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구시당 이창배 고문
가장 중요한 덕목 '孝' 가정의 화목.효 실천으로 건강한 사회 만들자!
가장 중요한 덕목 '孝' 가정의 화목.효 실천으로 건강한 사회 만들자!
◇기관장들은 모두 어른 공경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생님과 어른을 공경합시다.” 이창배 고문을 만난 건 새누리당 대구시당 기자실에서였다. 이 고문은 만나자 마자 바로 5월 가정의 달임을 상기시키 듯 대뜸 이같이 도덕론을 설파했다.
지역의 웬만한 기관장들도 이 고문의 부지런함에 혀를 내누를 정도다.
요즘의 이 고문의 일과는 지역의 기관장들과 만나 정가의 돌아가는 상황이나 도덕성 회복에 대해 한담을 나누는게 일상사가 됐다. 김범일 대구시장과 하춘수 대구은행장,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이 그의 말 동무이자 동지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기관장들이다.
이 고문은 “기관장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어른을 잘 공경하고 있다는 점이다”며 “지역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인사들”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고문의 도덕성 회복 운동의 시발점은 첫 직장부터 시작됐다. 이 고문은 1949년 포항시 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포항 영일읍 주사 등으로 자리를 옮기다 지난 1958년 공직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공무원 생활동안 느낀 것은 부패로 얼룩진 시절이었고 많은 염증을 느낀 시기였다”는게 이 고문의 공직 사퇴 이유다.
이 고문은 곧바로 바른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한지(韓紙)사업에 몸을 던졌다. 1961년 경북한지 공업조합 상임이사로 첫 삽을 편지 5년만에 경북한지 공업조합 이사장, 이후 1973년 한국한지공업 연합회장에 오르며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한지 산업을 이끄는 수장으로 등극했다. 이 고문의 열성적인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대목이다. 이런 공로로 이 고문은 곧바로 국무총리가 주는 한지 수출 유공자 상을 수상했고 실질적 한지산업의 주역이 됐다.
이 고문은 당시를 “사업을 하면서도 늘 도덕적 문제를 고심했거든. 올바르게 생활해야 한다는 주관이 뚜렷한 탓에 사업자체가 순탄치 않았지만 결국 한길로 가면 이뤄진다는 도덕적 가치관이 생겨난 거지”라고 회고했다.
◇본격적 도덕성 회복 운동의 시작
이 고문의 사업 성공은 곧바로 정치와 인연을 맺게 했다.
그의 첫 정치 입문은 1981년 당시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정의당 경북 제3지구, 즉 현재 대구남구수성구 지역의 당 부위원장에 위촉된 것이 인연이 됐다.
이 고문은 이때부터 30여년이 넘도록 한번도 당을 떠나 본적이 없었다.
민정당 이후의 신한국당, 한나라당 ,현재 새누리당을 거치는 동안 대구시당과 경북도당 운영위원, 행정위원, 상임고문, 중앙 당무위원 등 한마디로 당과 함께 살아 온 새누리당의 산 증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고문은 “공직자 생활 사업과 정당 경력동안 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부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이 눈에 가시였다”면서 “특히 젊은이들의 도덕성 결여를 안타까와 해 왔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의 도덕성 결여는 항상 그의 눈에 가시였다.
“지난 정치세월을 돌아보면 노인 폄하 한마디로 한순간 대선의 대세가 꺾였던 야당의 정 모 후보, 지난 총선 때 막말 수위가 천박하고 지나쳐 대부분 국민의 분노를 사면서 야당 총선을 깡그리 망친 김 모씨 등이 좋은 예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소리 없는 절대 다수의 힘이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이 고문은 이게 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해야 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이 고문의 도덕성 회복의 본격적 기치는 20여년전 한국도덕운동 본부 대구경북지회장에 선출되면서다. 그는 현재까지 대구지회장을 도맡아 도덕성 회복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그의 도덕론을 더 들어봤다.
이 고문은 효의 실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고문은 특히 “스승의 머리채를 뒤 흔드는 학생들도 보이고 이에 가세하는 학부모의 몰상식도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아니냐”며 “가정에서의 화목과 효의 실천으로 건강한 사회가 빨리 돼야 한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했다.
◇가치관의 재정립도 필요
그러나 이 고문은 “온통 어지러운 세상에도 웃음을 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말로 대한민국 도덕성 회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한 기사를 봤더니 어느 대법관이 퇴임하고 가정으로 돌아와 아내가 운영해 오던 편의점에서 평범한 필부의모습으로 일하는 내용이었다”면서 “통상 그 경륜이면 엄청난 부를 떠 안겨주는 법무법인으로 가도 되는데 그 대법관의 선택은 놀랄만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요즘 TV에서도 즐겁고 청량감 넘친 효를 생각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가슴 훈훈했다”면서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아버지 출연자와 천진난만한 착한 인성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각본없는 감동 드라마였다”고 일반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각 사각 꽈배기 억지 구성으로 울고 짜는 장면을 연출하는 드라마에 경종을 울리는 프로라고 환하게 웃었다.
이 고문은 대구신문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2년전부터 기고를 대구신문 지면을 통해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지역 현안과 도덕성 회복에 관한 글이다.
그는 “남은 여생동안 도덕성 회복과 새누리당 발전에 조그마한 힘을 보태겠다”면서 “부모 효도와 어른 스승 공경을 모두가 실천하는 대한민국을 염원한다”고 말했다.
이창재기자 kingcj123@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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