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양지쪽에서
한줌 흙으로 만족했던 인생!
모래성을 쌓아 놓고도
천하를 호령하는 성주
나는 언제나 왕자였네.
나이 들어서는
한송이 꽃을 바라보며
남몰래 가만히 한숨 쉬는 버릇
보랏빛 노을을 사랑했고.
아버지가 된 지금은
왜 무시 크듯 쑥쑥 크는 새끼들 보며
주름살로 소슬히 웃는 버릇
씁쓰름한 소주로 목을 축이네.
파랑새를 찾으러 간
그날의 소년은 돌아오지 않고
저 산 너머 멀리
행복을 찾아간 소녀도 돌아오지 않고
(이하 생략)
▷전남 화순 출생.『현대문학』추천(1959)을 통해 등단. 민주화 운동 참여 교수로 널리 알려진 대로 조선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원로 시인. `인생’이라는 이 시는 말 그대로 한 인간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별다른 수식 없이 담담히 그려 보이고 있다.
누구나 유년 적에는 왕자 같은 꿈 많은 시절을 갖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꿈의 실현과는 반대로 꽃을 보고 한숨 쉬고 보랏빛 노을 속에 씁쓰름한 소주가 오히려 위안이 되는, 그런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각인돼 있는 시편이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