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번 돈은 ‘사회의 것’ 더불어 사는게 진짜 행복”
“내가 번 돈은 ‘사회의 것’ 더불어 사는게 진짜 행복”
  • 승인 2013.03.2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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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人> 여성원 국제로타리3700지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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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로타리 3700지구 여성원 총재는 로타리안들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봉사를 거듭 강조했다.
목원(牧源) 여성원(呂成源) 국제로타리3700지구 총재(2012년~2013년)는 어릴 때부터 ‘아낌없는 봉사’로 무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에서 태어난 여 총재는 한학을 공부하신 할아버지(여계중)로부터 천자문과 명심보감 등을 배우면서 ‘사람의 도리’를 먼저 생각하며 성장했다.

작고하신 조부는 여 총재에게 ‘항상 주머니를 비워라, 그래야 그 주머니에 다시 채울 수 있다.’는 나눔의 가르침을 주셨고 그것이 그를 지탱하는 삶의 철학이 됐다.

여 총재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주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아낌없는 봉사를 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면서 성장했다”고 돌이켰다.

어린 시절 한학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의학에 관심이 가지게 됐으며 대구 달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원광대학교 한의과를 진학했고 한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에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름을 건 ‘여성원한의원’을 개원했다.

이후 1987년에 대구반월로타리클럽에 가입, 로타리안으로서 본격적인 봉사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여 총재는 ‘여성원한의원’ 간판을 내 건데 대해 “당시 이름을 건 한의원을 개원한다는데 대해 주위에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더욱 책임감 있게 환자를 진료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하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내 이름을 건 한의원 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여 총재의 평소 절제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3월 초순 대구파티마병원 옆에 위치한 ‘여성원한의원’에서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낸 여 총재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 내원한 환자들을 돌보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여 총재는 “아픈 몸으로 한의원을 찾은 환자들은 원장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미소에서도 큰 힘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찡그릴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아들(환국)과 딸(정민) 중 한명이라도 자신의 뒤를 이어 한의학을 공부해 줄 것을 기대했지만 둘 다 경영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단다. 섭섭하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환국씨는 미국 위시콘신대학원에서 공부 중이고 정민씨는 일본 사학의 명문 게이오대학을 졸업했다.

여 총재는 “자식들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주위의 어려운 이웃과 보조를 맞추고 함께하는 봉사의 정신만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봉사에 대한 정의를 하신다면?

“내가 여유가 있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하더라도 조금 더 아껴서 주위에 도움이 되는 일(봉사)을 한다면 이 또한 내 마음에 행복을, 생활에 활기를 주는 행복한 삶을 이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봉사는 타인에게 물질적, 정신을 도움을 주지만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봉사는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로타리안의 봉사의 가장 기본은 ‘자기 직업에 대한 높은 도덕적 윤리’ 입니다.

자기 직업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이는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의 것이며 도덕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 정리 된다면 자연스레 직업을 통한 봉사를 실천하게 되죠.

내 직업을 통한 이익은 나의 직업과 연관되는 공급자, 직원, 소비자와 함께 나눠야 밝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나도 살고 너도 살자’ 즉 더불어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로타리에서는 이것을 직업봉사라고 합니다. 다른 봉사단체에서 찾아보기 힘든 부분입니다.

우선 나의 직업에 대한 엄격한 도덕적 윤리가 필요하고 이것을 토대로 나아가서 사회봉사, 더 나아가서는 국제봉사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평생봉사의 롤 모델이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항상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봉사를 해야 하는지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대학 졸업 후 평소 존경해 왔던 김병탁 원장님의 병원인 제중한의원에서 근무할 때입니다.

한의대 단짝의 부친이었던 김병탁 박사님의 끊임없는 봉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아침부터 밀려드는 엄청난 환자를 보면서 원장님께서 상당한 재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작 당신의 아들이 한의원을 개원할 때 마땅히 개원할 건물조차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지만 답을 바로 찾았습니다. 로타리안이었던 원장님은 수익의 대부분을 주위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쓰셨던 거지요. 그래서 정작 본인이나 가족을 위해 쓸 돈은 넉넉하지 않으셨던 거죠.

로타리를 통한 봉사 외에도 어려운 이웃에 대한 무료진료는 기본이고 학비 지원과 연탄, 쌀 등 생필품을 수시로 나르면서도 항상 넉넉한 웃음을 띄신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김병탁 원장님의 이웃을 향한 무한봉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면서 저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로타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대구반월로타리클럽은 국제로타리 3700지구에서 중견 클럽으로 봉사의 마인드를 지닌 회원들이 많았습니다. 1987년 당시 클럽 회원이었던 친구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아들에게 회원자격이 승계되면서 친구와 함께 가입을 권유 받았습니다.

평소 진정한 봉사단체로 생각해온 로타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때라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가입하게 됐습니다.

이후 2004년~2005년 대구반월로타리클럽 회장, 2005년~2006년 국제로타리 3700지구 물보건기아 완화 코디네이트, 2007년~2008년 국제로타리 3700지구 총재보좌역, 2008년~2009년 국제로타리3700지구 연수리더, 2010년~2011년 국제로타리 3700지구 차차기총재, 2011~2012년 국제로타리 3700지구 차기총재를 거쳐 2012년~2013년 국제로타리 3700지구 총재로 활동 중 입니다.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재능기부 등을 통한 봉사를 하고 있지만 로타리에 가입하면서 더 효율적인 봉사를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국제로타리 3700지구 총재로서 지구운영에 새롭게 도입한 방침과 성과를 꼽으면?

“역대 총재님들께서 잘 해주셔서 특별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보다는 기존의 좋은 제도를 계승 발전시키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는 총재가 되면서 특히 로타리안의 직업에 대한 높은 도덕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로타리안’ 하면 사회에서 존경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자아 인격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 직업봉사를 역설한 거죠.

두 번째로 로타리안들이 로타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공부하고 정신적 재무장을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로타리는 로타리만의 봉사 철학이 있습니다.

아드 프레드릭 쉘던의 봉사철학을 알아야 진정한 로타리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로타리 아카데미를 통한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그래서 만화로 된 로타리아카데미 책을 만들고 로타리 교육을 통해 익힌 지식을 겨루는 로타리골든벨을 실시함으로써 국제로타리 3700지구 로타리안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고 자부합니다.

세 번째로 각 위원회를 맡은 로타리안에게 일거리를 줘 이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과정에서 봉사를 겸하는 생활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소위 로타리에서 말하는 말하는 DLP(지구 지도자 양성프로그램)를 실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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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원 국제로타리 3700지구 총재를 비롯한 로타리안들이 지난해 여름 인도에서 소아마비 어린이돕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제로타리 3700지구 차원의 국내외 봉사활동 방향은?

“3700지구 차원의 봉사는 인도에 소아마비를 없애기 위해 4년 전 부터 소아마비 백신 투여를 위한 의료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인도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를 기증했고, 장애인학교에 스쿨버스도 기증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한방의료봉사를 하였고, 베트남에서는 구순구개환자(일명 언청이)수술을 동산병원과 함께 했으며 사랑의 집짓기를 작년에 이어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라오스에 학교를 건립해 대한민국 로타리안의 위상을 높여주었고, 매년 봄 황사로 고생하는 우리나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몽골에 방풍림 사업도 지속적으로 실시 중입니다.

올해는 미국 갱단 재활을 위해 갱단재활센터에 재활을 위한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등 많은 해외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성주태풍복구봉사, 대구반야월안심공원 토요일 사랑의 급식봉사, 의료봉사, 고령강정보 공원조성 등 지구차원의 수많은 봉사와 각 로컬클럽의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제로타리 3700지구 운영과 관련,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지구 운영에서 각종 행사에 소요되는 경비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고민을 했습니다. 봉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자체행사에 경비가 많이 소요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죠.

행사를 축소하고 경비를 줄여서 실제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데 더 많이 투자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저는 로타리 조직의 외연 확대에는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현재 국제로타리 3700지구는 97개의 클럽 3300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총재 임기 때 마다 클럽수를 자꾸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죠.

대신 각 로컬클럽이 우수한 회원을 영입, 최소 회원을 30~40명 이상 궁극적으로 50~60명 이상회원으로 유지하여 클럽의 내실화를 통해 지역에 더 많은 봉사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 국제로타리재단과 한국로타리 장학문화재단에 국제로타리 3700지구 회원 한분도 빠짐없이 모든 회원이 기부하는 기부문화가 정착됐으면 합니다”

-한의원 운영에서는 어떻게 봉사활동을 접목하고 계십니까?

“직업을 통한 봉사로 개업 초기부터 운동선수들에 대한 무료진료를 해 왔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다치는 경우가 많은데 치료에 많은 비용이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운동선수들이 다쳐서 올 때는 무료 진료를 해 오고 있습니다. 일화 감독으로 있는 축구선수인 신태용 선수를 대구공고 시절부터 영남대까지 무료 치료해 준 것은 개인적으로 큰 보람입니다. 저소득층은 물론 다문화가족과 결손가정에 대한 의료봉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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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로타리 3700지구 로타리안들이 지난해 여름 고령에서 수해로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국제로타리 3700지구 로타리안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로타리안으로서 자기 직업에서 높은 도덕성을 갖고 사회에서 존경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가꾸는 일이 최우선이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봉사를 해주시길 당부합니다.

나에게 맞추는 봉사가 아닌 수요자의 필요에 맞춘 봉사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사랑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주위를 사랑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주저없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김상만기자 ks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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