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상 향토사학자 “학살 자행 등 상세한 항일기록 담긴 중요한 자료”
이번에 발견된 항일의병장 학살 관련 문건은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1907~1909년사이 경북지역 등 국내에서 50~400여명의 의병대를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 당시 체포돼 순국한 항일의병장 41명과 무명 항일투사 218명의 기록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을 찾아 지난 4일 진주보훈지청을 통해 서훈을 신청한 정재상 경남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경남독립운동 연구소장)은 27일 “일제가 작성한 ‘진중일지’(토지주택박물관 소장)와 ‘폭도에 관한 편책’(국가기록원), ‘조선 폭도토벌지’ 등에서 경북출신 항일의병장 14명을 포함한 의병장 41명(경남12명, 전남8명, 전북5명, 강원2명)과 무명 항일투사 218명의 학살문건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에 따르면 문건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항일의병장과 무명 항일투사에 대해 일제가 ‘도주를 기도함에 죽였다’고 보고하며,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을 토대로 전해진 경북출신 항일의병장 14명의 공적요지로는 △경주에서 의병 50여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체포돼 1908년 5월 총살된 권문선(경주 산내면) △의병 60여명을 지휘하며 1907년 9월 일본군 정보를 수집하다 발각돼 총살된 김성달(문경 신동면) △60여명의 의군을 조직해 맞서다 1907년 9월 체포돼 총살된 김용출(화안군 달미면) △영천 등지에서 의병 100여명을 지휘하며 수 차례 격전을 벌이다 1907년 12월 총상을 입고 순국한 김직현(영천 자양면) △고령일대에서 150여명의 의병을 지휘하다 1908년 8월 체포돼 총살된 박인시(고령 명곡) 등이다.
또 △의병 90여명을 지휘하다 1908년 10월 총살된 이로침·이병기(구미 백산면) △김천·성주 등지서 100여명의 의병과 일본군에 맞서다 1908년 12월 총살된 김백룡·황방우·최무용·최일진·정파총(김천 연명면 및 농소면) △성주 등지서 의병 200여명과 일본군과 교전하다 1908년 4월 전사한 박부장(성주 거구리) △봉화 일대에서 의병 200여명과 일본군에 항전하다 1907년 12월 총살된 김성칠(봉화 황엽령) 등이다.
정 위원장은 “이번에 찾은 경북지역 14명 등 41명의 의병장에 대해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에 서훈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미 서훈자로 밝혀졌다”며 “이번 문건은 의병장들의 뚜렷한 항일기록이 있는 만큼 독립유공자 서훈에 중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선일기자 ksi@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