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잘 나오지 않는 볼펜
나의 잘 나오지 않는 볼펜
  • 승인 2013.01.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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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 시인
번지는 이 푸른 수액은

한 번씩 나왔다 안 나왔다 한다

눈두덩이 젖었다 말랐다 한다

비 오다 햇살 쟁쟁 내리붓는 일기처럼

수만 산 것들이 볼볼볼 춤추는 뻘을

때가 되면 다시 거둬가는 썰물처럼

나는 후둑후둑 푸른 줄기를 막 사각대다가도

미개지를 그러안는다 제법 나무가 자라고

물고기도 몇 마리 키웠다고 생각하면 느닷없이

어찌 네 음성만 내뱉느냐

눈 부릅뜨고 꾸짖는 여백의 음성

새어나오기만 하는 누선淚腺들을 어찌 믿겠느냐는 듯

내 몸이 한 번씩 머뭇대는 황홀한 곳간

방금 기다리라는 신호가 왔다

물 속 담방거리며 가던 내 심장은

눈부신 허공의 배꼽,

그 숨소릴 듣느라 두근대기 시작한다

걸어보지 않은 길 위에 나는 멈춰서 있다

버릴 수 없는 볼펜이라는 생生을 들고

▷▶1959년 경북 경주출생,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돌’, 현)경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 고요 이야기외 다수.

<해설>볼펜을 눈물샘에 비유한 이미지하며, 삶으로 인유한 비유가 상큼하다. 우리의 삶도 저 볼펜처럼 글씨가 잘 쓰일 때가 있는가 하며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인생을 마구잡이로 쓰다가 버릴 수가 있을까? 제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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