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춘추>가지치기
<문화춘추>가지치기
  • 대구신문
  • 승인 2009.05.0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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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부엌 싱크대 앞에 서면 정면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풍만한 체격, 늠름한 기상으로 듬직하던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올 봄, 이 나무가 잠잠하다. 며칠 전부터 나무의 안위가 궁금해서 설거지를 할 때마다 까치발까지 해가며 창밖으로 목을 뺀다. 처음에는 늦잠을 자나보다 했다.

불길한 생각에 마당으로 내려섰다. 꽃이 지고 연둣빛 새 잎이 초록으로 짙어가는 오월이 되어도 처참하리만치 가지가 베어져 민둥 머리를 하고 멀뚱히 서 있는 그가 토르소처럼 애처롭다. 아파트 마당에 있는 정원수로는 키가 너무 크고 잎이 너무 넓다는 이유로, 그래서 사람의 시야를 가려 경비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이른 봄 가지치기를 과도하게 한 때문이리라.

마음이 허전해서 앞산에 오른다. 정상에 서서 고산 골의 잣나무 단지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벅차다. 사계절 내내 푸른 기운을 뿜어내는 침엽수림이 지금은 앞산의 명물이다. 거침없이 하늘로 뻗어 오른 나무들을 올려다보노라면 스무 해도 더 지난 그 때가 생각난다.

제4약수탕 가는 길, 불난 자리를 지나가노라면 아직 바닥이 거뭇한 산자락에 시에서 조성한 어린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그 길을 지나는 등산객 중에 작은 주머니칼 같은 것으로 어린 나무의 곁순을 잘라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어린 곁가지를 잘라내는 것을 볼 때마다 눈을 흘겼다. 아직 어린 나무가 아플 것 같아서 자꾸만 손가락이 움츠려들었다.

가지치기라고 했다. 여린 순이 가지가 되면 키 자람에도 지장을 주지만 자르기도 힘들고 자른 자리의 상처 자국도 넓고 깊다는 것이다. 곁가지가 많으면 나무도 곧게 자라지 못하거니와 서로 엉켜서 성장을 방해한다는 말들이 변명처럼 들렸다. 그날의 조림지가 지금, 하늘을 찌르는 곧은 잣나무 숲이 되었다. 매년 가지치기를 하고 간벌까지 한 것이 건강한 숲을 가꾼 것이었음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나무의 가지치기가 건강한 재목을 가꾸는 일이라면 아이의 교육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일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시기를 놓친 가지치기 같아서 안타깝다. 버스에서 어쩌다 한 무리의 하굣길 학생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불안하다. 욕설이 난무한다.

수줍은 나이의 여학생들조차 상스런 욕설이 거침없다. 어릴 때, 제멋대로 뻗어 나오는 가지를 쳐주지 않아서 나무가 곧게 자라지 못하듯이 어릴 적 엄격하게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른을 모르고 자리를 모른다.

고삐 풀린 소가 주인을 떠받을까 두렵고 저 혼자 불쑥 웃자란 나무의 곁가지가 과도하게 잘려나가는 수모와, 종내에는 봄이 다 가도록 잎조차도 피워내지 못할까 두렵다.

김민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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