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성초 만나 통풍 완치…고통받은 이들에 알리고 파”
“어성초 만나 통풍 완치…고통받은 이들에 알리고 파”
  • 김종렬
  • 승인 2013.03.06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업인> 김원수 미산농장 회장

20대 사업 시작해 성공·실패 연거푸 경험

40대에 얻은 병, 1년간 어성초 먹고 회복

직접 재배·연구 통해 90여가지 제품 출시
/news/photo/first/201303/img_91317_1.jpg"김원수회장-어성초/news/photo/first/201303/img_91317_1.jpg"
김원수 회장은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에 ‘통풍’으로 10여년을 고통속에서 살았다. ‘어성초’를 만나 통풍을 극복했다는 그는 어성초의 효험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릴적 삶이 너무 팍팍해 거창한 꿈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고향을 등지고 객지를 떠돌며 십수년을 악다구니로 살았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질곡의 세월에서 남은 것은 ‘통풍’뿐이었다.

 영광의 상처쯤으로 치부하기에는 고통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통풍에 좋다는 것은 모두 찾아 먹었지만 정성에 비해 약효는 없었다. 진통제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그때 유일하게 효험을 본 것이 ‘어성초(漁腥草)’ 였다.

 어성초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돼 지금은 어성초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어성초의 산증인 김원수(62) 미산농장 회장을 최근 만났다.

◇세상에 왔다가는 인생, 가진 것 후손들이 혜택을 봤으면….

미산농장에는 기념관이 있다. ‘김해김씨 삼현파 미산문중기념관’이다. 본관이 김해(金海)고 파가 삼현파(三賢派)인 김원수 회장이 후손들에게 ‘뿌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뜻을 살리기 위해 수년간 조사해 완성된 것이다.

이 기념관은 2002년 3월 자신의 호(號)인 미산(微山)을 딴 미산문중을 설립한 뒤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웬만한 재벌가 창업주나 최고 권력자의 기념관은 봤지만 이제 막 문중을 연 문중기념관은 생소함 그 자체였다. 미산문중을 연 동기가 궁금했다.

“인생을 살다보니 영원히 가는 것이 없더군요. 문득 죽고 나서도 영원히 가는 것이 뭘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죠. 역사 이래 종교는 씨앗을 뿌렸고 많은 것을 전했어요. 인간도 대(代)가 끊어지지 않는 한 씨족은 이어 지더군요. 세상에 왔다 가는 인생, 후대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뭔가 남기고 보존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미산문중을 설립한 뒤 상당액의 개인자산을 문중재산으로 이전 시켰다. 현재 그의 손자·손녀들이 유아 보조비와 학비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후대의 자손들도 출생, 교육 등의 복지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처음 주변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어요. 제가 죽고 나면 재산관리가 문제란 것이었죠. 그래서 이들에게 설립 사례를 보여줬죠. 모두가 이해를 하더군요. 개인 재산이 아니니 설립 취지에 따라 지속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죠.”

그는 문중들이 싸움이 날 때 나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라고 강조한다. 미산문중 설립은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자식들은 섭섭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죠. 처음 집사람의 반대가 심했지만 계속 설득하니 찬성을 하더군요. 가족들에게 문중 것에 욕심을 갖지않겠다는 다짐 받았습니다.”

그는 고향(성주군 선남면) 시골집도 문중 앞으로 돌렸다. 이곳 820여㎡(250평)에 문중제실, 쉼터 등을 지어 시골공원처럼 꾸며 동네 어른들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news/photo/first/201303/img_91317_1.jpg"[와이드인터뷰]김원수회장/news/photo/first/201303/img_91317_1.jpg"
김원수 회장은 자식들에게 뿌리의 소중함, 조상의 가르침을 잊지말것을 강조한다. 김 회장은 상당한 개인재산을 미산문중으로 이전시켜 그 자산을 토대로 후손들이 많은 혜택을 받도록 했다. 김 회장이 미산문중기념관에서 문중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어성초’야 고맙데이~

어린시설 못 살아 큰 꿈이 없었다는 김원수 회장은 20대 중반부터 첫 사업을 시작하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15여년을 뛰어 오다보니 성인병이 찾아왔다. 통풍도 겹쳤다. 쉼 없이 달려온 인생, 후회는 없었지만 병 앞에 그는 한없이 약해졌다.

“1990년대 초니 한참 일할 나이인 40대죠. 그때부터 10여년을 통풍을 앓았어요. 그때 살면 뭐하나. 고통이 심해 죽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대구 섬유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70년대 후반 양말사업에 뛰어들었다. 기계 2대로 시작한 그의 양말공장은 140대로 기계가 늘어났다. 내수로는 대구지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규모로 키웠다.

90년대부터 섬유 침체기가 시작되자 양말산업도 어려움에 처했다. 마스크 제조에 뛰어들었지만 고전했다. 이후 스판테스 양말 실 가공공장을 운영하며 전국으로 판매망을 늘여갔다.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지만 업체의 연쇄 부도로 40~50억원대의 타격을 입기도 한다. 그후 다시 유통사업과 부동산 임대업으로 재기한다. 하지만 그에게 닥쳐온 ‘통풍’은 자신감을 조금씩 꺾이게 했다. 병원을 찾았지만 어렵다고 했다. 병에 좋다는 것은 무조건 찾아 복용했지만 큰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이웃으로부터 ‘어성초’를 알게 됐다. 그는 어성초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

“갑작스럽게 찾아 온 통풍으로 손마디는 물론 관절마다 콕콕 쑤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였으니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합니다. 어성초를 소개받고 5~6개월 먹으니 진통제를 안 먹어도 될 만큼 몸이 가벼워졌어요. 그때부터 1년을 더 먹었더니 병세가 거의 회복이 되더군요.”

그는 이때부터 어성초를 분양받아 고향 성주 텃밭에 심었다.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왔다. 이맘 때 그의 아내도 무릎연골 수술을 해 다리를 절었는데 어성초를 먹은 뒤 호전이 됐다.

“그때부터 어성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대구 약전골목을 찾았고, 한약서적 등을 구입해 연구를 했죠. 어성초를 건강원에서 달여 제가 운영하는 유통 매장에 내놓아 봤어요.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구매하더군요.”

◇‘어성초’에 푹 빠져 새로운 인생 살기로 결심

‘어성초’는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어성초로 인생을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적합한 위치를 찾아 나섰죠. 도심과 가까운 달성군 하빈면에 땅을 1천322㎡(400평) 샀어요. 시골을 떠나 줄곧 사업만 하다보니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죠. 이곳에서 수확한 어성초가 하나 둘 팔려갔어요. 무엇보다 어성초의 효능을 본 사람으로 확신이 있었기에 행복하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죠.”

그는 어성초를 심고 수확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대학연구소와 임상 연구 등에 온 힘을 쏟는다. 어성초 재배 부지를 추가 매입해 3만3천여㎡(1만평)이 넘는 농장을 일궜다. 그리고 2008년 11월 미산농업법인를 설립하고 사업 확장에 나선다. 김 회장은 규모 면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크다고 말한다.

“처음 4년 동안은 연구와 임상 등에 집중했어요. 연구와 제품개발비 등으로 30~40억원이 투입됐지요. 그 결실로 어성초, 삼백초, 개똥쑥 등 3종류 90여가지 제품들을 출시하게 됐어요.”

그는 어성초를 다양한 제품에 접목하기 위해 ‘증유액’을 개발했다. 이 증유액은 미산농장만이 갖고 있는 기술이라 말한다.

최근 지상파방송을 통해 ‘천연항암제 개똥쑥을 아시나요?’가 전파를 타자 미산농장의 서버가 다운될 정도의 고객 문의가 쇄도하기도 했다. 매스컴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미산농장은 어성초 차(티백), 어성초 효소액 등 식용제품과 피부질환 개선에 도움이 되는 비누와 샴푸 등의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똥쑥·어성초·삼백초를 고농축해 만든 ‘암뚝생칼국수 면·수제비·쌀떡국’을 출시했다. .

그는 약초재배를 위해서는 깨끗한 환경과 청결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미산농장은 유기능 인증을 받은 농장입니다. 지하 170m의 암반수로 약초를 재배하죠. 농약도 쓰지 않고 사람들이 직접 낫으로 수확합니다. 이런 농장관리로 대구시 친환경 농축산물 명품 8호 인증과 참달성 달성군농특산품 인증 등을 받았습니다.”

김 회장의 ‘약초에 대한 약효 자랑’은 끝이 없다. “원자폭탄으로 죽음의 땅이 됐던 일본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새싹이 돋아난 것은 어성초와 쑥으로 알려졌죠. 이것은 어성초의 강한 생명력과 해독작용이 뛰어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아닙니까. 어성초는 1주일만 꾸준히 먹거나 몸에 바르면 효과가 나타납니다. 특히 피부병이 있거나 배뇨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좋습니다.”

◇도시농업 활성화…손톱 밑 가시뽑기 우선돼야

김 회장은 농장 앞을 공원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3천300여㎡(1천평) 규모의 ‘미산약초동산’, ‘지역민의 쉼터’를 조성하고 있다. 또 올해 달성군체험농장, 대구시티투어 지역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대구지역의 체험관광 명물로 키우겠다는 각오다.

현 달서소방서 행정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달서구 구조대원 330명을 대상으로 수천만원 상당의 ‘어성초’를 제공했다. 연기를 가장 많이 마시는 구조대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에서다. 향후 지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어성초’는 김 회장의 사회봉사 도구다. 그는 인근 주민들과 지체장애인들에게 10여년간 기부를 지속하고 있다.

10여년간 농사를 짓고 있는 김 회장은 그린벨트에 묶여 있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도 전했다.

“미산농장은 그린벨트 지역이라 어성초, 삼백초 등을 재배하기에 좋은 청정 지역이죠. 하지만 그린벨트에 묶여 ‘임시 가설판매대’ 하나도 설치 못합니다. 무분별한 개발방지의 목적을 위해서지만 신청부서는 가설건축물로 신고하라는데 허가부서는 못해주겠다는 행정이 이뤄지고 있죠.”

그는 지역 특산품 명품인증제도 중요하지만 지역 특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중요하다고 한다. 마케팅을 위한 ‘장소 제공’, ‘공공기관 선물 구매’, ‘지역 수목원·공원 등에 지역명품 판매대 설치’ 등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도시인근 농업 육성을 위한 ‘손톱 밑 가시뽑기’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그의 또 하나의 사회봉사는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전통역사 교육’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널리 알려진 문중의 어르신들을 모셔 ‘문중기념관’에서 교육봉사를 잇겠다는 각오다.

김원수 회장은 “어성초와 삼백초는 야생에서 볼 수 없습니다. 어성초는 5월 말~6월 초에 하얀 꽃이 피죠. 삼백초는 잎 세개가 흰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7~10일 지나면 새파랗게 변합니다. 이 신비하고 버릴 것 없는 약초도 구경하고 그 효능을 모두가 느꼈으면 합니다” 라고 소원을 전했다.

김종렬기자 daemun@idaegu.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