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날개가 없어도
허공을 날아 아무도 모르게
잎에 앉아 둥글다
투명한 빛이 모인 결정체로
너를 건너온 꿈의 밑바닥에
모두가 가버린 물결이 친다
하늘을 빌려 왔다가 갈 뿐인데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이쪽
제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영원과 찰나의 시공 속에서
반짝이는 빛의 작렬이
우리들의 사랑인데도 흔적이 없다.
▷1956년 초현실주의 동인지『가이가』를 통해 시작활동. 부산시문화상, 상화시인상, 국제펜문학상 등 수상. 시집「검은 산호의 도시」(1962)외 다수. 현재 동아대학교 명예교수.
이슬을 가리켜 `풀끝의 이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불문(佛門)의 초로(草露)에서 유래된 듯싶다. 이슬은 어느 쪽으로 보아도 허무와 무상과 생명의 덧없음으로 상징된다. 인생은 아침이슬과 같다고 했는가 하면, 저녁에서 이른 새벽까지만 존재하는 이슬을 `태양을 잃은 하늘의 눈물’이라고 표현한 이도 있다.
`허공을 날아 아무도 모르게 / 잎에 앉아 둥글다’는 이슬은 `우리들의 사랑인데도 흔적이 없다’는 시인의 표현이 이채롭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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