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고인의 명복을 빌며
<대구논단> 고인의 명복을 빌며
  • 승인 2009.05.31 15: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은규 (대구보건대학 안경광학과 교수)

지난 한 주는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회적 분위기가 몹시 무거웠다.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에 있었던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국민들의 근본과 정서에 자리 잡고 있는 따뜻한 맘을 느낄 수 있었던 한 주였던 것 같다.

얼마 전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 학교에서 일 년에 한 번씩 학부모를 초청해 수업을 하는 일일명예교사 요청을 받고 한 시간 수업을 진행하면서 까마득한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끼리 모여 “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래? 라는 질문에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의사, 교수, 선생님 등이 거론되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이들의 대답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인식되면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리스트 중에도 당연 으뜸이 되는 대상은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현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민초들의 막연한 생각에 한 평생 먹고사는 문제부터 앞으로 활동하고 살아가는 부분까지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분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면 무척 안타깝고 한편으론 이해가 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유서에 삶과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렇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다. 처음부터 삶의 시작은 누구에게도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힘들게 선택한 죽음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왠지 그러한 죽음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삶의 시작이 선택이 아니었던 것처럼 죽음 또한 선택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조급히 기다리지 않아도 그리 멀지 않는 훗날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인 것을…. 인생은 급물살을 타고 물 위를 달리는 보트처럼 세월의 강을 따라 빠르게 흘러간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한 세월이 흘러 아이는 어느새 백발노인이 된다. 진나라의 시황제도, 대기업의 총수도 세월 앞엔 지극히 공평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고 피고 있다는 것은 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죽기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고 지기 위해 피는 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지켜보며 `어느 행복했던 죽음’이 떠올랐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 또한 행복하시오.” 2005년 4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의 임종을 지키던 신부와 수녀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이다.

당시 시인으로도 유명한 이해인 수녀가 교황의 서거를 애도하며 쓴 `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라는 제목의 추모시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던 `당신을 보내고 슬퍼하는 백성들에게 `행복해라. 행복해라’ 웃으시며 오늘도 정겹게 손 흔들어 주십시오.`라는 구절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만인은 지극히 평등하다. 권력이 크든 작든, 돈이 많든 적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자비의 신은 생명의 영속성을 위해 우리에게 생식(生殖) 기능을 선물로 주었다.
`나’라는 한 개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생물학적으로 그 명을 다할 수밖에 없지만 나의 후손을 통해 나와 똑 같은 세포로 만들어진 새로운 `나’가 유구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내가 아닌 나’로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장거리 계주(이어 달리기)’에서 전력을 다해 한 구간을 달리고 난 후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줄 때처럼 편안한 것이기도 하다.

전 국가원수로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 열정을 바쳤던 그는 이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 침묵속의 먼 길을 떠났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엇갈리지만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란 그의 말처럼 그의 노력과 업적과 정신은 역사에 남아 오래토록 국민들의 가슴에 기억될 것이라 믿으며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