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거북이 입장도 생각하게 하는 교육
<대구논단>거북이 입장도 생각하게 하는 교육
  • 승인 2009.07.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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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대구학남초등학교장 · 교육학박사)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은 토끼와 거북이 중 누구에게 들으라고 만든 이야기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 조사를 하면 대부분 토끼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응답한다고 한다. 즉 자기 자신을 토끼에 비유하는 것이다.

토끼는 뛰어난 재치와 능력을 가졌지만 잠시 방심하여 그만 경주에 지고 만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잠시 마음을 놓는 바람에 실패하는 캐릭터이다. 우리 둘레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토끼의 입장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자신이 중용(重用)되지 못하면 운이 없어서거나, 인사권자의 불공평성 때문이라거나 하여 자신의 능력보다는 그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거북이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반응이 더 많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거북이의 입장이라고 보는 성향이 더 높은 것이다.

거북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은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정복되는 치열한 생존 현장이다. 잠시라도 게으름을 부려서는 아니 된다. 부지런히 자기 역량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당초 이 이야기를 만든 이솝도 거북이를 위해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솝 우화> 전편을 읽어보면 대부분의 이야기 초점이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내세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겸손을 가르치기 위한 이야기도 많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지어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등은 물론 모든 독자를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어서 그 입장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이기 때문이다.

심리학 이론에 `귀인 이론(歸因 理論)’이라는 것이 있다. 잘못된 원인을 어디로 돌리는가에 대한 것인데, 내적 귀인(內的 歸因)과 외적 귀인(外的 歸因)이 있다, 즉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면 내적 귀인이라고 하고, 외부로 돌리면 외적 귀인이 되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토끼가 패배 원인을 자신의 게으름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은 내적 귀인이 되고, 거북이가 음흉하게 자신을 깨우지도 않고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거북이가 독수리의 도움을 받아 결승점 꼭대기로 쉽게 날아갔다고 생각하면 바로 외적 귀인이 되는 것이다.

내적 귀인 성향이 높을수록 성숙된 사람임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되는 사람도 결국은 `내 탓이오.’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과연 자신을 토끼처럼 생각하면서 동시에 내적 귀인도 하고 있는가?

우리말에는 두 입장을 동시에 지지하는 말이 많은 편이다. 예컨대 `엇비슷하다’는 말의 경우, `엇’은 `엇나가다’에서 보는 것처럼 반대 입장을 뜻하고, `비슷하다’는 `같다’는 뜻이 더 강하다. 그런데도 붙여 쓴다.

또 `시원섭섭하다’는 말도 `시원하다’는 감정과 그 반대인 `섭섭하다’는 감정이 동시에 실려 있는 말이다. 서양말에도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이 실려 있는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처럼 흔하게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양쪽 입장을 모두 고려한 이야기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학교에서 양쪽 입장을 모두 고려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교육은 물론 생활에는 전후, 좌우, 상하를 고루 아우를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 가치만 강요하여 치우치게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고 주입이다. 수용자의 판단이 미흡함을 빌미로 일방적으로 자기 가치를 주입한다면 그것은 폭력이지 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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