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입문 10년…남다른 열정으로 새로운 길 찾는다
패션 입문 10년…남다른 열정으로 새로운 길 찾는다
  • 김정석
  • 승인 2014.02.2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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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운 디자이너
군 복무시절 접한 남성 잡지… 건축학도 포기하고 디자이너 결심
옷 만들기 위해 섬유패션기능대학 입학
좋아하는 일, 밤낮 가리지 않고 작업
해외 패션페어 참가 후 디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
서구중심 패션 경향, 근본으로 되돌릴 것
패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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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물에는 직선이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직선을 만들어 사용하죠. 우리는 이런 다양한 선을 이용해 근본도 볼 수 있으며 진보와도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을 만들어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서 그가 품은 꿈은 크다. ‘근본의 패션을 디자인하는 것.’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나아가는 패션의 경향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 그는, 애초 가지가 뻗어나가기 시작한 ‘시발점’으로 되돌아가 패션이 전혀 새로운 가지를 뻗길 희망한다.

최갑운(33) 디자이너.

그는 말 그대로 ‘태어나 재봉틀 한 번 본 적이 없었던’ 삶을 살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면서 스무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무작정 패션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동안 아무 것도 익힌 것 없고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었지만,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섬유패션기능대학(현 한국폴리텍대학)에 원서부터 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최 디자이너의 결론은 의상 디자인이었다.

이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지역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신진 디자이너로 거듭난 최 디자이너. 패션 문외한이 의상 디자인 업계로 뛰어들게 된 ‘일대 사건’에서부터 최근 대중과의 접점을 고민하게 된 현재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톺아봤다.

◇어수룩한 건축학도…디자이너의 길에 뛰어들다

-원래 건축학도였다고 들었다.

“디자이너 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옷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다. 학교를 실업계 고등학교 건축 전공으로 가다 보니 대학도 자연스레 건축학과로 가게 됐다.

군 복무를 거치면서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군대에서 ‘GQ’나 ‘에스콰이어’ 같은 남성잡지를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멋있는 옷들을 보면서, 나도 이런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역이 다가오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군 복무는 해군에서 했는데, 해군에 간 이유는 이왕 가는 거면 여느 사람들과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물 공포증도 극복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해군이 육군이나 공군보다 옷의 종류도 훨씬 많았던 덕분에 패션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던 것 같다.”

-처음엔 패션이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다는 말인가.

“패션을 처음부터 좋아했다면 학창 시절 그렇게 어수룩하게 입고 다니진 않았을 거다. 단추도 끝까지 다 채우고…. 남들이 보기엔 조금 멍청해 보일 만큼 어수룩했다. 하지만 미술은 유독 좋아했다. 특히 파인아트에 대한 흥미가 남달라서 학창시절에 도서관에서 미술 관련 책을 많이 찾아 읽었다. 공부에는 워낙 소질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길 좋아했는데, ‘좀 논다’는 친구들과 술도 많이 마셨지만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과 도서관에도 많이 갔다. 학창시절부터 놓지 않았던 미술에 대한 흥미가 패션으로까지 이어진 게 아니겠는가.”

-자신에게 영감을 준 디자이너가 있었나.

“패션기능대학 면접을 준비하면서 패션을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에 앉아 패션전문 열람집을 봤다. 아직 기초가 없어서 그런지 책에 실린 디자인들이 그저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다 만난 디자이너가 ‘알렉산더 맥퀸’이다. 그의 디자인을 보고난 뒤부터 다른 이들의 디자인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시했다. 그렇게 알렉산더 맥퀸의 디자인만 1시간 넘게 들여다봤다. 그의 디자인을 접하고부터는 패션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하나의 예술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의 디자인은 전위적이고 음산하다. 그런 그의 디자인이 나의 취향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패션업계에 막 뛰어들었을 때 나는 사지도 들어가지 못할 이상한 디자인을 했었고, 작업실에 커튼을 쳐놓고 음울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두 달씩 나오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그에게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패션업계에 첫 발을 들일 때 무엇부터 했나.

“퍼뜩 든 생각은 의상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곳에 가자는 것이었다. 찾아보니 섬유패션기능대학이라는 곳이 있었다. ‘기능대학’이라는 어감 자체가 기능인 양성을 잘 하는 곳처럼 들렸다. 등록금도 쌌다. 학교에 들어가 보니 다른 학교보다 디 자인을 익힐 수 있는 환경이 더 좋았다.

의상 디자인과에 들어갈 때는 태어나 재봉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의상 디자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곡선박기를 못해 나이 어린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배웠다. 처음 뛰어든 일이라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배웠다. 얼마나 열정이 넘쳤는지 입학 보름 만에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했다. 물론 낙방했다.”

-디자이너의 길을 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패션페어에 참가했다. 뿌듯했겠다.

“기대를 엄청나게 하고 갔다. 처음으로 참가한 해외 패션페어는 프랑스 파리였는데, 현지 학생을 비롯한 참관객들이 내 작품에 관심을 많이 보여 처음엔 기뻤다. 하지만 내가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무명 디자이너인 데다, 독특한 디자인의 의상이 과연 상품성까지 갖고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컸던 탓에 바이어들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내 작품에 대한 관심이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였다. 예술과 상품, 디자인과 판매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길을 걷다 만난 고민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2004년 섬유패션기능대 입학 후 그는 2006년 두타 디자이너 컨퍼런스 은상을 시작으로 2007년 F/W 신진디자이너 컬렉션 금상, 2008년 파리 ‘Rendez-vous femm’ 패션페어 참가, 2009년 S/S 서울 패션위크 참가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에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신진 디자이너 양성사업인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스튜디오’에도 입주했다.

이처럼 착실히 디자이너의 길을 걷던 최 디자이너는 어느 날 문득 ‘패션 디자인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그는 ‘디자인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 아닐까’, ‘디자인이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기에 이르렀다.

-디자이너로 살면서, 슬럼프는 없었나.

“디자인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빠진 적이 있었다. 사실 패션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이미지로 대중을 현혹하거나 말장난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포장할 수 있다. 현대미술이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작품으로 대중에게 난제를 던지는 경우가 많은데, 현대 패션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1년 가까이 ‘이미 좋은 옷이 많이 나왔는데 나까지 뛰어들어 대중을 현혹하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어떤가.

“나의 디자인은 처음엔 화려하고 과도하고 참신한 것을 추구했지만, 오랜 기간에 걸친 고민으로 지금은 대중과의 접점을 많이 찾으려 하고 있다. 패션이 디자이너 개인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패션을 접한 이들에게 기쁨과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 디자이너는 본래 타인의 창작물을 베낀 디자인이나 상품성을 염두에 둔 패션을 몹시 혐오했다. 대중의 지갑을 열기 위한 디자인,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디자인, 자신만의 색깔을 찾을 수 없는 디자인. 그에겐 모두 비난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그는 디자이너의 길을 막 걷기 시작했을 때에는 ‘저게 옷인가’라는 말을 들을 만큼 ‘기이한’ 디자인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 최 디자이너는 모방의 반복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막 시작한 이들이 택하는 ‘카피(copy)’가 기본을 닦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최 디자이너는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을 품고 있었던 것을 받아들이고, 지금은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근본으로 거슬러가기…“제 꿈이 너무 큰가요”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여성의류 브랜드 ‘KABOUN’에 이어 남성의류 브랜드 ‘LAZY LOBBY’를 론칭해 국내 시장의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 KABOUN은 비교적 비싼 가격으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수요가 있었는데, LAZY LOBBY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내 시장을 노릴 예정이다. 현재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고, 서울과 대구에 적당한 매장과 셀렉숍을 찾고 있다. 한동안은 LAZY LOBBY의 판로 확대에 힘을 쏟을 것 같다.”

-결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원래는 파리 컬렉션이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욱 큰 꿈을 품었다. 현재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패션의 경향을 근본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오늘날 패션의 경향은 마치 하나의 가지가 뻗어나가듯 한 가지 방향으로 자라난다. 특이하고 참신한 패션 디자인도 물론 등장하지만, 비주류 패션이 주류 패션을 압도하진 못한다. ‘패션’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정해져 있다. ‘복고’나 ‘레트로’라는 일시적 유행이 흐름을 잠깐 되돌릴 수는 있지만, 그것 또한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 속에 존재한다.

내가 꿈꾸는 것은 가지가 뻗어나가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을 찾고 싶은 것이다. 가지는 한 방향으로 자라날 수밖에 없지만, 그 가지가 뻗어 나온 줄기에는 다양한 가지들이 존재한다. 내 패션이 근본을 찾는 데 기여하고 결국 패션이 근본을 되찾을 수 있다면, 오늘날의 패션은 재편될 것이다. 이것은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던져준다. 우리가 패션의 근본을 찾고 나아가 또 다른 패션의 경향을 만들어내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패션의 다양성 확대다.”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사진=박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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