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적벽대전
<대구논단> 적벽대전
  • 승인 2009.06.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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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식 (대구대 사범대학 교수)

누구나 소설 `삼국지’에 푹 빠진 적이 있을 테지만,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제갈공명일 것이다. 천하대세를 꿰뚫어 보는 긴 안목과 신출귀몰한 전략, 삶에 대한 진정성과 주군에 대한 충성심,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대세에 밀려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등이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소설대로의 공명이라면 전쟁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단연 그였어야 한다. 그러나 소설은 그 유명한 오장원의 전투에서 공명이 죽는 것으로 그의 꿈이 끝내 이루어 지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공명에게 그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유비가 공명의 인물됨을 들어 알고 그의 오두막을 세 번이나 찾아간 끝에 겨우 그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 사람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사람을 얻는데 얼마나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고사지만, 당시의 세태를 생각해보면 이 대목에서 의심스러운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조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는 외척 왕망에 의해 찬탈되었다가 다시 회복되었지만 곧 환관이 천하를 주무르는 난세로 변했다. 앞 왕조를 망친 외척을 견제하는데 환관을 이용한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 준 것이다. 난세의 간웅이라 칭해진 조조도 환관가문 출신이었다. 환관에게 무슨 아들이 있었느냐는 하겠지만, 환관의 혈육이 아니라 환관 가문에 양자로 들어갔던 것이다.

환관과 그 나부랭이들이 설쳐대는 세상에 뜻있는 선비들은 한없는 좌절감에 빠져 들었다. 세상에 초연한 것이 목숨을 부지하고 천수를 누리는 길이라 여기고, 죽림에 숨어들어 현실을 초월한 오묘한 세계나 신선의 세계를 꿈꾸는 자들도 많았다.

공명도 말하자면 그런 부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죽림에 숨어든 그들이었으나 세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으니, 난세를 평정할 불세출의 영웅을 염원하면서 그 영웅과의 조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명에게 나타난 것은 한 황실의 후예를 자처하였지만 별로 믿을 수 없는, 볼품없는 호족 유비였다. 별로 알려지지 않는 인물의 출현에 공명은 시큰둥하였던 모양이다. 만약 그를 찾은 이가 유비가 아니라 조조였거나, 조조와 중원을 다투었던 원소였다면 그들을 어떻게 대접하였을까 의심되는 것이다.

공명의 생각으로는 인물로 따지다면 유비만한 사람도 없을 터이지만, 유비로서 천하를 평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비에게 몸을 맡기는 것은 천하를 얻지 못함은 물론 천수까지 보존하기 어려움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운명이던가? 또 그렇게 만든 것이 유비의 정성이던가? 공명은 자신의 앞날을 뻔히 보면서도 유비에 몸을 맡겼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러 번의 명승부를 이끌어 냈지만 천하대세를 뒤집기는 어려웠다. 천하에 대한 조망에서 얻은 그의 결론은 천하 삼분지계. 조조, 손권과 땅을 나눠 그 삼분지 일이라도 차지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조조의 천하 통일 야망은 적벽대전에서 유비-손권 연합군에 패배하면서 여지없이 깨어지고 그 후 그 누구도 천하를 통일하지는 못했다. 적벽의 싸움에서 패배한 조조는 더 이상 천하통일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죽고, 유비도 죽었다.

공명이 출사표를 던지고 북방원정에 나섰지만, 그것은 그의 죽음 전에 준비한 천하 통일을 위한 최후의 결전이었다가 보다 마지막으로 돌을 던질 곳을 찾은 출전이었다. 천하는 결국 조조의 아들 조비에 의해 통일되었지만 곧 팔왕의 난과 오랑캐의 정복에 의해 중원은 피로 물들어갔다. 이처럼 질기게 이어져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난세의 기운인 것이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이 공명이 아니라 오나라 도독 주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새로운 해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설 속 인간들의 삶과 고뇌, 생사를 가르는 피비린내 나는 오욕의 처절한 싸움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눈으로 보여줘야 하는 영화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벽대전이 주유의 천하절색 부인을 얻기 위한 조조의 전쟁이라거나 그 부인이 조조 진영을 찾아가 전쟁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설정 자체가 소설보다 허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정네들의 땀과 피 냄새가 아니라 여인네의 분 냄새를 너무 많이 풍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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