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척 안찾고 합동차례 지내고
고향·친척 안찾고 합동차례 지내고
  • 정민지
  • 승인 2014.01.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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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편하면 그만”…갈수록 퇴색해가는 설 명절

차례상 대행업 이용…대구만 수십개 업체 성업

집안일 피하고 친척 안보려 당직근무 자청 많아
‘명절’의 의미가 점차 변하고 또 편의위주로 흐르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추석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성인 1천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차례상을 차리지 않겠다고 한 비율은 7.6%에 불과해 수치상으로 십여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고향이나 친척을 찾는 것보다 개별가족 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이런 현상은 이번 설을 앞두고도 별반 차이가 없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가족구성에 맞춰 세트로 팔거나 배달해주는 대행업이 갈수록 성황을 이루고 사찰이나 성당의 ‘합동차례’도 늘고 있다.

대구지역만 해도 차례음식대행업체가 수십여곳에 이른다. ‘명절=휴가’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내 호텔이나 콘도에서 투숙객들을 위한 합동 차례상이 차려지는 것은 벌써 옛 얘기다.

인터넷 상에는 차례상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며 여행지에서 절을 하는 웃지 못할 사진도 나돌고 있다.

23일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따르면 설날인 31일에 열리는 합동차례 접수가 100여건을 넘어섰다.

동화사 관계자는 “음식을 준비하지 않는 편리함 등으로 합동차례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가정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회사원 K(30)씨는 “1년에 11번의 제사를 치르는 집안으로 명절이면 30여명의 친척들이 몰려왔지만 10여년 전부터 제사를 3번으로 줄였고 명절에도 친척들이 당일 아침에 왔다가 오후도 안 돼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K씨는 “비용이나 체력적인 면에서 편해지긴 했지만 친척들간의 정이 많이 사라지면서 명절이 명절 같지않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음식대행업체를 통해 차례상을 준비하는 수성구 만촌동 L(여·43)씨는 “정성을 들여야지만 시간도 없고 물가도 비싸 대행업체를 이용하게 됐다”며 “드러내진 않지만 주변에도 꽤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경우 집안일을 피하고 친척들과 부대끼기 싫어 당직 근무을 자청하는 경우도 뚜렷해졌다.

지난 21일 한 구인사이트에서 발표한 ‘설연휴 근무’ 설문조사에서 662명의 응답자 중 81.3%가 설 연휴에 근무하거나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 연휴 근무 시 장점으로 ‘가족들의 잔소리, 음식 준비 등 각종 명절 스트레스에서 해방된다’가 36.9%, ‘명절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어서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점’이 18.4%를 차지해 불경기와 개인주의적 성향이 맞물려 명절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4년차 직장인 K(여·34)씨는 “설 연휴 첫날 당직 근무인데 기혼자 중 몇 명이 근무날짜를 바꾸자는 제안을 해왔다”며 “시댁에 가 음식만드는 것을 피하기 위한 핑계로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통현대혼례연구원 손재현 원장은 “조선후기부터 차례(제사)가 형식적으로 변질되면서 허례허식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차례’는 부모·조상에 대한 마음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며 “소박한 차례상이라도 정성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또 “명절은 자주 만날 수 없는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통적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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