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향한 지극한 사랑과 절절한 민족혼
그림 소재가 된 소와 아이들 통해 풀어내
이중섭
그림 소재가 된 소와 아이들 통해 풀어내
이중섭
서양화가 이중섭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우리나라에서 빈센트 반 고흐만큼 유명한 국민화가다. 하지만 그의 화려함은 여기까지다.
실제 그의 삶은 ‘천재’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면서도 빈곤의 연속이었고, 가난 때문에 가족과 이별해야 할 만큼 불운했다.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림에 대한 끝없는 애착은 끝내 지켜지지 못하고 41세인 1956년에 정신병원의 어느 차가운 귀퉁이에서 쓸쓸하게 혼자 생을 마감했다.
인간 이중섭. 세상을 떠난 뒤 주위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꺼린 탓에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부로 지어낸 일화들이 희화화돼 그를 대변하고 있다. 최근 그의 살아생전 소망과 끝없는 창작의 숨겨진 원천을 찾기 위한 ‘이중섭 바로보기’ 노력들이 감지되고 있다. 고산고정일이 신간 ‘이중섭’을 출간한 것 또한 그러한 기류 들 중 하나다. 그의 신간 출간 배경에 희화화된 이중섭의 그림자를 지워내고 진실한 이중섭을 되짚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이나 이성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전쟁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중섭이지만 인간과 미술을 사랑한 천재였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 속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리면서도 혼을 더럽히지 않았던, 바보스러우리만치 순수했던 사람이었다”며 “이중섭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은 그를 기리고 그의 그림을 아끼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며 책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중섭은 고독하고 우수에 찬 예술혼, 아내와의 농염한 애정, 아들들과의 행복한 놀이, 티 없이 순진무구한 아이들과 낭만적인 무릉도원의 세계를 꿈꾸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전쟁과 분단에 분노한 평화주의자요 민족혼의 화기였다.
책은 악한 세력에 꿋꿋이 맞서는 화가의 절절한 민족혼과 그의 애통한 시심과 염원들을 이중섭의 애피소드 하나 하나와 연결 지으며 인간 이중섭의 근원을 탐구한다.
특히 ‘소’와 ‘어린아이’가 그림의 중심 소재가 된 배경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소’는 일제강점기 하의 조선인들의 항거정신을, 은지화에 그린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첫째 아들과 떨어져 살았던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저자는 1954년 11월 21일, 개인전을 준비 중이던 서울의 이중섭이 도쿄의 아내에게 쓴 편지를 소개하며 이중섭이 ‘소’에 담아내려 했던 정신을 새롭게 유추해 본다.
이중섭은 편지에서 ‘우직하면서도 꿋꿋한 소’를 언급하며 가난 때문에 가족을 떠나보내고 홀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외로운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편지를 근거로 독자들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울분이라는 기존의 의미에 불운한 자신의 인생에 항거한 자화상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이중섭의 ‘소’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
저자는 또 ‘인간 이중섭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아이들’ 그림의 원류를 찾는다. 그 실마리로 그가 가난을 피해 엄마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 아들 태현에게 보낸 글을 소개한다.
“나의 태현아 건강하겠지.(.....)엄마·태현·태성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활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그럼 몸 성해라”라는 이중섭의 편지 내용에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화가의 간절함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독자들은 이 편지을 통해 그가 아이 그림에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를 느끼게 된다.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출품작 가운데 이중섭의 ‘황소’그림이 관람객들로부터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 1,2위에 나란히 뽑혔다. 우리나라 화가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그의 천재성과 예술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듯 절명한 천재화가 이중섭은 ‘소’가 되어 우리곁을 영원히 지키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실제 그의 삶은 ‘천재’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면서도 빈곤의 연속이었고, 가난 때문에 가족과 이별해야 할 만큼 불운했다.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림에 대한 끝없는 애착은 끝내 지켜지지 못하고 41세인 1956년에 정신병원의 어느 차가운 귀퉁이에서 쓸쓸하게 혼자 생을 마감했다.
인간 이중섭. 세상을 떠난 뒤 주위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꺼린 탓에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부로 지어낸 일화들이 희화화돼 그를 대변하고 있다. 최근 그의 살아생전 소망과 끝없는 창작의 숨겨진 원천을 찾기 위한 ‘이중섭 바로보기’ 노력들이 감지되고 있다. 고산고정일이 신간 ‘이중섭’을 출간한 것 또한 그러한 기류 들 중 하나다. 그의 신간 출간 배경에 희화화된 이중섭의 그림자를 지워내고 진실한 이중섭을 되짚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이나 이성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전쟁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중섭이지만 인간과 미술을 사랑한 천재였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 속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리면서도 혼을 더럽히지 않았던, 바보스러우리만치 순수했던 사람이었다”며 “이중섭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은 그를 기리고 그의 그림을 아끼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며 책 출간 이유를 설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중섭은 고독하고 우수에 찬 예술혼, 아내와의 농염한 애정, 아들들과의 행복한 놀이, 티 없이 순진무구한 아이들과 낭만적인 무릉도원의 세계를 꿈꾸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전쟁과 분단에 분노한 평화주의자요 민족혼의 화기였다.
책은 악한 세력에 꿋꿋이 맞서는 화가의 절절한 민족혼과 그의 애통한 시심과 염원들을 이중섭의 애피소드 하나 하나와 연결 지으며 인간 이중섭의 근원을 탐구한다.
특히 ‘소’와 ‘어린아이’가 그림의 중심 소재가 된 배경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소’는 일제강점기 하의 조선인들의 항거정신을, 은지화에 그린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첫째 아들과 떨어져 살았던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저자는 1954년 11월 21일, 개인전을 준비 중이던 서울의 이중섭이 도쿄의 아내에게 쓴 편지를 소개하며 이중섭이 ‘소’에 담아내려 했던 정신을 새롭게 유추해 본다.
이중섭은 편지에서 ‘우직하면서도 꿋꿋한 소’를 언급하며 가난 때문에 가족을 떠나보내고 홀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외로운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의 편지를 근거로 독자들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의 울분이라는 기존의 의미에 불운한 자신의 인생에 항거한 자화상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이중섭의 ‘소’에 대한 지평을 넓힌다.
저자는 또 ‘인간 이중섭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아이들’ 그림의 원류를 찾는다. 그 실마리로 그가 가난을 피해 엄마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 아들 태현에게 보낸 글을 소개한다.
“나의 태현아 건강하겠지.(.....)엄마·태현·태성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가 앞에서 활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다.(.....)그럼 몸 성해라”라는 이중섭의 편지 내용에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화가의 간절함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독자들은 이 편지을 통해 그가 아이 그림에 어떤 마음을 담았는지를 느끼게 된다.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 출품작 가운데 이중섭의 ‘황소’그림이 관람객들로부터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 1,2위에 나란히 뽑혔다. 우리나라 화가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그의 천재성과 예술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듯 절명한 천재화가 이중섭은 ‘소’가 되어 우리곁을 영원히 지키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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