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토끼와 산비둘기
<대구논단> 토끼와 산비둘기
  • 승인 2009.05.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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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오늘도 산토끼 한 마리가 들개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늘상 있는 일이고, 또 산토끼는 자신의 다리가 들개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몸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전속력으로 달리면 걱정이 없다고 생각하며 쏜살같이 토끼 굴로 달려갔다.

한참을 달리다 추적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잠시 멈춰선 산토끼가 뒤돌아보았다. 이미 들개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 산토끼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날쌘 다리에 감탄하며 우월감에 황홀해 했다.

“나는 강력한 어금니와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몸집도 작지만, 이 들판의 어느 누구보다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다. 과연 누가 나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느냐? 나는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다.”

산토끼는 그대로 우쭐해진 자신감과 자신의 속도에 도취하여 집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교만하지 마라’는 세상의 이치는 오묘한 모양이다. 멀리 언덕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들개였다.

늘 산토끼에게 당하기만 하던 들개는 생각하고 관찰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자기보다 빠른 산토끼의 행태를 조금씩 파악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들개는 산토끼가 전력질주로 들판을 크게 한 바퀴 돈 다음에 반드시 토끼 굴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들개는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우월감과 속도감에 늘상 도취된 산토끼가 산책을 나왔다. 들개는 이미 그 날카로운 코로 산토끼가 달아날 토끼 굴의 위치까지 파악한 뒤였다. 드디어 추격전이 시작되고, 산토끼는 달리기 시작했다. 들개는 산토끼를 뒤쫓는 척하며 달려가다가 숨어버렸다. 그리고 토끼 굴 뒤에 숨어서 산토끼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들판을 크게 한 바퀴 돈 산토끼가 곧장 굴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평소처럼 자신만만하게...이 순간을 이빨을 갈며 기다리고 있던 들개의 눈에는 산토끼가 마치 자신의 입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당당하던, 그러나 이제는 가엾어진 산토끼는 이렇게 보기 좋게 들개에 잡히고 말았다.

그 때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빠른 발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젠 알겠지!” 들개에게 잡힌 산토끼가 위를 쳐다보니 토끼 굴 옆 나무에 사는 산비둘기였다. “토끼의 발이 제아무리 빠르다 해도, 우리 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분수를 알아야지 분수를!”

“게다가, 자기가 왜 잡혔는지 모르고 있겠지만, 네가 달아나는 길목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언제나 똑같이 그저 들판을 크게 한 바퀴 돌기만 할뿐인 걸. 더구나 최악인 것은 그러고 나서 곧장 토끼 굴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어떤 들개라도 네가 어디로 달아날지 금세 알아버리잖아!”
“그러는 너는 어떻고?”

그때 더 높은 곳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해를 가린 구름이 비켜나자 햇살과 함께 쏜살같이 커다란 매 한마리가 산비둘기를 향해 날아왔다. 매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산비둘기를 낚아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사법처리 여부가 논의되는 상황을 보면서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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