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주)예술기획 성우 배성혁 대표
<문화人> (주)예술기획 성우 배성혁 대표
  • 승인 2013.04.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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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외길...지역민 문화감성 100% 충전이 나의 사명"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주)예술기획 성우 배성혁 대표는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뮤지컬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미스사이공/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제작을 기반으로 창작뮤지컬을 성공시켜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본격적인 문화생산자가 되고 싶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고 말했다.

초등학교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목소리 좋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음대 추천 중.고교시절 공연에 빠져 전국순회
뮤지컬.오페라 등 250여편 전문 기획, 세계4대 뮤지컬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미스사이공/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대성공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김광석 추모 콘서트/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가장 기억 남아...기획사 중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팬클럽/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보유 전국 유일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대한민국 대표 창작뮤지컬 만들어 세계시장서 인정받는게 목표/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기획사 성우의 배성혁(48) 대표는 늘 궁금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대구 예술계를 선도하는 미다스의 손이라는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성우가 내놓는 콘텐츠들도 일상적으로 접해 온 터였다. 간접 소통만으로도 그의 내공은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다. 

문화부 기자로 1년여 만에 그와의 공식 인터뷰를 잡았다. 실무자와의 접촉은 다반사였지만,  대구 문화계의 거물인 그를 문화 담당 1년 만에 만나는 것은 기자로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윗선의 채근에 내 놓을 수 있는 변명은 모두가 궁여지책으로 옹색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구차스런 궤변 하나 늘어놓자면 아껴둔 히든카드쯤으로 고백하고 싶다. 혼자 음미하며 오래 곁에 두고픈 짝사랑의 심리를 배 대표에게 적용했다면 이 또한 궤변일까. 

기자가 스스로 직무유기라 인정할 만큼 대구 문화계의 거물로 이견(異見)이 없는 배성혁 대표를 문화계가 봄의 기지개로 활력이 넘치는 지난 2일 만났다.  

◇ 서민 호응이 가장 큰 밑천

배성혁 대표는 뮤지컬과 콘서트, 순수예술 등의 공연을 전문으로 기획하는 대구·경북의 가장 전통 있는 공연기획사인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주)예술기획 성우/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호의 선장이다. 대구·경북민의 문화 감성 충전 100%를 목표로 25년 외길을 걸어왔다. 20대부터 그의 공연을 접해온 관객이 40대 중반의 중년을 훌쩍 넘긴 긴 세월이다. 중앙의 콘텐츠와 대구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이 그에게 주어졌던 25년간의 사명이었다. 우리나라 문화의 생산기지인 서울의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수동적인 시스템에서 대구시민의 감성이라는 여과장치를 거른 콘텐츠를 선택·보급하는 능동적인 시스템이 배 대표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서울 문화예술의 변방으로 전문기획사의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았던 대구가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인구대비 티켓파워 1위/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라는 막강한 문화예술 전초기지로 성장한 배경에 배 대표의 큰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25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대구 관객과 만난 공연 수만 해도 무려 250여편이 넘는다. 뮤지컬, 대중가요, 오페라, 연극 등 모든 장르를 아울렀다. 최근 공연유치의 주체가 되고 있는 공립복합 공연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기가 불과 10여년 남짓임을 상기하면 성우가 뿜어내는 무게의 묵직함은 더 크다. 성우 나이 25세, 배 대표 48세, 혈기왕성한 청년 성우와 인생의 참맛을 제대로 알기 시작하는 제대로 발효 중인 배 대표가 명실공히 이름값 하는 기획사로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청년의 열정과 중년의 노련함으로 뮤지컬을 직접 제작·보급하는 세계 속의 성우가 되겠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도전하고, 실현하는 그 일을 시작한 것이다.  

- 지난해 성우가 기획·제작한 뮤지컬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미스 사이공/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이 비교적 성공적인 순항을 했는데 실제 어떤가요.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첫 술에 배부르겠다면 그건 욕심이겠지만 흥행과 작품성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장기공연이었지만 매회 공연마다 객석이 거의 다 찼으니까요. 대구시민들의 큰 호응 덕분입니다. 첫 작품에서의 호의적인 반응이 제2, 제3의 미스사이공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있습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직접 제작으로 인한 성과를 구체적으로 꼽는다면요.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우리도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을 축적한 것, 그리고 우리 콘텐츠 하나를 가졌다는 것을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의 작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콘텐츠 싸움인데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미스사이공/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은 우리가 라이센스를 사서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연출가와 우리 스텝들이 합작으로 제작한 작품인 만큼 배우 계획, 어떤 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지 등에서 뮤지컬의 본고장인 영국의 선진 뮤지컬 시스템과 운영체계를 전수받은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역시 우리도 이제 뮤지컬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자신감이겠지요./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글로벌화 하는 뮤지컬, 전용극장이 급선무

- 영국의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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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미스사이공/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공연장면.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영국은 철저하게 대중성을 추구하지만 예술성도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은 무게추의 중심에서 어느 한쪽으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둘 모두 중요한 소요로 인식하는 듯 보입니다. 조명기구 하나, 안전장치 점검, 배우들 계약조건 등 철두철미합니다. 심지어 메인배우의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커버배우까지도 완벽하게 준비시켜 두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정말 철두철미 완벽을 추구하지요./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직접 제작하신 뮤지컬인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미스사이공/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의 성공요인은 무엇인가요.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전국에서 가장 활성화돼 있는 대구의 관객들이 수요를 받쳐주었다는 것입니다. 대구는 실질적인 티켓파워층인 40~50대의 문화 소비욕이 전국 최고수준입니다. 레미제라블이 대구에서는 대 성공을 거두었는데 부산에서 실패한 원인도 부산에서는 40~50대가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배 대표는 클래식과 대중 공연 위주의 대구에 세계적인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장본인이다. 2002년 뮤지컬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갬블러/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와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시카고/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를 시작으로 2005년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맘마미아/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로 지역에 뮤지컬 붐을 일으켰다.

특히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딤프)의 탄생과 정착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지난 2006년 대구시에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뮤지컬 축제를 만들어 뮤지컬 도시 대구를 만들자/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고 제안해 2006년 프레축제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2007년 제1회 딤프 집행위원, 2008~2011년까지 2~5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대구뮤지컬 발전에 기여해왔다. 2007년에는 세계4대 뮤지컬인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미스사이공/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을 제작해 지방최초 최단기간 5만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명실상부한 전국 최대 공연기획사로 우뚝섰다.

- 뮤지컬을 제작해 보신 입장에서 한국에서 레미제라블이나 미스사이공 같은 세계적인 뮤지컬을 내 놓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한국의 문제점은 단기 제작시스템에 있다고 봅니다. 뮤지컬 선진국들은 완벽하게 뮤지컬을 셋팅시키는데 최소 5년에서 수년씩 시간과 공을 들입니다. 그들은 처음 뮤지컬을 만들어서 낮은 가격으로 관객들을 계속해서 만나는 프리뷰 공연을 작품이 완벽해질 때까지 하면서 수정보완을 거듭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작품이 완벽해 졌을 때 비소서 제값을 받고 유명 극장에 올리는 장기플랜을 추구하지요./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왜 뮤지컬입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오페라는 귀족문화에 속하지만 뮤지컬은 춤과 노래가 화려합니다. 21세기에도 계속해서 발전할 수밖에 없는 대중적인 장르지요. 세계적인 뮤지컬이 한편 나오면 일년 내내 상시적으로 공연이 펼쳐지고,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뮤지컬을 보기 위해 찾아옵니다. 그것이 뮤지컬의 힘입니다. 그 힘이 결국 관광산업과 연결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뮤지컬 산업이 자연스럽게 음식, 숙박, 쇼핑 등의 관광산업과 매칭이 되겠지요./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대구가 뮤지컬 도시로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뮤지컬 전용극장을 선결과제로 봅니다. 뮤지컬 도시가 되려면 인프라 구축이 돼야 하는데 뮤지컬 전용극장이 생기면 장기 제작 여건이 되고, 그렇게 되면 배우들이 중앙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서울의 레미제라블의 경우 연습과 공연기간을 합치면 1년이 걸리는데 배우들 최소 1년은 수입이 보장이 되지 않습니까. 이제는 뮤지컬이 글로벌화 되고 있습니다. 배우뿐만 아니라 무대, 음악감독, 음향, 작가 등 전문 스텝들도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뮤지컬 전용극장이 생기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될 것입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헬피라는 성우 가족 모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입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성우의 팬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7기까지 총 40여명이 회원으로 있습니다. 기수별 회장으로 중심으로 조직이 잘 돼 있습니다. 이들 티켓파워의 구심점이 되고, 우리가 전국에서 공연할 때 자비를 들여 봉사활동도 펼칩니다. 기획사에서 이런 자발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성우밖에 없습니다. 함께 외국여행도 다녀오는 등 가족같은 분위기의 모입이라 할 수 있습니다.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대구발(發) 세계적 창작 뮤지컬 만드는게 꿈

성우는 25년을 꾸준하게 공연을 유치하며 자신의 위치를 조금씩 키워왔다.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문화시장인 만큼 중앙에서조차 명멸을 거듭해온 기획사가 부지기수인 현실에서 25년 동안 존재감을 키워온 것은 대한민국 공연계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다. 

- 중앙에서도 성우처럼 오래된 기획사는 찾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장수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경제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예술분야입니다. 사람들이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면 가장 먼저 예술쪽 지출부터 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호황기에는 우후준순처럼 생겨났다 불황기가 되면 사라지고, 다시 호황기가 되면 상호를 바꿔 일을 벌이는 현상들이 반복돼 왔지요. 우리 성우는 시장의 상황에 관계없이 어려우면 어려운데로 좋으면 좋은 데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러면서 노하우가 계속 축적됐고, 그것이 경기와 상관없이 지탱할 수 있는 우리만의 자산이 된 것이겠지요./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목소리가 너무 좋다고 저를 음대에 보내라고 추천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종손을 음대에 보낼 수 없다고 반대를 하셨죠. 그러다 재수 하면서 음악에 빠져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엘 갔습니다. 그때 사귄 친구들이 강인원 이상우 같은 음악인들이었죠. 근데 강인원이 저보고 사투리가 너무 심하다고 가수는 안 되겠다고 해서 다시 내려와 있다 서울에서 음악 하던 친구들이 대구 공연을 내려와서 보니 대구에 변변한 기획사가 없어 제게 도움을 청해서 조금씩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한창 공부할 중·고등학교 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보러 부모님의 속을 썩였다고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조용한 학생이었을 것 같은데요.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늘 LP로 음악을 들으셔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졌죠. 어머니께서 부녀회장을 하셔서 초대권이 나왔는데 그걸로 공연을 많이 보러다녔죠. 그러다 공연에 빠져 천막악극단과 가수들 공연인 리사이틀에 빠져서 공연이 있는 전국을 돌아다녔죠. 대전, 밀양, 부산, 성주 등 안 다닌 곳이 없었습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대구에 온 수많은 공연들이 성우를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습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김광석 추모 콘서트/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가 제게는 특별합니다. 가수 김광석은 저와는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광석씨 부모님께서 대구에서 전파사를 하셨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도 대구가 특별한 곳이었죠.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자 그 친구가 많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다 저와 김광석의 절친인 박학기와 후배 윤도현이 함께 추모콘서트를 만들자고 모의해 2010년부터 시작해 매년하게 됐습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작년부터 김광석의 스토리를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들이 활발해 지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김광석 추모 콘서트는 김민기씨를 재단이사장으로 대구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너무 바빠서 서울은 박학기에게 떠맡겼고요. 대구와 서울은 흑자지만 다른 지역은 적자입니다.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해 오다보니 김광석 붐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습니다. 김광석 재해석 움직임이 시작 된거죠. 그리고 뮤지컬도 여기저기서 만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것입니다. 거대한 중국시장이 뮤지컬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거대한 중국시장을 잡아야 하는데 저는 일찍부터 중국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한발 앞서 네트웍을 형성해 왔습니다. 좋은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중국시장을 비롯해 세계적인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확실한 콘텐츠가 준비된 다음에는 서울에 진출할 계획입니다./news/photo/first/201304/img_94131_1.jpg"

황인옥 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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