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놓인 쇳덩이들…‘여기가 내 집’
자유롭게 놓인 쇳덩이들…‘여기가 내 집’
  • 황인옥
  • 승인 2013.03.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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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기칠 연작 시리즈 ‘거주’…31일까지 봉산문화회관

공간 속 엄격한 질서와 균형 ‘눈길’

“삶과 예술은 동일” 작가 해석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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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칠의 작품 ‘거주’
봉산문화회관 전시실에는 조각가 이기칠이 제작한 27개의 각기 다른 형태의 쇳덩이들이 3열로 도열하듯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작품에 무게감을 빼면 두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안정감이 느껴지는 규모들이다.

대동소이한 크기와는 대조적으로 작품의 형태는 각양각색, 작품이 놓여진 방식은 자유분방하다. 27개의 작품들은 뒤집거나 비틀거나 거꾸로 세우거나 어떻게 놓아도 처음부터 그 자리의 주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공간 속으로 흡수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를 가진 27개의 조형물과 자유분방한 놓여짐 사이에서 파생될 수 있는 부산함은 공간의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한 고요와 성스러움마저 감지되고 있다.

어떤 장치가 숨겨져 있을까. 전시장에는 작품과 작품이 진열된 진열대가 전부다. 마음을 곧추세우고 진열대를 찬찬히 둘러본다. 동일한 진열대와 진열대가 정열하는 방식에 부여된 엄격한 질서와 규칙이 단번에 눈길을 잡는다. ‘자유와 질서’의 ‘조화와 균형’, 이것이 이 특별한 전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화와 고요의 근거였던 것이다.

조각가 이기칠의 연작 시리즈인 ‘거주’에도 ‘조화와 균형’이라는 전시장의 구성방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안과 밖, 예술과 사회, 정주와 탈주 등의 상반된 개념들을 서로 이질화하기보다 손바닥의 앞·뒷면처럼 하나로 포섭하는 그의 예술적 태도가 작품들에 오롯이 반영되고 있다.

작가는 “모든 여행은 돌아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최초의 정착지가 없었다면 떠남도 없었을 것”이라며 “거주에는 정착과 떠남이 서로 다름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얘기가 들어있다. 이 개념은 예술과 삶이라는 개념에도 적용된다. 삶과 예술이 따로 일 수 없다는 것”이라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결과물이 ‘작품’인이다. 이처럼 삶의 방법과 작업의 방향은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 ‘거주’에 담긴 의미다”고 설명했다.

거주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 외에도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등 보다 다의적인 개념도 함께 포섭돼 있다. 그는 “내가 예술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조각가로서 나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나는 보다 적극적인 가담자라고 생각한다. 작업을 통해 공간에 대한 화두를 사회에 던지고, 던져진 나의 생각들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주’는 작가의 최근 연작이다. 모태는 ‘작업’과 ‘작업실’로부터 시작됐다. 최초의 주제였던 ‘작업’이 자연석에 행위를 가하는 그야말로 ‘일(WORK)’의 개념이었다면 ‘작업실’은 보다 확장된 개념이다. 작업실을 간절히 염원했던 작가의 열망이 물성화로 나타난 결과물이이었던 것이다. ‘작업실’에는 개념의 확장과 함께 자연석에서 주물로 변화한 재료의 진화도 더해졌다.

‘거주’ 시리즈는 개념의 확장이 한층 깊어진 결과물로 보다 추상적이다. ‘작업실’ 시리즈가 주물덩어리로 빈틈없이 채워진 개인적인 공간을 의미했다면, ‘거주’ 시리즈는 공간 속을 비우는 방식을 통해, 삶 안으로 향하려는 지향과 밖으로 현실 거리를 유지하려는 균형적 시각을 동시에 추구한다. 31일까지 기억공작소. (053)661-308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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