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소展 대구미술관 2전시실…2월17일까지
대구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만나고 있는 현대미술의 전위성을 지속적으로 선보여온 최병소 작가는 앞뒷면 빈틈없이 볼펜과 연필로 지운 신문용지와 거울을 활용한 공간성을 담은 설치작품, 대형 신문용지 작업의 후면을 보여주는 작업, 신문을 작두로 썰어 쌓고 흩뿌린 작업, 잉크없는 볼펜으로 그어 흠집을 낸 신문을 이용한 평면설치작업, 썰린 비닐을 이용한 설치작업 등 각기 다른 색깔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의 독특함은 재료의 일상성와 작업과정의 간결성에 있다. 재료는 인쇄된 신문이나 인쇄되기 전 신문용지이고, 작업 방식은 지우기의 의미가 더해진 볼펜으로 칠하기와 연필로 선긋기의 단순 반복과정이다. 결국 그의 작품의 키워드는 신문과 볼펜, 연필, 그리고 작가의 노동력으로 압축된다. 특히 캔버스를 대신하는 신문의 활용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함이다.
왜 흔하디 흔한 신문이었을까. 작가에게 신문은 인생역정의 파편 같은 것. “초등학교 1학년 때 6·25가 발발했다. 당시 교과서가 없어 진문용지에 교과서 내용을 찍어 사용했다. 제본소도 없어 교과 내용이 인쇄된 신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 상급생이 되어서도 읽을 것은 신문 밖에 없었다.
학창시절 문학이었고 예술이었고 세상과의 소통의 통로였던 신문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유난히 웅장한 대구미술관 전시관과 잘 어울려 보인다. 마치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 처럼. 그 깊이와 무게감은 어디서 왔을까.
첫 번째 단서는 ‘지우기와 긋기’의 의식적인 행위에 있다. 비평가들은 신문에 볼펜으로 칠하고 연필로 긋는 고유의 드로잉 작업을 1970년대 암울했던 시대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평가하고 있다. 작가 역시 이 점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암울했던 70년대의 어둡고 무거웠던 공기가 사라진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 주목받는 데는 또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처음에 지우는 행위는 시대와 연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문과 필기구의 흔적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물성으로 재탄생한 작품이 성불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며 두 번째 단서를 제공했다.
그의 성불은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일상적인 재료의 환골탈태를 의미하는 물성적 성불과 탐욕과 이기심을 벗어내는 구도자의 고행과도 같은 노동집약적인 작업과정을 통해 얻은 영적인 성불이 그것이다.
세 번째 단서는 설치가 주는 묘미다. 가벼운 질감과 대비되는 큰 규모의 작품들을 벽에 붙이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공간의 중심에 세우거나 바닥에 흩어놓는 다양한 설치기법이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원본에 없었던 공간성과 감수성이 더해졌다. 작가는 이것을 “동일한 드로잉 기법에 놓여 지는 방식에 변화를 줘 저변이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공립미술관에서의 첫 전시인 이번 전시에서는 회고전이 아닌 신작 위주의 작품으로 구성해 현재 진행형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대구출신으로 중앙대 서양화과와 계명대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대구, 서울, 프랑스 파리 등 국내외에서 20여회의 개인전과 30여회의 단체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17일까지이고 대구미술관 2전시실. (053)790-30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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