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는 그 자체가 희망이었다
장영희는 그 자체가 희망이었다
  • 승인 2009.05.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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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는 내가 본 사람 중 자기 삶을 가장 충실히 살아내는, 꽉 찬 삶을 사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암 투병 중 사망한 고(故)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미어문ㆍ영어문화학부)의 빈소를 다녀간 가수 조영남씨는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생전의 장영희 교수를 떠올리며 한없는 애도의 뜻을 표했다.

조씨와 장 교수의 인연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신문에 실린 장 교수의 글을 즐겨읽던 조씨가 모 방송국에서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장 교수를 초청한 것.

조씨는 처음 본 장교수에 대해 ”평소 글을 보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상큼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실제 만나보니 정말 그랬다. 목소리도 아주 청아했다”고 기억했다.

2004년 장교수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영문학자였던 고(故)장왕록 교수의 10주기 출판 기념회때는 조씨가 직접 축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조씨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친하게 지내기 시작해 2005년 내 환갑잔치 땐 장영희가 큰 케익에 내 사진을 박아서 선물해 주기도 했다”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조씨가 장 교수와 함께 보낸 시간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 그 답례로 파주 헤이리에서 장 교수의 생일 파티를 열어줬을 때.

당시 조씨는 장 교수와 지난 3월 작고한 서양화가 고(故) 김점선 씨, 주철환 전(前) MBC PD 등이 함께있는 자리에서 장 교수 한 사람만을 위한 단독 콘서트를 열어줬다.

조씨는 그렇게 함께 행복했던 시절에도 장 교수가 사람들에게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오늘 조문을 갔다가 뜻밖의 얘길 들었다. 우리가 한창 만나던 2005년 즈음에 이미 막 아플때였다고 한다”며 “그 아픈 몸을 가지고서도 한 번도 상태가 안 좋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내가 크게 잘못한 것 같아 죄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영희 교수는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희망이었다. 늘 웃고, 남의 말을 들어줄 줄 알고...우리 모두가 장영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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