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길이가 중요한가?
<팔공시론>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길이가 중요한가?
  • 승인 2009.04.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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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로 (논설위원)

중국은 명나라 시대에 세워진 만리장성의 길이가 8,851㎞라고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동쪽의 산해관에서 출발하여 서쪽의 가욕관에 이르기까지 장성의 주요 노선과 여러 간선을 아울러 전체 길이를 6,300㎞로 추정해 왔는데 이번 조사를 통해서 기존보다 2,551㎞ 더 길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의 동쪽 기점이 산해관이 아니라 더 동쪽인 압록강 부근이었기 때문에 그 길이가 늘어난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의 관심은 장성의 길이가 아니라 중국의 `만리장성 보호 프로젝트’의 추진 동기에 있다.

혁명시기의 중국공산당은 만리장성이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고대 봉건지배층의 착취의 상징이라고 간주하고 파괴하였다. 하지만 닉슨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만리장성이 `달에서도 보이는 지상 최대의 인공 건축물’이라는 과장된 표현 때문에 그것은 중국의 상징이 되었고, “남자로 태어나 장성에 한번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마오쩌뚱의 휘호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새롭게 인식되게 되었다.

중국 역사에서 만리장성은 문화사적으로 유목문화와 농경문화를 가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방 이민족의 침략을 저지하는 방어선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이미 춘추전국시대부터 각 소국들이 북방 민족 특히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 성들을 이어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으로 완성하였다. 한 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만리장성을 넘어 흉노를 원정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무제 때에는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흉노를 쳐서 만리장성 멀리 몰아내기도 하였다.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하던 기간 동안 만리장성은 중국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하였다. 수나라 때 돌궐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새로 건축한 시기를 제외하고 명나라 때까지 수백 년 동안 만리장성은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그 사이 만리장성 주변에는 5개의 북방민족이 세운 16개의 나라들과 거란족의 요(遼)나라, 여진족의 금(金)나라가 잇달아 세워졌다. 칭기즈칸의 세계정복 이후 원(元) 나라를 세운 몽골족의 지배 기간에도 만리장성은 보이지 않았다.

몽골로부터 독립한 명나라는 계속되는 몽골의 위협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또 만주의 동북지역에서 강성해진 여진족을 막기 위해 요동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성곽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이후 명나라를 정복한 여진족의 청나라는 명나라가 구축한 진지들을 연결하여 물길을 내고 버드나무를 심고 목책을 둘러 류조변(柳條邊)이라는 방어선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자신들의 성지인 심양(瀋陽)을 보호하는 경계로 삼았다.

류조변은 그 형태와 구조가 기존의 만리장성과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에 중국 역사가들도 과거에는 장성과 달리 취급하였다. 이 류조변을 따라 옛 고구려 유적이 다수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이 류조변이 이번 조사에서 만리장성에 포함되면서 많은 고구려 성곽 유적이 장성의 일부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단동의 호산(虎山)산성 역시 고구려 산성인 것이다.

`만리장성 보호 프로젝트’의 하나인 이번 조사가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 정부의 입장과 관련된 작업일 가능성이 높다. 또 이번 조사의 배경에 56개의 민족으로 하나의 통일국가를 유지해야 하는 중국의 현실적 필요성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반도의 44배나 되는 넓은 땅을 갖고 있기에 스스로 대국이라고 자부하지만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을 하나의 국민으로 아우르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만리장성으로도 세계 문화유산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요동지역을 넘어 압록강까지 그 노선을 연장시킨다고 해서 만리장성의 명성이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만리장성을 확장시키려는 중국의 시도는 한국 고대 역사의 왜곡이라는 논쟁의 불씨를 키우는 결과만 초래할지도 모른다.

일본과의 영토분쟁을 두고 “지금 해결하기 어렵다면 잠시 미뤄두었다가 다음 세대가 해결하게 하고 지금은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논의하자” 라고 했던 덩샤오핑의 자세가 지금 중국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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