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지킨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나라 지킨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 김지홍
  • 승인 2014.06.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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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유공자 문상근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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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근 할아버지가 1988년 10월 백마부대 창설제38주년기념식에 초청돼 백마부대장으로부터 받은 기념패(오른쪽)를 들고 있다. 또다른 기념패는 한국전쟁 해외참전국 22개 국기가 새겨져 있다. 김지홍기자
6·25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채 64년이 흘렀다.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됐다. 24일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6·25참전유공자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를 지킨 자부심과 세상을 떠난 동료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전쟁터에 뛰어들었어. 실탄 장전하는 방법도 몰랐던 사람이 더 많았어.”

24일 대구 동구 신암로에 사는 문상근(82·상이등급 5급)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이렇게 말하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6·25, 그때 생각하면 정말····” 할아버지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분 동안 64년 전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더듬어내던 할아버지는 힘들게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할아버지는 경남 거창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예쁜 아내와 결혼해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를 낳았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25살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할아버지는 동네의 젊은이들과 함께 경남 마산에 만들어진 교육장으로 징집됐다. 속옷과 얇은 삼베옷만 걸치고 있었다. 갑자기 난리가 난 상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하루 아침에 그 곳에 끌려간 젊은이는 200여 명이나 됐다.

이후 제9사단 백마부대에 투입된 할아버지는 백마고지를 놓고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수류탄의 위력은 생생하다고 했다. “1m 높이의 언덕에 수류탄을 터트리면 그냥 언덕이 없어지고 평평한 땅이 돼. 이런 게 매일 밤낮없이 일어나니까 끔찍하지. 말로 다 못해” 할아버지가 말했다.

며칠 동안 식량 보급이 끊겨서 굶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주먹밥이 오면 피로 물든 손으로 주먹밥을 한 톨 남기지 않고 핥아먹었다. 손에 묻은 피가 누구의 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자부심만큼은, 아무도 몰라줘도 내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어”라며 미소 지었다.

할아버지는 떨어진 포탄의 충격으로 배에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제대했다. 함께 참전했던 동료는 모두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다 죽었어. 지금 내 몸에 그때 다친 흉터도 없어졌는데, 오래되면 상처도 아물듯이 아팠던 기억도 점점 잊히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53년 7월 27일 끝난 한국전쟁은 150만 명의 사망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냈다. 국가보훈처에는 지난달 말 기준 전국 16만1천930명(대구 6천829명·경북 1만3천973명)만이 6·25참전유공자로 등록돼있다.

할아버지는 지난해부터 몸이 약해져 집에 누워있는 날이 많다. 하지만 매달 전상군경전우회 대구 동구지회 모임은 꼬박꼬박 지팡이를 짚고 참석한다. 지난 13일에는 전상 군경전우회 대구 동구지회 회원 80여명과 함께 대전현충원에 참배를 다녀왔다. 숨진 동료가 그립고 미안해서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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