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패왕별희(覇王別姬)
<대구논단> 패왕별희(覇王別姬)
  • 승인 2009.07.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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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식 (대구대 사범대학 교수)

한(漢)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과 천하를 다투었던 초(楚) 패왕 항우(項羽)가 사랑하던 여인 우희(虞姬)와 이별한다는 패왕별희, 한참 전 영화로 만들어져 국제 영화제 대상도 수상했다.

진시황은 그의 제국이 자신의 자손에 의해 `만세, 만세, 만만세’ 동안 이어지기를 염원하였지만 아들 2세 황제가 들어서자 곧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은 전국으로 번져갔다. 반란의 여러 영수들 중 발군의 실력으로 진나라를 전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 것으로 기대되었던 항우, 힘으로는 산을 뽑아 올리고 기개는 천하를 덮을 만한 이른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영웅이었다.

유방과 같이 진시황에게 멸망당한 초나라 출신으로 항우와 유방의 세력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유방은 요사이로 말하면 껄렁패 출신으로 면장 정도 지위에 있었다. 반란이 일어나자 같이 다니던 껄렁패를 중심으로 들고 일어났지만 세력은 미약했다.

그러나 항우가 버린 천하의 명장 한신을 얻는 것과 같은 인간을 보는 밝은 혜안과 지략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초나라 출신 반란 세력은 망한 초나라 왕실 후예를 모셔와 반란의 지도자로 삼았다. 그렇게 떠밀려 명목상의 임금 자리를 오른 이가 의제(義帝)였다.

진나라 수도 함양에 먼저 입성한 것은 유방, 그가 단 3개조만 남기고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모조리 폐지하고, 진시황의 폭정에 시달리던 노인들을 불러 술과 음식으로 위로한 것과 달리 뒤늦게 도착한 항우가 폭정의 상징 아방궁을 불태우고 진시황의 능을 도굴하였던 것은 이들의 인간됨과 세상 보는 눈의 차이를 보여준다.

막강한 실력자 항우는 명목상의 임금 의제를 죽이고 반란의 지도자를 각지의 왕으로 봉하고 자신은 패왕이라 칭했다. 황제라 칭하고 싶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했던 모양이다. 이 일은 조선에서도 문제된 적이 있었다. 세조가 어린 단종을 죽이고 임금 자리에 오른 것을 항우가 의제를 죽이고 패왕에 오른 일에 비유한 `조의제문(弔義帝文, 의제의 죽음을 조문하는 글)이 피비린내 나는 사화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항우에 의해 벽지의 한 왕으로 봉해진 유방은 칼을 갈았다. 천하를 다투는 두 영웅의 초한전은 서서히 유방 편으로 기울었다. 천하의 민심이 유방으로 쏠리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항우는 마지막 출전을 앞두고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 술을 나누어 마시고 유명한 `역발산 기개세’의 시를 읊었다.

우희도 한 수의 시로 화답한 후 항우의 칼을 뽑아 자살했다. 우희를 묻은 곳에서 피어난 꽃 양귀비를 `우미인초’라 하는 것은 우희를 우미인이라 부르기도 한데서 연유한다. 항우는 다음날 싸움에서 사력을 다하다 자신의 칼로 자신을 찔러 죽었다.

비록 천하를 얻진 못하였으나 영웅 항우의 굵고 짧은 삶과 우희와의 애틋한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경극으로도 만들어져 중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경극 속의 우희 역은 통상 여장한 남자가 맡았는데 영화 `패왕별희’에서는 얼마 전 자살한 장국영이 맡았다.

장국영이 분한 영화 속 우희는 오랫동안 우희 역을 하는 가운데 실제 항우 역의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문화대혁명의 대혼란 속에 자본주의 유희로 낙인찍힌 경극의 스타들은 모진 고난을 겪는다.

모진 세상살이 속에서 항우 역의 남자는 창녀(공리 역)와 결혼하지만 우희 역 남자의 질투로 또 다른 고통을 겪는다. 문화대혁명의 광기와 전통 파괴를 고발한 걸작이지만 우희 역의 장국영이 실제 동성연애자로 자살하였으니 장국영의 운명을 예고한 작품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 가냘픈 몸매의 여장 남자 경극 배우로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4년부터 여자라고 속이고 북경 주재 프랑스 대사관 직원과 사랑을 나누며 1983년까지 20여 년간 500여건의 기밀문서를 빼내 중국 당국에 넘기다 발각된 희대의 스파이 시패박(時佩璞)이 7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고백으로 프랑스 대사관 직원도 그가 남자임을 알았지만 사랑 때문에 그가 여성이라는 환상에 빠졌다고 한다. 조사과정에서 그가 실제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대사관 직원은 감옥에서 면도날을 목에 그어 자살을 기도했다. 장국영 자살 과 함께 2200년 전 항우와 우희의 사랑이 과거의 단순한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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