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권력형 비리의 반복·순환과 간충
<팔공시론> 권력형 비리의 반복·순환과 간충
  • 승인 2009.04.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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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한국에 대통령제라는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된 이래 정치권력, 특히 대통령과 관련된 게이트급 비리가 끊임없이 반복·순환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거의 예외 없이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게이트가 발각되고, 전직 대통령 또는 전직 대통령 친인척이 구속되고 재판을 받았다.

권력형 비리의 발생경로를 따라가 보면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비밀스런 금품수수 수법과 경로, 복잡한 인적 네트워크, 뻔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이권개입과 청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권력형 비리의 반복과 순환은 숙주에 기생하여 영양분을 흡수하고 안식처를 제공받는 그러나 위험부담 또한 안고 있는 간충의 순환경로와 너무나도 유사하다.

간충(Fasciola hepatica)은 양의 간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다. 이 간충의 생명 순환은 자연계의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간충은 양의 간에 기생하며 혈액과 간세포로부터 영양을 흡수하여 성충이 된 후, 양의 간에 알을 깐다. 그러나 알들은 양의 간에서 부화할 수 없다. 하나의 대장정이 알들을 기다리고 있다.

간충의 알들은 양의 대변과 함께 양의 몸 밖으로 나옴으로써 안락한 숙주를 떠나 춥고 황량한 바깥세상을 접한다. 한동안의 성숙기를 지난 알들은 부화하여 작은 애벌레가 된다. 그런 다음 새로운 주인이자 먹이인 달팽이에게 먹히는 것을 기다린다.

간충의 애벌레는 달팽이의 몸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한다. 달팽이의 몸속에서 어느 정도 성장하여 우기에 달팽이가 내뱉는 끈끈물과 함께 밖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이맘때쯤은 양의 몸에서 배출된 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해 있다. 이 간충에게는 다음의 여정이 준비되어 있다.

달팽이의 끈끈물은 하얀 진주송이 모양으로 개미들을 유혹한다. 이 트로이의 목마 덕으로 간충들은 개미의 몸속으로 침투한다. 일단, 개미의 몸속으로 침투한 간충들은 개미의 갈무리 주머니에 오래 머물지 않고 수 천 개의 구멍을 뚫고 나온다. 그러고는 그 소동으로 개미가 죽지 않도록 견고한 풀로 구멍을 메운다. 최종 목적지인 양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미를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간충의 애벌레는 이제 성충이 되기 위해 양의 간 속으로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간충의 성장주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충의 애벌레 앞에는 가장 힘든 마지막 관문이 놓여있다. 개미의 몸속에서 벌레를 잡아먹지 않는 양의 몸으로 어떻게 침투할 것인가?

간충들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양들은 선선할 때 풀의 윗부분을 뜯어 먹는다. 그러나 개미들은 따뜻할 때 굴에서 나와 풀뿌리의 선선한 그늘아래만 돌아다닌다. 시간도 장소도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어떻게 양과 개미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하고, 양이 어떻게 개미를 잡아먹게 할 것인가?

간충은 개미의 몸 안 여기저기 흩어짐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가슴, 다리, 배에 각각 십여 마리씩 들어가고, 뇌에는 가장 똑똑한 한마리만 침투한다. 특히 뇌로 침투한 간충이 핵심적 임무를 수행한다. 간충의 애벌레가 개미의 뇌에 뿌리를 박는 순간부터 개미의 행동에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힘없는 애벌레가 큰 개미를 조종하게 된 것이다.

간충에 감염된 개미들은 모든 일개미들이 잠든 밤에 개미집을 떠나,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로 나간 다음, 풀줄기 윗부분에 달라붙는다. 그렇다고 아무 풀에나 마구 올라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양들이 가장 좋아하는 개자리와 냉이에 올라간다. 개미들은 거기서 뻣뻣이 굳은 채로 풀과 함께 양들에게 먹히기를 아침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아침이 되고 따사로운 기운이 다시 찾아오면 양들에게 뜯어 먹히지 않은 개미들은 자기의 뇌를 다시 통제하고 자유의지를 되찾는다. 이때 개미들은 자기가 왜 풀줄기 꼭대기에 올라갔는지 의아해 한다. 그런 다음 개미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되풀이 한다.

그러나 다시 저녁이 오면, 개미의 뇌를 점령한 간충이 움직일 시간이 된다. 개미는 자기처럼 간충에게 뇌를 점령당한 다른 많은 개미들과 함께 몽유병 환자처럼 풀줄기 꼭대기로 올라가 양을 기다린다. 결국 간충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고, 생명의 순환주기를 완성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러나 볼테르가 말했듯이, “인간이 반복하지만 않으면, 역사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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