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옛 선비들의 자기교육법(4)
<대구논단> 옛 선비들의 자기교육법(4)
  • 승인 2009.04.22 16: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대구학남초등학교장, 아동문학가)

일전 대구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지영준 선수는 35km 지점에서 승부를 걸었다고 하였다. 선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라톤에서는 대개 이 지점을 사활점(死活點)으로 여기는 듯하다. 서양에서는 이 지점을 가리켜 dead point라고 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다시 살아나는 `활(活)’을 넣어 쓴다는 것이 더 의미 깊다 하겠다.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선생이 남긴 생활 수칙 한빙계(寒氷戒)의 가르침은 크게 `추위가 있거든 따스함을 준비하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을 대비하되 작은 것과 큰 것을 구별하지 말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빙계 제13조는 `주일불이(主一不二)’로서, `마음을 한 결 같이 하여 두 갈래로 하지 말라.’이다. 즉 한번 세운 뜻을 굳게 지켜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선생은 다음과 같은 해설을 붙였다.

“주부자(朱夫子)가 `경재잠(敬齋箴)’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기를, 그 의관(衣冠)을 바르게 하고 눈길을 존엄히 하라. 마음을 안정하여 상제(上帝)를 대한 듯하라. 발(足)의 모양은 반드시 무거우며 손(手)의 모양은 반드시 공손 히 하라. 땅을 가려 밟아 개미 한 마리라도 밟지 말라. 문(門)에 나서면 모두에게 큰손님을 대하듯 하고, 일을 할 때에는 제사지내는 것 같이 하라.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혹시라도 경솔하지 말라. 입(口)으로 지키기를 병마개 닫듯 하고, 뜻을 지키기를 성(城)과 같이 하라. 삼가고 삼가서 동쪽에서 서쪽을 하지 아니하며, 남쪽에서 북쪽을 하지 말라. 두 갈래로 하여 둘이 되게 하지 말고, 세 갈래로 하여 셋이 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오직 마음을 한 가지로 하여 일만 가지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다를 것 없고 겉과 속 또한 다르지 않게 하라. 조그마한 틈이라도 생기면 사욕(私慾)이 수만 가지로 일어나 불이 아니면서 뜨거우며, 얼음이 아니면서 차갑게 된다. 이에 털끝만큼이라도 틀림이 있으면 하늘과 땅, 그 자리가 바뀌고야 만다. 곧 무슨 일에나 공경함을 가져야 한다.”

하늘과 땅이 바뀐다는 것은 그 질서가 바뀐다는 뜻이니 곧 크게 망(亡)함을 말한다. 한 우물을 파서 전문가가 되어야지 이것저것 건드려서는 아니 되고, 무슨 일에나 공경함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제14조는 `극념극근(克念克勤)’으로서, `잘 생각하고 부지런히 하라.’는 수칙이다. 생각이 깊으면 행동도 바르게 나온다. 그리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에는 부지런해야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근면은 누구나 가져야 할 귀중한 덕목이다. 공부도 그렇고 사업도 그러하니 인생 자체가 바르게 생각하여 근면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제15조는 `지언(知言)’ 즉 `말을 알라.’는 것인데, 이는 말을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남겼다. “사람을 알려면 반드시 그의 말을 살펴야 한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다. 공자(孔子)는 `장차 배반하려는 자는 그 말이 부끄럽고, 마음에 의심을 가진 자는 그 말에 지엽(枝葉)이 많다.

길(吉)한 사람은 말이 적으며, 조급한 사람은 말이 많다. 또 착한 이를 모함하는 사람은 그 말이 들떠 있으며, 분수를 잃은 자는 그 말이 비굴하다.’고 하였고, 맹자(孟子)는 `편파 된 말에는 속임이 들어있고, 음란한 말에는 잘못 빠짐이 들어있다.’고 하였으니, 무릇 말이 가진 뜻을 잘 알아서 처신해야 한다.”

이 말에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에는 가려서 듣고 자기가 말을 할 때에는 함부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들어있다. 아무리 귀한 말이라도 목구멍으로 나오는 순간 때가 묻게 된다. 이는 대개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의 부족한 가치나 판단을 부풀리기 때문일 것이다.

김굉필 선생은 일찍이 이러한 폐단을 경험하고 계(戒)를 남겨 우리들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한빙계는 누구나 깊이 새겨볼만 한 가르침임이 분명하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