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으면 내 몸은 유체이다.
아니 갑자기 뼈가 없어져버리는 연체동물이다
의자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게
내 몸은 자동적으로 변형된다
튀어나온 어깨부분에서는 내 어깨도 튀어나오고
쑥 들어간 허리부분은 내 허리가 알아서 기듯이
의자의 깊은 골 따라 알맞게 들어간다
의자에 앉으면 방금 전까지 벌판에서 펄펄뛰던
내 몸의 야성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말 잘 듣는 얌전한 애완견처럼
의자의 본에 맞춰 내 몸을 재조정한다
달리는 봉고차 의자에 앉아서
말없이 졸면서 한나절씩이나 보내야하는
나의 불규칙한 생계여,
여태 나는 내가 살아있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네
▷▶경북 의성출생. 국문학박사. 1984년 창비신작시집으로 등단. 계간 사람의 문학 발행인. 현)경북외국어대학 교수, 평론집 : 예술과 자유 외 3권, 시집 : 푸른별 외 4권
<해설> 사람은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것이 제도권이든 잘 짜인 삶의 울타리이든 그에 맞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우리의 비애와 고뇌가 있다.
의자는 고정 응시에 젖은 타성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삶에서 필수적으로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로미터처럼 우리의 일상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성을 버림으로써 야성은 자드락길로 떠나고 말며, 비로소 참 삶이 저 가을의 아람처럼 툭 터지지 않을까? 실상은 늘 존재의 가치를 잃고, 허상은 테두리처럼 의식하며 산다. 하지만 어느 날 그 허상은 기러기처럼 날아가고 우리 곁에 사부랑사부랑 묶인 느슨한 삶을 발견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