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의 명배우와 거장의 연출 관객들 혼 빼놓은 놀라운 마력
관록의 명배우와 거장의 연출 관객들 혼 빼놓은 놀라운 마력
  • 황인옥
  • 승인 2013.05.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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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의 연극 ‘어머니’ 공연 리뷰
과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연기
100분이 10분처럼…최고의 몰입
손숙의연극-어머니공연모습
손숙의 연극 ‘어머니’ 공연 장면.사진 원안은 연출가 이윤택.
이윤택 연출·손숙 주연의 연극 ‘어머니’의 극이 끝나고 배우들의 무대 인사가 마무리 될 때 까지 한참 동안이나 얼음처럼 굳은 채로 앉아 있어야 했다. 극은 끝났지만 쉬 가시지 않는 여운이 머릿 속을 하얗게 만들었던 것이다. 명배우 손숙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 때서야 비로소 격한 감동과 함께 눈물 한 자락이 볼을 타고 흘렀다. 다른 관객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던 모양. 50년 관록의 명배우 손숙의 무대였지만 열화와 같은 커튼콜은 없었다.

그들 역시 채 가시지 않은 여운을 오롯이 가져가고 싶은 듯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연극 ‘어머니’는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그 무엇을 담고 있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50년 내공의 배우 손숙과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윤택 연출가, 그리고 경륜의 극단 연희단패거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묵직한 공연은 따로 무대 뒤 인터뷰가 필요 없을 만큼 무대 위에 모든 것을 녹여내고 있었다. 수성아트피아가 명품시리즈로 선택한 최고의 명품다웠다.

◇거장 이윤택 연출가의 세련미

이 시대 연극의 거장인 이윤택 연출가가 작품과 세계를 인식하는 기준은 관객이다. 그는 철저하게 대중과 호흡하는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연출가이면서 작가를 겸하는 것도 원작의 훼손을 거부하는 작가들의 관행에서 벗어나, 원작의 깊이를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보다 쉬운 해석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가 한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에 두는 것은 관객이며, 그런 이유로 그는 스스로 자신을 ‘대중극 연출가’라고 말하곤 한다.

수성아트피아에서 지난 17~18일 양일간 무대에 올랐던 이윤택의 연극 ‘어머니’는 10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10분처럼 느껴질 만큼 최고의 몰입을 이끌었다.

그의 연출 스타일을 ‘세련미’로 압축한 어느 평론가의 분석처럼 연극 ‘어머니’ 또한 자질구레한 장면보다 큰 사건 중심으로 간결하고 쉬운 대사로 구성됐으며, 저승과 이승의 경계선을 베란다 문으로 처리하는 등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예리한 해석으로 세련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며 100분을 10분처럼 다가오게 했다.

흔히 어머니를 소재로 한 연극들에서 만나게 되는 ‘눈물 쏙, 콧물 쏙’ 장치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남편의 그림자로 숨죽이며 살아왔던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의 한 많은 인생을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텃치로 펼쳐보이고 있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주제였지만, 과하지 않은 절제된 감정처리와 논리적이면서도 지적인 구성으로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의 한 많았던 질곡의 삶을 오롯이 드러내 주었다.

◇50년 관록 손숙의 지적 연기

노(老) 배우 손숙의 연기는 담담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신파극조의 억지 눈물을 강요하기보다 담담한 대사처리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인내를 잔잔하게 표현했다.

수줍었던 소녀 시절의 첫사랑을 두고 논 서마지기에 팔리다시피 시집가서, 첫사랑의 자식인 첫째와 남편의 아이인 둘째를 낳지만, 6.25전쟁 중 학질로 큰 아이를 잃는 피를 토하는 장면에서도 극도의 절제된 연기로, 50년 연기 인생 손숙이 아닌 극으로의 몰입으로 관객을 이끌었다. 과하지 않은 그의 연기에서 오히려 아픔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것이 그의 매력이자 내공으로 다가왔다.

15년 전 첫 무대를 마치고 앞으로 20년간 이 연극을 하겠노라 호언했던 작품도 이 작품이었고, 1999년 러시아 공연 직전 환경부장관에 임명됐지만 공연을 강행, 구설수에 올라 장관 취임 32일만에 사퇴하는 수모를 겪은 작품도 이 작품이다. 연극 ‘어머니’는 처음부터 그녀의 옷이었고, 15년 동안 입어온, 이제는 한 몸처럼 익숙해져 버린 그녀의 운명이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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