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임금도 자살한 사람이 있을까
<대구논단> 임금도 자살한 사람이 있을까
  • 승인 2009.06.0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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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의 자살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저질렀다고 추정되는 범죄는 공직자로서 재임 중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불과하다. 그것도 모두 `집’에서 한 일이지 본인은 전연 몰랐다고 발뺌을 했기 때문에 오직 한 차례 검찰의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그의 처와 아들, 딸, 형 그리고 비서관이 돈을 받은 정황은 드러났으나 노무현 자신의 혐의는 부인일관으로 뻗대고 있는 상황이다.

신병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갑자기 터진 자실소동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동정심이 전국을 휩쓸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정부에서는 유족 측의 제의를 받아 성대하고 정중한 국민장을 치르는데 성의를 다했다. 일부 노사모들이 행패를 부리기도 했으나 그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나는 철부지 행동이었다.

최고의 권좌에 앉았던 인사 중에서 피살된 사람은 부지기수다. 유사 이래 나라끼리의 전쟁은 끊임이 없었다. 내부에서의 권력투쟁도 그칠 줄 몰랐다. 승자만이 모든 것을 차지한다. 임금도 자리에서 쫓겨나면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항복한 임금은 죽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들에게는 적당한 명칭을 부여하여 과거의 영화는 없더라도 호사스럽게 살아가도록 마련되었다.

조선왕조를 집어삼킨 일본이 마지막 황제 순종을 `이왕’(李王)으로 격하하고 옛날 살던 궁궐 한 구석을 할애해 준 것은 좋은 예다. 어마어마했던 조정대신들은 간 곳없고 이왕직이라는 초라한 이름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자식은 일본 볼모로 끌려가고 정략결혼으로 내선일체의 본보기 노릇을 해야 했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자살한 임금은 없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더라도 나라를 망친 고구려 영류왕도, 백제 의자왕도, 신라 경순왕도 궁녀들은 낙화가 되었지만 왕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죽은 이는 없다. 신하들 중에는 자결을 택한 이들이 수없이 많았고 일반 무지렁이 백성 중에서도 자결로 망국의 슬픔을 표현했지만 최고 권력을 휘두른 왕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자살한 사람은 천년도 훨씬 전인 고구려 14대 봉상왕(烽上王)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9년간 재위(在位)했는데 궁궐을 사치스럽게 증축하기 위해서 15세 이상의 백성들을 혹사시키면서도 그들의 궁핍상은 돌보지 않았다. 게다가 신하들의 직간을 무시하여 원망을 샀다.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 왕을 폐위시키고 이복동생인 을불(乙弗)을 세우려하자 왕자들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 역대임금의 수는 모두 216명인데 오직 1명만이 자살을 택한 것이다.

350명이 재위한 중국은 어떨까. 5명이 자살했다. 제1호는 성한(成漢)의 2대왕 유제(幽帝)다. 교만하여 정적을 많이 죽였다가 형에게 쫓겨나 별궁에 감금되어 목을 매어 죽었다. 2호는 전진(前秦)4대왕 선소제(宣昭帝). 전쟁에서 패하고 선위하라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세 번째는 후양(後梁) 주우정(朱友貞). 후당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다. 네 번째는 금(金)나라의 9대왕 애종(哀宗)이다. 몽고군에게 성을 빼앗기고 대세가 기울자 선위하고 자살했으나 나라는 구하지 못하고 망했다.

마지막 5호 자살자는 명(明)의 말왕(末王)인 숭정제(崇禎帝). 오랑캐로 치부했던 만주족에게 굴욕을 당할 수 없다하여 망국의 설움을 안고 죽어야 했다. 일본 천황은 현 재위자까지 모두 125명이다. 그들 중에서도 단 1명의 자살자가 나왔을 뿐이다.

제81대 안덕천황(安德天皇)이다. 그는 두 살에 즉위하여 여덟 살에 강에 몸을 던졌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대부분 20대에서 40대의 혈기 방장한 임금들이 죽어야 했지만 일본의 왕은 너무 어려서 정치가 뭣인지도 모르고 정적들의 권력다툼에 두려워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이다.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사람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동양 삼국의 예를 들어봤지만 임금을 지낸 사람의 숫자가 691명이다. 그들 중에서도 7명의 자살자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노무현의 자살로 1명이 추가된 셈이다.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수치스럽다. 전대미문의 추모열풍이 일었지만 그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자살을 택한 임금들의 공통점은 치정의 실패자가 대부분이다. 일반인들과 달리 최고 권력자에게는 최우선적으로 국가와 민족의 수호라는 절대 절명의 사명이 부여된다. 개인적인 괴로움은 나타내서도 안 되고 표현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사(私)는 깃들일 여지가 없다. 아무리 아프고 괴롭더라도 끝내 이겨나가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최선이다. 필자는 정치범으로 수없이 많은 고문과 투옥을 체험했다. 그렇게 살아온 동지들이 어디 한둘인가. 죽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노통을 따르겠다는 여대생과 청년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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