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먹거리에 품격을 심는 ‘낭만농부’
정직한 먹거리에 품격을 심는 ‘낭만농부’
  • 황인옥
  • 승인 2015.02.03 14: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업인> 전국‘맛 콘서트’ 여는 김영일 농부

한국 농부와 프랑스 쉐프의 만남

우리 농산물, 공산품처럼 생산 혹평에

자존심 상해 직접 키운 계란 들고 방문

농장 환경 둘러보고 먼저 콘서트 제안
/news/photo/first/201502/img_156131_1.jpg"/news/photo/first/201502/img_156131_1.jpg"
김영일 낭만농부가 대구에서 열린 ‘맛 콘서트’에서 자신이 생산한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박현수기자 love4evermn@idaegu.co.kr
농업에 문화를 접목해 자연친화적 농법을 되살리고 바른 먹거리를 실현하자는 행사가 지난달 30일 대구에 있는 고메 쿠킹 아카데미(원장 유지희)에서 열렸다. 행사의 제목은 ‘맛 콘서트’. 2013년 10월부터 시작된 이 콘서트는 서울에서 12회까지 열렸고, 이번 대구 행사는 전국 투어의 첫 개최지로 진행됐다.

이 콘서트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콘서트와는 사뭇 다르다. 음악이나 무용 등 예술이 아닌 바른 식재료와 요리가 주인공이다. 관객들이 쿠킹 공간에서 바른 먹거리 철학을 가진 농부가 재배한 건강한 먹거리로 만든 요리를 즐기는 그야말로 요리의 향연이다. 취지는 건강한 땅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먹거리로 요리한 음식을 콘서트라는 형식의 문화를 입혀 함께 공감함으로써 자연 친화적인 농업에 대한 필요성을 확산하고 깐깐한 농법을 지켜가는 먹거리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번 대구 맛 콘서트에는 대구와 부산 경남, 경북 지역의 미식가 25명이 관객으로 참여했다. 무대 위 배우는 깐깐한 농부가 정직하게 수확한 먹거리와 식재료 선별에 깐깐한 최고의 쉐프가 담당했다. 이날 쉐프가 선택한 식재료는 전라북도 진안고원에서 자연친화적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낭만농부 김영일씨가 생산한 닭, 달걀, 블루베리 그리고 부식재료로 전라남도 곡성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주)미실란’ 이동현 농부의 오색미, 전라북도 부안의 흙농장 최동춘 농부가 재배한 껍질째 먹는 배, 찐빵명인 ‘슬지네 우리밀 찐빵’의 김갑철 대표의 우리밀가루와 발아팥이 사용됐다.

요리는 채널A TV의 인기 프로 ‘먹거리 X 파일’의 착한 식당 검증단인 7명의 전문가 중 한 명이자 서바이벌 올리브TV ‘한식대첩’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킨 서울대표 궁중요리 전문가 김경미 쉐프가 책임졌다. 콘서트가 열리는 범어동 고메 아카데미에서 이번 콘서트를 주관한 김영일 낭만농부를 만나 그의 농업철학을 들었다.

◇ 먹거리와 문화의 접목으로 농업에 품격을 더하다

- 콘서트는 어떻게 시작됐고 취지는 무엇입니까.

“저와 서울에서 르세프블루코리아를 운영하는 프랑스인 쉐프 로렝 달레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시작됐어요. 콘서트는 식재료에 분별력 있는 최고의 요리사와 건강한 땅에서 생산되는 우리 농산물 그리고 바른 먹거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문화로 보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바른 먹거리에 품격을 심는 것이지요.”

- 한국 농부와 프랑스 쉐프의 만남이라니 언밸런스한데요.

“로렝의 부인이 푸드칼럼리스트인 이미령 씨라고 한국인이에요. 로렝은 공대 출신인데 요리가 좋아 서울에서 프랑스 전통 쿠킹 스튜디오를 열었어요. 이곳은 예약손님만 받아 정성스럽게 요리해서 대접하는 아주 특별한 곳이에요. 하루는 이미령 씨가 페이스북에 ‘남편이 계란으로 마요네즈 거품을 내는데 프랑스 노르망디 계란은 한 개로도 거품을 낼 수 있는데 한국 계란은 네 개를 넣어도 거품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한국 농산물은 하나같이 공산품처럼 생산된다’며 ‘한국 농업의 미래가 어둡다’는 글을 올렸는데, 그걸 보고 자존심이 상해서 제가 키우는 닭들이 낳은 계란을 들고 찾아갔죠.”

- 그게 첫 만남이었군요, 결과는 어땠나요.

“자유롭게 키우는 닭이 낳은 계란인데 거품이 잘 날 수밖에요. 그걸 보고 로렝이 우리 농장을 방문해 둘러보고는 이 재료로 요리를 해서 이런 건강한 먹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자는 콘서트를 먼저 제안했어요. 저 역시 그럼 재료는 내가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죠.”

- 콘서트 참가자들은 어떻게 모집했습니까.

“당연히 페이스북(이하 페북)이죠. 그동안 제가 농사짓고 가축 키우는 과정들을 사진과 함께 페북에 올려왔던 터라 페북 친구들이 많았고 또 그들과 신뢰가 쌓여 있었는데 그런 행사를 한다고 하니 참가자 요청이 쇄도 했어요. 그렇게 2013년 첫 콘서트를 열어 이번 대구 행사까지 13회까지 왔네요. 처음에는 저 혼자였는데 이제는 정직한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철학이 비슷한 농부들의 참여도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어요.”

- 콘서트 참가비와 메뉴가 궁금하네요.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는 로렝이 만든 프랑스 정통 가정요리로 5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대구 행사는 한식이어서 7만원이 책정됐고요. 앞으로 최고의 일본 쉐프, 이태리 쉐프 등 다양한 국적의 쉐프들도 동참하도록 해 각국 요리를 맛볼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 수익금은 어떻게 사용되나요.

“장소와 스태프를 제공하고 요리를 한 쉐프에게 수고비로 전액을 드립니다. 재료를 제공한 농민들은 우리가 생산한 먹거리를 알리고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그런걸 통해 인연이 되어 제가 생산한 농산물을 주문하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보너스라면 보너스죠.”

- 콘서트에 재료를 무상으로 제공하면 재료가 만만찮게 나갈 것 같은데요.

“맛 콘서트는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부가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과 또 이런 농법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귀농인들에게 알리는 것, 그래서 건강한 농법을 확산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무상 제공은 치르는 대가보다 얻는 가치가 더 크지요.”

전국 투어 첫 개최지는 대구
서울서 2013년부터 12회 열려 ‘호응’
친환경 식재료로 실력가 쉐프가 요리
부산 경남·경북지역 미식가도 참여


◇ 귀농과 낭만농부의 삶

그는 귀농 3년차인 아직은 새내기 농부다. 귀농 전 서울에서 건축 디자인업을 하다 50대 중반 어느 날 문득 평생 직업에 대한 회의와 무기력감이 밀려와 탈출구를 찾았다. 그가 찾은 탈출구는 귀농. “간간이 퇴직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그 친구들이 설자리를 잃고 하는 일 없이 등산 등으로 소일하는 것을 보고 미래 내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섬뜩했어요. 그러면서 귀농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현재 블루베리와 벼농사 그리고 닭을 기르며 복합 영농을 하고 있다.

- 귀농해서 본 농촌 현실은 어땠나요.

“농약과 비료로 병충해 없이 속성 재배하는 농사, 좁은 공간에서 유전자 조작된 수입 곡물 사료를 먹이며 사육하는 가축들이 눈에 들어왔죠. 요즘 아이들이 성장이 빠르고 허약한 것이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먹거리로부터 왔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했던 자연 순환 농법으로 슬로우 푸드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죠.”

- 농사짓는 땅도 특별한가요.

“농지를 알아보던 중에 마침 45년 묵은 땅과 인연이 닿았어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지금은 화전민이 농사짓다 방치한 35년 된 땅과 십 수 년 방치한 땅까지 농토로 사용하고 있어요. 제 고향이기도 한 진안은 일교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 농작물 영양과 맛 식감도 탁월하지요. 건강한 땅과 최고의 기후가 제가 농사 짓는 터전이지요.”

- 슬로우푸드는 생산과정도 다를 것 같은데.

“우리 블루베리는 3년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안 주고 키워 아직 수확량이 얼마 안됩니다. 닭 모이도 어패류 야채 깻묵 청미미강 한약찌꺼기 등을 섞어 발효시켜 제가 만든 사료로 방생해서 키울 정도로 정성을 기울이지만 성장이 느려 계란 낳는 시기가 일반 양계 닭들보다 훨씬 늦어요. 느리더라도 자연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지요.”

◇ SNS로 판로는 거뜬히

SNS의 대표주자 페이스북에는 김영일 농부의 친구가 2천여 명에 달한다. 그들은 김영일 농부의 농사짓는 일상을 페북으로 실시간 보고 있다.

- 연세로 보면 페이스북이 익숙한 매체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페이스북을 몰랐어요. 그런데 후배가 귀농하고 어느 날 페북을 꼭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들한테 페북 계정을 열어 달라고 했죠. 막상 해보니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 지금은 거의 프로 수준이던데.

“페북은 이제 저와 세상을 연결하는 없어서는 안 될 메신저가 됐죠. 페북과 친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서울에서 하는 SNS 인맥 활용 덕분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제대로 두루 교류했죠. ‘맛 콘서트’도 페북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요.”

-페북 이름이 낭만농부로 되어 있던데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농사를 지으면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는 것들에 감동해서 사진을 올리고, 귀농 첫 해 배추를 심어 수확하고 절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페이스북 친구가 보고 ‘너무 낭만적이셔요’라고 했어요. 그 말에 큰 울림이 와서 페북 이름을 낭만농부라고 지었죠.”

유기농 자연농법 고수 ‘슬로우푸드’
농약.비료 없이 삽.괭이로만 농사
일반농민 생산율의 절반 정도 수확
소출 적어도 건강한 먹거리가 우선

◇ 땅이 되돌려준 결실

- 유기농 자연농법은 소출이 적을 것 같은데.

“일반적인 농민들이 100% 생산율을 자랑한다면 우리는 50%정도 밖에 안 됩니다. 저는 암탉을 300마리 키우는데 일반적으로 4개월이면 달걀을 낳는데 우리 닭들은 8~9개월은 되어야 알을 낳아요. 그마저도 양이 얼마 안 되지요. 다른 농작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 상대적으로 가격 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당연히 일반 농산물보다는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보통 치킨집에 납품되는 닭들이 28~35일 기들인데, 우리는 1~2년을 키워야 판매를 합니다. 그동안 만들어 먹이는 비용을 감안하면 우리 농산물이 비싼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요.”

- 수익은 어떤가요.

“귀농 4년차로 나쁘지 않아요. 내가 생산한 불루베리 묘목과 불루베리 열매, 닭, 쌀 등을 팔면 연 1억 수입은 훌쩍 넘어가죠.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분들이나 바른 먹거리를 찾는 꼭 필요한 분들에게만 제공되고 있는데 물량이 많지 않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어요.”

- 대규모 유기농 영농으로 확대하고 싶은 욕망이 생길 것 같습니다.

“전혀요. 규모가 커지면 투자대비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농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게 되면 정직한 먹거리 생산이 힘들어져요. 아내와 둘이 부부 영농을 하면서 우리 농작물이나 가축들이 우리 부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생산하면 저에게 먼저 주셔야 해요’ 하시는 우리 농산물을 주문하시는 소비자들을 생각하면 힘은 들지만 타협은 절대 없지요.”

- 보람이 클 것 같습니다.

“저는 트랙터와 경운기 없이 삽과 괭이로만 농사 짓고, 농약과 비료 없이 던져 놓는 방임 농법을 고집하는데 저희 옆집에 농사짓는 분이 그것을 보시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걱정을 하셨어요. 그런데 가을이 되니 제가 농사지은 건강한 쌀을 손자 손녀에게 먹이고 싶다며 ‘팔아라’고 하셨을 때 정말 보람이 컸어요. 비록 소출은 적지만 그런 건강한 먹거리를 아이들과 아픈 사람들이 먹고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회복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보람입니다.”

/news/photo/first/201502/img_156131_1.jpg"/news/photo/first/201502/img_156131_1.jpg"
- 왜 슬로우푸드, 바른 먹거리 여야 하는 겁니까.

“바른 먹거리는 사람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영향을 주지요. 지금 우리 사회가 정신이 무너지고 황금만능에 빠진 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제일 마지막에 먹거리와 연결된다고 봐요. 지금 우리가 먹는 농약에 찌들고 속성 재배한 먹거리는 음식이 아니라 독이라고 봅니다. 결국 좋은 먹거리는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지요. 슬로우푸드는 그래서 반드시 확산돼야 할 가치입니다.”

- 앞으로 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폐교를 구입해 바른 먹거리 체험장과 접목해 볼 생각이고 도시인들이 농촌에서 슬로우푸드를 체험하도록 하고, 3년 전 심어놓은 사과나무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과도 머지 않아 생산할 것입니다. 저는 끝까지 건강한 자연 친화적인 슬로우 농법으로 농사지을 거예요. 그래서 내 분야의 노하우를 세계 어디에서나 보러 오게 하는 최고의 명품 농장을 운영하는 그런 농부가 될 것입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