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가의 고양이들
원룸 가의 고양이들
  • 승인 2012.12.0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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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춘자 시인
학생들 집단 주거지 원룸 가

절반도 못 먹은 고급 케이크

양념치킨 돈가스가

배달된 용기에 담겨

거리에 뒹군다

그들이 굶주린 배 움켜잡던

보릿고개 서러움을 겪었겠니?

일제강점기 혹은 육이오 사변 후

끼니 걱정 하던 부모님의

쓰라린 과거사를 알기나 하겠니?

돈 준 음식 아깝고 소중해

하루 정도 두었다, 데워먹어도 좋으련만

음식에 열기도 식기 전에

용기에 담겨 쓰레기장에 나온다

옛 시절 부잣집에서나 볼 음식들인데도

회상의 날개 펴 반세기를 거슬러 오르면

개떡 한 조각 쑥 털털이 한 소쿠리

비지 한 사발, 술지게미 한 양재기로

온 식구 허기증 메꾸던 기억

노을녘 서산마루에 서럽도록 걸리었는데

세상을 잘 타고난 원룸 가 고양이들

인심은 박해서 비록 버려졌을 그들이지만

봉지들 뜯어 젖히며 온통 포식을 한다

오동통 살이 찐 야옹이들이여

시대를 잘 만나 배불리 먹는 건 다행

쓰레기장 너무 헤집어 놓지 말아라

주변이 불결해 어이할거나.

▷▶경북 포항 기계면 출생. 현)한국시민문학협회 상임고문, 시집 : 사모곡<思慕曲>, 쌍리마을 매화향기.

<해설> 여남은 살적 보리 까끄라기 같은 삶을 산 적이 있다. 너무나 높은 보릿고개 넘기가 참 힘겨웠다.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웠으니. 왜 그때는 그렇게 먹을 것이 없었을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배 많이 곯으며 살았다. 그래도 마음은 청정했다. 맑은 공기와 개똥벌레 낟가리와 실금처럼 떨어지는 은사를 친구 삼아. 한데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 탈이다. 피둥피둥 노는 고양이도 배고픔을 모르는 세상이니 사람은 말해 무엇 하랴. 너무나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마음의 공복은 늘어가니 이 일을 어쩌랴? -제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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