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서툴지만 30년뒤 대구위한 디딤돌 쌓는 중”
“아직 서툴지만 30년뒤 대구위한 디딤돌 쌓는 중”
  • 정민지
  • 승인 2014.01.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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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인> 메세지팩토리 노경민 대표

야학 통해 봉사 눈 떠…대구시 공모전서 재미·가능성 확인

올해 ‘마을기업’ 되는게 목표…주민과 함께 할 일 고민 중

“비영리단체 등에 이론과 실무 겸비된 컨설팅 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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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메세지팩토리의 노경민 대표가 그동안의 활동을 모아놓은 현수막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첫 만남은 겨울 초입 대구 달서구 두류동에서 열린 골목김장 현장이었다.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 자원봉사자들이 김치를 담그느라 정신없는데 학생처럼 보이는 한 청년이 사진을 찍으며 행사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청년은 ‘메세지팩토리’라고 새겨진 명함을 건넸다.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한번에 와닿지 않았다. 청년의 이름은 ‘노경민’, 메세지팩토리의 대표였다.

명함첩 한 켠에 ‘물음표’로 남아있던 노 대표에게 어느날 문득 전화를 걸었다.

첫 만남 이후 한 달도 넘었지만 그도 김장날 만났던 기자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급하게 인터뷰를 정하고 이틀 뒤 메세지팩토리의 사무실이 있는 두류동 삼익신협 지하 1층 카페 숨(SUM)에서 그를 만났다.

◇각자가 가진 ‘메세지’를 연결하고 모아 새롭게 만드는 ‘팩토리(공장)’

‘메세지팩토리’는 2011년 시작됐다. 소셜 메신저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12년 지금의 사명으로 바꾸고 청년 사회적기업가들과 교육문화 공동브랜드 ‘꿈이룸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메세지팩토리를 비롯해 방과후교실, 인문학교육, 책디자인, 영상제작 등 8개의 서로 다른 일을 하는 협동조합이 모인 것이다. 그해 ‘꿈이룸 협동조합’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지난해 공간이 없었던 이들을 위해 삼익신협이 무상으로 건물 지하를 빌려줘 그곳에 사무실과 카페형 교육·문화 공간 ‘숨’이 차려졌다.

꿈이룸 협동조합의 이사이자 메세지팩토리의 대표인 노경민(29)씨는 “개인이 가진 다양한 메세지들을 연결하고 모아내 함께 즐기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소셜 기획사”라고 메세지팩토리를 소개했다. 그는 “메세지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본다”며 “개별적인 메세지를 발굴해 이를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 강연, 자원봉사, 소셜파티 등을 기획·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에 집중된 아카데미, 지식나눔행사 등 비수도권의 학생들이 겪고 있는 문화격차를 줄여보고자 강연자를 섭외해 진행하는 ‘감동콘서트’와 겨울철 연탄나눔을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청년봉고’, 수능을 끝낸 고3들이 기획하는 ‘TTP(Test Taker Project)’등 기수를 거듭하는 프로그램과 시기에 맞는 특강과 단발성 활동 등 지난 3년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2014년에는 기존의 사업과 더불어 마을공동체 사업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두류동 토박이 머리핀 공장 아들, 봉사활동에 눈뜨다

노 대표는 두류동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머리핀 공장을 당연히 물려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릴때부터 친척과 이웃들로부터 ‘경민이는 아버지 공장 물려받으면 되니 좋겠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죠.”

대학을 가길 원하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진로 고민없이 ‘공장=기계’라는 생각에 기계과를 가려했다. “먼저 기계과에 들어간 친누나가 만류해 공장경영에 도움이 되고자 금오공대 산업경영학과를 선택했다”는 노 대표는 이론 중심의 수업에 재미를 못 느끼고 2006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시작했다.

일과가 끝나고 저녁시간을 보람있게 보내려던 중 우연히 야학 봉사자모집을 보고 시작한 야학활동.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휴학생이라는 이유로 교무부장을 맡게 됐어요.” 노 대표는 야학 봉사자를 모집하기 위한 홍보부터 인사, 행정기획, 예산편성 등을 처리하면서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것들을 실무적으로 적용하고 남 앞에서 말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렇게 1년 반의 야학 활동을 하면서 모 이동통신사의 대학생봉사단에 들어가 복지관과 보육원 등에서 교육봉사도 시작했다. 이후 대학생봉사단의 대구경북지역 대표단이 되고 서울을 오가며 전국의 대표단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서서히 느꼈다.

“우연히 대구시의 자원봉사 프로그램 공모전에 참가하게 됐는데 우리가 기획한 3개 프로그램이 모두 선정돼 예산이라는 것을 받게 됐어요. 대부분 경험이 풍부한 자원봉사 관련 기관이 수상했는데 대학생들이 공모전에 참가한 것도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이 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죠. 제가 만든 경제교육 프로그램이 우수상을 받았고 그 때 프로그램 기획과 봉사활동의 재미와 가능성을 알게 됐죠.”
/news/photo/first/201401/img_119960_1.jpg"메세지팩토리/news/photo/first/201401/img_119960_1.jpg"
협동조합 메세지팩토리는 노경민 대표(오른쪽 두번째)와 실무를 담당하는 동료들이 만들어가는 소셜 기획사다.
◇인적 네트워크의 가능성 확인, 좋아하는 일에 올인하다

2009년 복학한 노 대표는 대학생 봉사동아리를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개인적인 즐거움도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봉사단을 만들겠다고 교수님들을 찾아가면 ‘영어 점수 올릴 생각이나 해라, 논문 한 편 더 읽는 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죠.”

애초에 계획했던 농촌의 아이들에게 경제 교육을, 노인들에게 모바일 교육을 하려던 기획도 농촌에서 대학생들의 봉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동아리 결성을 거의 포기하려고 했다.

그 즈음 금오공대 30주년 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술과 연예인 공연이 전부인 대학축제에서 탈피해 우리들만의 의미있는 축제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데 몇몇 친구들과 뜻을 함께 했어요.” 노 대표와 친구들은 축제 기간에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벼룩시장을 열었으며 직접 인물을 섭외해 강연회를 개최했다. “대학생 봉사단 활동하면서 만났던 사람, 인터넷으로 보고 메일을 보내 섭외한 세계일주 한 대학생, 대학생 기자로 상을 받은 사람, 아름다운 가게 활동가 등 ‘메세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어요.” 이들의 활동이 학교 측과 학생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KIT봉사단, 소셜 메신저가 만들어졌다.

“6개월 활동하고 취업으로 인해 봉사단을 관두게 됐어요. 이후 후배들이 20명 정도 들어왔지만 그에 맞는 기획력이 부족해 그냥 ‘봉사’만 하는 동아리가 되면서 동력을 잃고 문을 닫게 됐어요. 1년 반 정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마음을 정하고 ‘메세지팩토리’를 만들었죠.”

◇마을기업으로 또 한번의 변화 시도, 동네를 품다

메세지팩토리 기획의 주체이자 대상은 주로 청년과 청소년이다. 이유를 물었다. 노 대표는 “대부분 청소년들이 하는 봉사활동은 즉흥적인 잡무가 많아요. 봉사활동이야 말로 모든 분야에 존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자신이 기획하면 달라질 수 있어요. 기획을 통한 봉사활동을 만들다보니 가장 밀접한 청년, 청소년들과의 네트워크가 강해졌죠.”

노 대표와 인터뷰를 하던 옆 방에서는 앳된 목소리가 섞인 논의가 진행중이었다. 지난 9일부터 시작된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연합해 메세지를 찾는 자기주도형 진로개발 프로그램인 ‘메아리(메세지 찾아 삼만리)’활동이었다. 미약하나마 머리를 맞대고 작은 것부터 실행하는 것에 의미를 둔 프로젝트다. 사회에서 학생으로 통칭되는 이들의 잠재력이 돈을 버는 것으로만 평가받는 현실에서 어쩌면 꿈같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론 잊혀졌던 ‘학생’의 본모습 같기도 했다.

2014년 메세지팩토리는 ‘마을기업’으로 거듭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달 달서구청의 마을기업육성사업 공고가 나오면 신청할 예정이다. 두류동에서 나고 자라 이곳에서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는 노 대표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동료들과 같이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나만의 메세지만 관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나의 메세지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통해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면 다른 친구들이 그 과정에 놓였을 때 도움이 되고 두류동의 메세지팩토리를 통해 또 다른 동네에 메세지팩토리2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을 정리했어요.”

메세지팩토리는 최근 웹진을 제작했다. 조합의 소식을 전하고 활동을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 앞으로 2주마다 한 번씩 낼 예정이다. 웹진과 별도로 마을 잡지도 계획중이다. ‘두류동’의 이곳저곳의 볼거리와, 여행거리, 먹을거리 등 소개와 이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올해는 ‘숨’이라는 공간에서 마을 주민들과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있어요. 작게는 매주 월요일마다 주민들과 바느질공예 수업을 시작할 것이고 조만간 카페 안에 ‘작은도서관’을 만들 계획도 있죠. 더 나아가 목공소를 만들어 집 수리나 빈집 활용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등 마을목공소 사업을 기획하고 있어요.”

노 대표의 이야기는 쉼없이 이어졌다. 한숨 돌릴 겸 10년 전 상상도 못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며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먼저 넓게 파라

“경영컨설팅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금오공대에서 봉사동아리 만들때 도움을 주셨던 교수님과 인연이 돼 공부를 계속하는 중인데 내년까지 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10년 뒤에도 어떤 과정 속에 있겠지만 비영리 단체나 사회적 기업 등에 이론과 실무가 겸비된 컨설팅을 해주고 싶어요. 제가 힘들고 방법을 찾지 못할 때 대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협동조합 대표, 활동가 등 먼저 시작한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들의 토닥임과 조언이 양분이 된 것처럼 저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노 대표는 청년창업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스펙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2~3년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조금 관심이 간다고 몇 번 찔러보고 쉽게 포기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게 안타깝죠. 누군가 제게 이것저것 너무 많은 일을 펼쳐 놓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생각을 하죠. ‘우물을 깊게 파려면 먼저 넓게 파라’는 말이 있어요. 올해가 메세지팩토리에는 ‘우물을 깊게 파야할 시기’라고 봐요. 그간의 활동들을 체계화하고 집중할 예정입니다.”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방관하거나 ‘가슴뛰는 일을 하라’고 부추긴다. 청년들은 열광하지만 현실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 달려가기 바쁘다. 대구의 청년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나가는 것에 노 대표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에 국한해서만 봐도 인프라와 문화,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서울, 수도권을 따라갈 수 없는데 대학과 취업은 말할 것도 없죠. 떠나는 사람을 붙잡을 방법도 모색해야겠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청년, 그리고 언젠가 돌아올 청년이었던 그들을 위한 일들도 필요해요. 마을만들기도 그런 작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최근 여러 사람들과 대화 중에 나온 이야긴데 30년 뒤의 대구를 생각하면서 지금 일을 하자며 ‘2030년을 위한 2030세대들의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어요. 재미있지 않나요?”

거대한 대구 지역발전방안과 각종 사업들만이 세상에 소개되지만 대구의 어느 한 곳에서는 노 대표뿐만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경쟁의 시대에 ‘연대’를 가치로 두는 청년, 노경민 대표는 인터뷰가 끝나자 기사가 언제쯤 나오냐고 물었다. “아버지께서 말씀은 안하셔도 기사난 걸 가져다 드리면 좋아하세요. 당연히 공장을 물려받을 줄 알았던 아들이 돈도 안되고 뭔지도 모르는 일을 한다고 초반에는 부모님의 걱정이 컸어요. 지금은 많이 이해해 주시지만요.”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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