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깃든 행복 찾아주는 지친 시민들의 예술구청장
골목에 깃든 행복 찾아주는 지친 시민들의 예술구청장
  • 박상협
  • 승인 2014.09.1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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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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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중구청장은 “낡고 오래된 골목들은 오랜 역사를 지나오면서 우리 삶이 만든 나이테들이다. 특히 6·25전쟁에서 대구가 유일하게 북한군에 점령되지 않아 중구 사람들의 흔적들이 골목골목마다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유·무형의 역사적 자산이 바로 중구의 보물창고였다”고 말했다.
중구의 근대 골목 유산을 정비한 ‘근대골목투어’, 재래시장 살리기 일환으로 조성된 방천시장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가는 관광에서 머무는 관광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북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등의 사업으로 연타석 홈런을 날리고 있는 3선의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그간의 행적으로 비춰 볼 때 ‘문화 구청장’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문화’를 중구 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선택한 배경”을 인터뷰의 첫 질문으로 던졌다. 하지만 그는 대뜸 “처음부터 ‘문화’를 중구 발전의 비전으로 잡은 것은 아니었다”는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았다. ‘문화 구청장’인 그가 ‘문화’를 처음부터 중구 발전의 최우선 전략으로 삼지 않았다니. 그래서 재차 질문을 던졌다.

- ‘문화로 성공한 구청장’으로 불리고 있다. 아닌가.

“나를 문화구청장의 이미지로만 보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역시나 처음과 같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모든 것의 핵심은 ‘사람’
첫 목표 ‘떠난 사람들 돌아오는 도시’
나는 지역 주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
3선까지 사람에 초점 목표 변함없어

◇‘사람’이 중심인 도시 설계

‘문화’를 중구 발전의 핵심 비전으로 이끌고 있는 윤 구청장에게 ‘문화 구청장’이라는 이미지는 자연스럽다. 한데 정작 자신은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뭘 잘못 짚었나.” 그 짧은 순간에 만감이 오고갔지만 일단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질문자의 마음을 눈치 챈 듯 그가 말을 이어갔다.

“8년 전 구청장 취임 첫해에 ‘도심을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중구, 주민이 살고 싶은 중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때 내 목표에 핵심으로 둔 것은 ‘사람’이지 ‘문화’가 아니었다. ‘사람이 곧 도시’라는 평소의 철학을 중심에 두고 중구가 살 길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 왜 사람이었나?

“나는 모든 것의 핵심을 ‘사람’으로 본다. 모든 행위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정점에 사람이 있다. 행정과 단체장 또한 원론으로 들어가면 ‘지역주민’, 즉 ‘사람’이 목표다. ‘사람’ 즉 주민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구청장이 되고 던진 질문 또한 ‘사람’ 즉 ‘주민’을 어떤 상태로 만들어 주어야 하느냐 였다.”

- 해답은 무엇이었나.

“‘지역 주민들이 행복한 중구’를 만드는 것이 구청장으로서 내가 설정한 목표였다.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니 ‘행복’이 보였다. 3선이 될 때까지 그 목표는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 중구는 역사의 보물창고

1990년대 이후 중구는 주거인구가 급속하게 빠져나가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돼 왔다. 8년 전 첫 부임한 윤 구청장을 짓누르는 것 또한 이 문제였을 것이다.

“처음 구청장으로 취임했을 때 주민들 대부분이 중구의 공동화 현상을 걱정하고 있었다. 오래되고 낙후된 중구, 떠나가는 중구라는 어두운 인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 과거 중구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이런 어두운 이미지였다. 그렇지 않은가.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걱정하는 그 낙후성이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으로 다가왔다. ‘낙후성=역사성’의 공식을 보았던 것이다. 사실 중구는 역사적으로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대도시 대구의 심장부였던 곳이다. 문제는 화려한 도심 이면을 한 발짝만 걸어 들어가면 또 다른 어두운 중구의 얼굴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어두운 얼굴이 보물로 보였다는 것인데.

“그렇다. 낡고 오래된 골목들은 오랜 역사를 지나오면서 우리 삶이 만든 나이테들이다. 특히 6.25전쟁에서 대구가 유일하게 북한군에 점령되지 않아 중구 사람들의 흔적들이 골목골목마다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유·무형의 역사적 자산이 바로 중구의 보물창고였다.”

-구체적으로 중구에 어떤 역사적 문화유산들이 있나.

“중구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달성토성과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경상감영 등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겪는 동안 쓰리고 아픈 근대역사의 자취와 특별한 이야기들이 흩어져 있다. 조선 최고의 약령시가 열렸던 약전골목, 조선시대 선비들의 과거길인 영남대로, 옛 번화가 종로와 근대사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진골목, 대구의 독립만세운동을 촉발시킨 3 ·1만세운동길, 시인 이상화 고택과 국채보상운동에 앞장 선 민족운동가인 서상돈 고택, 서양의학의 최초 보급의 중심지가 되었던 동산언덕, 전후 문화예술의 중심지의 정취가 남아있는 향촌동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문화와 경제가 만나는 컬쳐노믹스

- 이 모든 유산을 문화로 엮은 것인가.

“중구에 있는 오래된 골목 속 역사들을 ‘문화’라는 큰 틀로 엮어내면 중구를 특별한 색깔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2선을 거치는 임기 8년 동안 그 모든 유·무형의 역사적 자산들을 새롭게 재정비해 도심재생의 틀 속에 담았고, 그것이 지금은 중구 관광의 효도 상품이 되고 있다.”

- 왜 문화였나.

“문화와 경제가 하나가 되는 ‘컬쳐노믹스(culturenomics)’가 세계적으로 뜨고 있다. 문화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가 커졌다는 반증이다. 그 중심에 문화가 있다. 도시개발에도 보존과 개발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이 또한 문화가 중심이 돼야 한다. 문화야말로 굴뚝 없는 21세기의 핵심 산업이라고 보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최근 뜨고 있는 도심재생사업으로 옮아갔다. 도심재생사업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문제로 유명무실해진 뉴타운 사업을 대체하는 사업이다. 노후된 시설이나 지역을 주변 지역과 연계해 복합 정비·개발해 낙후된 도심의 기능을 재활시키는 것이 이 사업의 골자다. 박근혜 정부가 도시개발로 들고 나온 개념도 도시재생사업이다. ‘무너져 내린 지역주민 공동체의 회복’을 핵심으로 지난해 12월부터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쇠퇴한 지역에 대해 국가의 지원 아래 새롭게 되살리고 도시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 박근혜 정부의 도심재생사업을 중구는 이미 8년 전부터 시작해 지금은 결실 단계에 와 있다. 시대를 앞서가는 선견지명이었나.

“처음 구청장이 되자 주민들이 낙후된 도심을 어떻게 허물고 새로 지을 것인가에 대해 물었다. 파괴와 재개발이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도심정책이었다. 하지만 내게 중구는 재개발 대상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백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나는 이 매력적인 지역을 ‘재개발’ 대신 ‘재생’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골목에서 시작된 변화
낙후성 벗고 역사유산 문화로 엮어
근대골목투어·김광석길 잇단 대박
북성로 개발 등 문화관광벨트 조성


◇파괴와 개발 대신 ‘재생’으로 대박 행진

- 첫 시작이 ‘근대골목투어’인가.

“그렇다. 이 사업은 중구 내에 있는 잘 보존된 근대골목에 담겨 있는 역사적인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중구의 근대골목은 전국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잘 보존된 곳이다.”

- 시작 당시 성과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물론이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유럽이 최고의 관광 선호지역으로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를 생각하게 됐다. 나는 지역의 역사성을 그대로 보존한 것에 주목했다. 중구도 중구만의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어 성공을 확신했다.”

- 근대골목투어의 성과가 실제로 대박에 가깝다.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실시해 지난해 말까지 누적 참여자가 30만8천551명을 기록했고, 올 들어 상반기(6월 말 기준)에는 25만612명이 참여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이 사업은 지난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하고, 지난해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2년 연속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올해 5월에는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10곳 걷기좋은길 선정, 7월 국토부의 대한민국경관대상 특별상 등을 수상하며 몇 년 사이에 관광 관련 상을 휩쓸었다. 당연히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중구를 방문하고 있는데, 그 횟수가 무려 200회가 넘는다.”

- 근대골목투어와 연계한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도 빠트릴 수 없는 중구만의 콘텐츠사업이다. 올해 들어 김광석 길에 하루 평균 800여명이라는 경이적인 방문객이 다녀가고 있다. 사업의 진행과정은 어땠나.

“2010년 9월 인근에 있는 대구 전통시장인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방천 둑길을 정비하자는 의견에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탄생했다. 350m 둑길 벽화는 가수 故 김광석의 고향을 배경으로 해 벽화 사업이 진행됐다. 77점의 평면, 입체 등의 작품을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해나갔다.”

- 이 사업도 근대골목투어에 뒤지 않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올해 계수기를 이용한 결과 상반기 동안 15만4천명이 다녀간 것으로 확인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오는 10월에는 40여점의 벽화에 새 작품으로 입히고, 방천둑 쪽으로 270석 야외공연장도 들어설 계획이다. 호응이 워낙 좋아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북성로와 인근 개발도 시작

- 근대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북성로도 ‘역사성 살린 거리’로의 탈바꿈을 진행하고 있다. 근대골목투어와 광석 다시그리기 길과 연계한 중구의 관광 벨트의 삼각 축이 될 것 같은데 어떤 사업인가.

“공업사와 공구상들이 모여 있는 옛 도심인 북성로에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북성로는 1907년 대구에서 처음으로 신작로가 닦이고 수은 가로등이 켜진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의 근대건축물이 대부분 남아있다. 현재 카페 삼덕상회과 북성로 공구박물관, DIY센터 장거살롱이 들어서 있다. 적산가옥인 옛 건물의 뼈대를 남겨두고 리모델링됐다. 앞으로 위안부 역사관, 독립영상관 등 8개소 다양한 공간이 들어선다. ”

- 북성로 인근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북성로 인근인 중구 향촌동에 오는 10월 근대 역사를 담은 ‘향촌문화관·대구문학관’이 문을 연다. 여기에 현재 진행 중인 ‘대구읍성 상징거리’와 2015년 완공될 ‘순종황제 어가길’ 등이 더해진다. 이 모든 것이 마무리되면 중구는 명실공이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관광벨트를 가진 지역이 될 것이다.”

◇ 골목을 엮어 관광벨트로

그가 도심 곳곳에 흩어진 문화유산을 하나로 잇는데 활용한 도구는 골목이다. 그는 “오랫동안 중구라는 도심의 생활현장을 치열하게 지켜온 사람들의 자리, 그들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골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골목’은 한 도시가 변화해온 과거의 시간 동안 사람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집약된 곳이자, 과거의 생활사가 현재진행형으로 지금의 생활공간에 맞닿아 있는 곳이다.

- 골목을 문화벨트로 잇는 일은 간단치 않다. 현재 그 골목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호응이 함께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골목 속 이야기를 끌어내자고 했을 때 주민들과 구청 공무원들이 미친 짓이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골목을 중구의 브랜드로 만들어 도시 전체의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 확신이 있어 밀어붙였다. 공무원과 전문가와 주민이 한 자리에서 머리를 맞댈 수 있도록 했고,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고, 누구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성과는 모두가 공유하게 해 보람을 느끼도록 했다.”

- 수치 말고 피부로 실감하는 효과는 어떤 것이 있나.

“처음에 귀찮아하고 번거로워 했던 주민들이 지금은 나를 보면 ‘구청장이 길을 닦아놓으니 그 길 위에 예쁜 가게들이 생기고, 골목 깊숙한 곳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드나들어 동성로, 남성로 등의 큰 거리에도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는 말씀들을 하시며, ‘우리 골목도 개발해 달라’고 하신다. ‘골목’에서부터 시작된 변화가 도시 전체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주민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 사람들이 골목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반듯하게 잘 뚫린 큰 길을 따라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향유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골목에는 천천히 기웃기웃 두리번거리는 재미와 여유가 있다. 골목에 남아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박한 행복의 정서가 사람들의 가슴에 여운을 주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물었다. ‘문화구청장’이라고 불리는 것에 만족하느냐고.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는 것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한다. 나는 매일매일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예술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예술구청장이다.”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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