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에 공을 쳐 넣는 것이 "홀"이라 하고 하나는 "구멍" 이라 하며 하나는 잔디 필드 위에서 하고 하나는 동네 골목의 먼지 흙 위에서 하는 것이다. 하나는 손이 더럽히지 말라고 긴 막대기를 잡고 서서 하는 것이요, 하나는 맨손으로 쪼그리고 앉아 한다는 차이 뿐이다. 내기 또한 똑같으니 그러므로 골프치기와 구슬치기는 이거나 저거나 마찬가지 운동이요, 대동소이라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했다.
어떠한 친구는 껄껄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어느 철학 교수는 좋은 설교가 되려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감동이 있어야하고 째 변화가 있어야 하고 셋째 만족이라 했다. 그 말을 들은 어떤 신학생이 자기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흥미를 느낀 교수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예. 제가 설교를 하니까 처음에 사람들이 감동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요. 다음에는 한 두 사람씩 밖으로 나가는 변화가 일어났고요. 그 후에는 만족이 되었는지 다시는 안 들어 왔습니다." 했다
자네는 이와 같이 착각 속에 빠졌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에 승복 할 수가 없다. 구슬치기는 비유가 되지만 설교는 비유가 아니라 하면서 비유법을 좀더 공부하라 했다.
나는 최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또 한번의 비유를 들어 평을 듣고 싶어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광(日光)의 화엄폭포 에서 자살한 후지무라 마사오(藤村操)와 너무나 행동 양식이 똑같아 놀랬다.
한사람은 폭포 바위에서 한사람은 부엉이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다. 전자는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고 후자는 지나가는 등산객을 보았다. 전자는 유서를 나무껍질을 벗겨 새겼고 후자는 컴퓨터에서 유서를 썼다.
대오각성에 있어서 전자는 커다란 비관을 커다란 낙관과 일치 한다 하였고 후자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 했다. 전자는 인류에 던지는 메시지가 없었던 반면 후자는 슬퍼하거나 미안하지마라. 남을 원망하지 말라.
운명이라고 했다. 노사모 회원들은 그 분의 높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타살로 모는 것은 이미 화장된 그를 진짜 죽이는 부관참시 하는 행동과 무엇이 다르랴. 마사오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들의 사후에 가서야 진면목을 나타내었으니 이를 바르게 보지 않는 세인들의 혜안에도 문제가 있다.
김태준 성서병원 응급실 주임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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