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뛰어넘은 두 거장의 만남 떠나지 않는 감동
세월 뛰어넘은 두 거장의 만남 떠나지 않는 감동
  • 김기원
  • 승인 2013.09.1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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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슈베르트’
백건우연주회모습6
다소 넉넉해진 풍채와 부드러운 낯빛의 예순일곱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선택한 작곡가는 서른한 살 짧은 생을 살다간 낭만주의 작곡가 슈베르트.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휘몰아치는 격정을 뒤로하고 백건우가 이번 가을에 만난 작곡가다.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와 피아노의 서정시인 슈베르트의 만남은 깊어가는 가을밤의 그윽함에 견줄 만 했다. 아양아트센터 공연에서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20초가량 끊어질듯 이어진 정적과 여운은 한 줌의 감동까지 붙잡아 두고 싶었던 객석과 무대의 합작이었다.

◇백건우, 대구의 가을 물들이다

지난 10일 저녁 8시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린 아양아트센트 대공연장의 1천석 객석은 만석이었다. 슈베르트와 백건우, 두 거장을 만나기 위한 시민들의 기대가 입추의 여지없는 만석을 만든 것이다. 이날 연주회에는 ‘4개의 즉흥곡’ ‘3개의 피아노 소곡’, ‘음악적 순간’ 등의 곡들이 백건우의 감정선을 따라 재배열 돼 하나의 곡처럼 물 흐르듯 연주됐다. 슈베르트 생애의 마지막 즈음에 작곡된 음악들이며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곡들이어서 더 아련하고 익숙하게 다가왔다.

인터미션 없는 90여분이 완숙한 백건우의 연주로 순식간에 채워져 갔다. “은근한 낭만이 철학적이고 평화로워서 슈베르트를 선택했다”는 백건우가 피아노로 들려준 슈베르트의 곡들은 넘실대는 들길을 걷다 들꽃을 만났을 때 느끼는 소소한 아름다움에서부터 더 넓은 호수의 푸른 물처럼 잔잔한 감흥에 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뚝 솟은 능선의 기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하나의 대서사였다.

특히 이번 연주에서 돋보였던 것은 슈베르트 피아노의 전체 풍경을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두지 않은 연주자의 배려였다. 그런 그의 배려 속에서 군더더기 없는 해석과 자연스럽게 하나로 녹아드는 풍성한 멜로디와 간간히 이어지는 여백이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몰입을 이끌었다.

◇한 작곡가에 대한 치열한 탐구

“수박 겉핥기식 연주가 싫어 한 작곡가를 깊게 파고든다”는 그는 연주 인생 40년 동안 성직자가 성지를 찾아다니듯 불타는 탐구 정신으로 한 작곡가를 치열하게 파고드는 기질로 유명하다. 라벨과 무소르크스키, 포레,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스크리아빈 등이 그가 아로 새긴 작곡가들이다. 특히 2007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 2011년 리스트 시리즈 등은 백건우의 구도자적 기질을 보여주는 최근의 작업들로 꼽힌다. 슈베르트는 그가 이번 가을에 처음 소개하는 작곡가다.

이날 연주장을 찾은 정미애(주부·47)씨는 “90분을 이렇게 숨조차 삭여가며 몰입한 것은 오랜만의 경험”이라며 “청량제와도 같은 연주였다”며 소감을 전했고, 김교현(회사원·32)씨는 “작품 순서대로 연주하지 않고 ‘즉흥곡’ 1번으로 시작해 ‘음악적 순간’ 6번으로 끝나는 구성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그만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배치였다”며 감동을 전했다. 기립박수와 긴 환호로 연주회를 마친 백건우는 이날의 공연이 만족한 듯 만면에 미소가 넘쳤다. 30분가량 예정됐던 사인회가 1시간을 넘겨 계속될 만큼 관객과 연주자는 밤이 깊도록 슈베르트의 감동을 함께 했다.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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