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날 오라하네…마음의 짐 내려 놓으라고
길이 날 오라하네…마음의 짐 내려 놓으라고
  • 황인옥
  • 승인 2013.02.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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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생명, 자연의 속살 대할 수 있는 길

칠서~안동…5번 국도의 강력한 유혹

추억의 길을 거닐다, 5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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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국도 안동 입구 전경.
소통을 말한다. 불통의 시대라는 반증이다. 권위와 교만으로 점철된 저 편 끝과 상실과 체념이 일상화된 이 편 끝이 서로 등을 돌리고 내달음 치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등 돌리고 달릴 수만은 없다. 서로 등 돌리고 극단으로 치달으며 파멸로 가는 것은 ‘사랑하라’는 신의 섭리에 반하는 행위다. 함께 만나 등부비고 살라는 숙명을 안고 동시대에 태어난 우리가 아닌가. 어디서 만나 소통을 말해야 할까.

방법을 모르거나 미숙하다면 길에게 물어보면 된다. 따지고 보면 길만한 소통의 대가가 없을터다. 수 억 만년의 세대를 이어준 것도 길이었고,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며 화통(化通)하게 한 것 또한 길이었다. 사람과 사람, 집과 일터,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 이 모두가 길이 한 일이다. 인간에게 길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마치 공기와도 같은 그런.

소통에 동맥경화가 생기거나 인생이 발길을 붙잡으면 소통의 명의(名醫), 소통의 달인(達人) 길에게 물으면 된다. 길이 길을 일러줄 것이다.

너른 들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다 마침내 큰 물줄기를 만나면 강줄기를 따라 굽어지기도 하고, 야트막한 산 고개가 발길을 막으면 산 속 생명들이 걸어오는 작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쉬어가는 것이 길이다. 어떤 경우에도 분쟁과 갈등이 끼어들 틈은 허용치 않는다. 막힘없는 유연한 소통, 그것이 길의 본성이며 길이 베푸는 덕(德)이다.

보들보들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소통으로 길이 품은 사연은 얼마이며, 길이 내어 준 품은 또 얼마였던가. 그 넓이와 깊이를 우리는 감히 가늠하지 못한다. 그 길이 들려주는 넓이와 깊이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났나. 그들이 길에서 길어 온 지혜와 깨달음으로 우리는 또 얼마나 풍요로웠던가. 여기 길에게 인생을 묻기 위해 길 떠난 또 한 사내가 있다. 철학자도 예술가도 구도자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내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금속을 전공했단다. 금속도 철을 다루는 일이니 만족한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연신 날려대는 그런 순한 사내다. 그의 봇짐속에 들어있는 단단하고 차가운 쇠를 다루는 작은 철강관련 회사의 CEO는 그가 길에서 내려놓고 싶은 짐꾸러미다.

이 사내의 나그네 기질의 내공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자신의 집에서 왕복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짧지만 짜릿한 여행을 한 경험이 초등학교 4학년 때라고 한다. 중학교 1 학년 때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서울역에서 부산행 완행열차를 타고 1박4일 동안 여행한 화려한 이력도 있단다. 엄마 치마폭을 붙잡고 늘어질 청소년기에 이 사내는 세상을 품으려 했던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가슴 콩닥거림이 불혹을 지나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스물스물 올라와 다시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났단다. 어디론가 집시처럼 떠나고 싶은 역마살에 주말을 이용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길은 그 자신을 닮은 외유내강의 국도다. 땅과 생명과 자연의 내밀한 속살을 온전히 대할 수 있는 길이 그에게는 국도였던 것이다. 접근성과 편의성을 고려해 그가 살고 있는 5번 국도를 코스로 잡았다.

2011년 1월부터 그의 5번 국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칠서, 영산, 창녕, 현풍, 대구, 의성, 안동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 5번 국도를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길이 품고 있는 고분도 만나고 도시도 만나고 석탑도 만났다. 둑을 보며 걸었고, 산을 지나 걸었고, 부처를 만나며 걸었다. 5번 국도에는 그렇게 정겨운 강과 산과 부처와 예수와 소박한 산하보다 더 소박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가 걸었던 풍경과 사람과 유물과 공기가 책 속에 담겼다. 절마다 다른 일주문, 불이문, 천왕문을 비교하는 저자의 유식함이 책갈피마다 가득하다. 출발하기 전에 철저하게 경로를 짜고 사전조사를 미리 한 그의 부지런함과 깔끔함이 그의 책 곳곳에 정리돼 있다. 5번 국도를 걷노라면 몸도, 마음도, 눈길도, 세월의 무게도 새털처럼 가벼워진다고 그가 말한다. 야들야들한 봄, 5번 국도의 강력한 유혹에 못이긴척 넘어가보는 것도, 인생의 한 때 말랑말랑한 감성하나 들어앉을 여유가 됨직 하지 않을까.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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