의 전시회라는 특별한 이야기거리로 많은 관심을 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반응들이었나요.

“퇴직한 행정가가 그림 전시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 같았습니다. 다들 좋게 봐 주시는 것 같았어요. 언론은 퇴직한 공직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림을 벗삼아 말년을 여유롭게 보내는 모습을 담고 싶어 했지요. 또 일반인들은 금강산이나 설악산도 좋지만 자신 가까이 있는 달성공원이나, 수성못, 동촌유원지를 보며 친근해하고 좋아들 하셨지요.”

올해로 77세. 적지 않은 나이다. 대구시 기획관리과 실장, 내무국장, 보건사회국장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일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업이 없을 만큼 이 전 시장은 대구 근대화의 산 증인이다.

- 오랜 공직 생활에서 많은 일들이 이 전 시장님의 손길을 거쳤을 텐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은 일들을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끔 지하철을 탈 때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89년 대구시 기획관리과 실장으로 있을 때 지하철 건설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 교통부, 국회, 건설부, 환경청 등 서울을 32번이나 오갔지요. 또 시민공원인 두류공원을 만들 때와 수성유원지, 팔공산 개발에 참여할 때도 애를 많이 먹었어요. 당시는 힘든 줄 모르고 오직 일만 생각한 시절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 반상회가 시장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고 하던데 맞나요.

“예. 당시 농촌의 새마을 운동은 잘됐는데 도시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때 저는 도시 가정 주부들의 역할을 눈 여겨 보고 주부들을 중심으로 한 반상회를 고안하게 됐지요. 이 아이디어가 당시 내무부 장관에게 보고되어 지금의 반상회 효시가 됐어요.”

◇미래산업을 진단하다

퇴임 후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시간이 흘렀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고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만큼 변화의 속도가 거세다. 일의 중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 한 발 물러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가 바라본 대구는 어떤 모습일까.

“대구는 입지여건이 좋지 않지요. 삼성자동차와 쌍용자동차 대구 유치가 무산된 것도 결국 입지에서 불리했던 이유였겠지요. 대구가 섬유산업과 씨름했지만 그것도 사양길을 걷고 있습니다. 현재 대구는 각종 경제지표에서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구의 새로운 미래 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구가 절망적이라는데는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상수원이나 지하철 등의 건설에 따른 빚은 차세대 사업에 따른 것인 만큼 미래세대에 의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빚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구를 인천이나 부산 등과 비교하면 안되지요. 그쪽과 우리는 입지가 분명히 다르지 않습니까. 항구도시인 부산과 인천은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만 대구는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한계 속에서 우리의 길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구시가 빚이 많다고 하지만 그 빚이라는 것도 상수원과 지하철 건설과 같은 차세대 사업에 따른 빚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빚은 아닌 것입니다.”

- 그렇다면 대구가 살기 위한 구체적인 미래 산업은 어떤 것이 좋을까요.

“앞으로 대구가 갈 길은 첨단 산업인 로봇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봇이 스마트폰 이상으로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로봇 산업을 선점하고 집중해서 대구의 미래 산업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경북은 땅이 넓어 뻗어갈 수 있는 길이 무궁무진하지만 대구는 한계가 있지요. 이런 여건에서는 최첨단 로봇산업이 적격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는 관선 마지막 세대다. 1995년 지방자치 부활 이후 각 자치단체별 열띤 투자유치 경쟁과 지역개발 사업 시도 등 중앙으로부터의 보다 높은 자치를 확립하기 위한 지방의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과(過)도 적지않게 지적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어떨까.

“옛날 박정희 정권 시절 강한 중앙집권이 있어 지금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시대가 됐어요. 시장도 지역 발전을 위한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소신있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표를 의식해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적인 행정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지방자치로 가야 하는 방향성은 맞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분명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개선돼야 할 점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시 단위의 의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구 단위는 낭비적인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대만의 장개석 전 총통도 대만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면단위만 놔두고 지방조직을 정비한 것이었어요. 국가 역량 낭비가 장 전 총통의 조직 정비 명분이었지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구 단위는 없애고 그 돈으로 개발에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방행정구역개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리더의 덕목은 시대의 변화에 맞아야

이 전 시장은 9급으로 시작해 관선시기 대구 시장이라는 지방직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퇴직 후에도 권력욕을 버리지 못하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인사들과는 대조적으로 일체의 정치활동을 접고 취미활동과 운동으로 여유롭고 넉넉한 노년을 보내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 퇴직 후 지방자치가 되면서 선거직에 대한 유혹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셨습니까.

“퇴직 후 선거 때만 되면 여기저기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저는 정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까 괴롭더라구요. 그래서 지방선거가 있을 때는 외국의 아들집에 나가 있을 때도 있었지요. 지금은 늙어서 그런지 아무도 안 찾네요. 허허….”

- 권력에 대한 욕심은 인간이 가장 끊기 힘든 욕망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과감할 수 있었습니까.

“나는 오랜 공직생활이 몸에 배인 사람입니다. 거짓말을 못하고 고지식하기 짝이 없지요. 정치인은 그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저는 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능력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지요. 지금 돌이켜봐도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민선과 관선 전환기에 대구 시장 직을 수행했다. 민선이든 관선이든 시장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같을 것이다. 그가 보는 시장의 덕목이 궁금했다.

“시장은 시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은 예산으로도 충당되던 옛날 우리 시대의 복지와 지금의 복지는 차원이 다르지요. 오늘날의 복지는 엄청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지 않습니까? 지방재정 수입은 빤한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중앙으로부터의 예산확보가 관건이겠지요. 복지 시대의 시장은 그 어떤 능력에 앞서 중앙정부로부터의 예산확보 능력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야당은 후보단일화로 선거의 흥행을 선점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당내 갈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시대마다 대통령의 덕목도 변한다. 이 시대의 요구를 가장 잘 잡아내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될 것이다.

- 현 시대의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습니까.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이지요. 이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거예요. 국제적인 금융위기도 큰 난제지요. 10년 후의 국가 경제를 내다보는 안목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북한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5년 10년 후를 점칠 수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하고 또 국민들은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퇴직 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9급으로 시작해 대구 시장까지 지낸 그의 화려한 이력은 공직자들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퇴직 후에도 절제된 삶을 보여주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그다.

◇몸을 던져 일하라

- 이 전 시장님을 멘토로 삼는 공무원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지방직 최고자리까지 올라 후배들에게는 입지전적인 인물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자신을 롤 모델로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공무원은 토,일요일은 놀고 퇴근도 비교적 제시간에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공무원에게는 ‘무한정의 근무의무’가 있었지요. 한창 근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던 만큼 언제 어디에 있든 불려나갈 준비가 돼 있었고 또 그렇게 밤낮없이 일한 시절이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지금은 과거보다 더 창의적인 공무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던질 수 있는 각오부터 먼저 돼 있어야 하겠지요. 안일한 공무원이 많으면 개인도 국가도 후퇴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지요. 개인의 발전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공무원이 큰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슬하에 두었다. 지금은 모두 출가시키고 외국 나가 비어있는 경산의 아들집에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를 불성실한 가장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그다.

- 일에 파묻혀 젊은 시절을 보내신 만큼 좋은 가장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요.

“공직생활 하면서 집안 일은 안 사람에게 맡겨두고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잘 모를 만큼 가정에는 무심했지요. 남편의 박봉으로 자식들을 잘 키워준 아내 덕에 아이들이 잘 자라 사회에서 자기 몫들을 하고 있고, 지금은 외손자 외손녀들이 장성해 미국의 유수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지요. 표현은 잘 안하지만 늘 고생한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지금처럼 그렇게 살아주면 더 바랄게 없지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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