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히말라야의 한 떨기 꽃이 되다
<대구논단>히말라야의 한 떨기 꽃이 되다
  • 승인 2009.07.1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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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날이 늘어간다. 건강에 좋다는 운동으로서 등산의 필요성은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있다. 국립공원도 입장료를 폐지하여 더 많은 시민들이 경치 좋은 국립공원을 찾아 집은 나선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만발했다고 해서 진달래 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하면 철쭉 축제도 열린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한데 어우러진 짙푸른 여름 산은 벌거숭이 민둥산보다 얼마나 보기가 좋으냐. 금강산이 열렸을 때 북한 땅을 밟아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북한의 헐벗은 산하는 우리 스스로 발가벗겨진 듯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산에 나무가 없다는 것은 물이 없는 것과 똑같다. 물이 없으면 모든 생물이 메말라 죽게 된다. 북한주민들이 굶주리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남한도 6.25를 전후해서는 모두가 벌거숭이 산이었다.

다행히도 푸른 산 가꾸기 운동이 성공하면서 건지초록(乾地草綠)이 되었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화목으로 사용하던 습관이 사라진 것은 전적으로 연탄 덕분이다. 연탄가스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불의에 목숨을 잃는 사고가 접종하긴 했지만 그래도 남한 땅 곳곳이 모두 푸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연탄 없었으면 아마도 불가능했으리라.

가을이 되면 산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단풍이 든다고 해서 붉다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사실은 노란 색깔이 더 눈부시게 빛난다. 그래서 황풍(黃楓)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들도 많다. 금강산이나 내장산은 단풍철에 빼놓을 수 없는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명세를 타서 그럴 뿐이지 소요산, 속리산, 팔공산, 지리산, 한라산, 모악산 등 색색으로 엮어진 산맥을 보면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낙엽이 지고 추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 들어서면 산은 한마디로 황량해진다. 화려했던 옷을 모두 벗어던진 몰골은 어찌 보면 추하기도 하다. 사람도 옷을 입었을 때 의젓한 것이지 나체로 있으면 멋보다는 추함이 더 드러나지 않겠는가. 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늘은 겨울 산에 따뜻한 옷을 입혀준다. 어느 한 쪽만 입히는 게 아니다. 드러난 곳이라면 빠짐없이 아름답게 덮어준다.

새하얀 눈이다. 차디찬 눈이지만 우리들이 보기에 그보다 더 포근할 수는 없다. 온 천지를 똑같은 색깔로 하얗게 물들인다. 황량했던 산하는 어느새 멋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움푹 파였던 웅덩이도, 사납게 치솟았던 바위덩이도, 몰아치는 비바람에 꺾여있던 고목조차도 모두 타고난 자태 그대로 새 옷을 입는다. 단추를 잠가 옷을 추스르거나 마무리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우리의 산은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어서 오라고.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 산 사람이 아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면 곧 눈 속에 파묻혀 세상 시름을 잊는다. 우리나라에 처음 와본 외국인들은 대도시 근처에 높고 낮은 산들이 이렇게 많이 있는 나라는 본 일이 없다는 감탄을 한다. 우리가 외국에 가보더라도 도시에서 몇 시간을 달려가야 겨우 산자락을 구경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태어난 보람을 느낀다. 이름난 산이 어떤 계절을 막론하고 등산객들로 메워지는 정경은 우리나라의 특성이다. 그만큼 등산인구가 많다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등산가가 여럿 나올 수밖에 없는 처지다. 히말라야에는 8000m가 넘는 산이 즐비하다. 이를 14좌라고 하는데 정상을 모두 밟은 사람은 11명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세 사람이 한국인이니 세계 산악계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박영석과 엄홍길은 지금도 도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왕룡은 산악인들이 더럽혀놓은 히말라야를 깨끗이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14좌를 오른 사람은 남성뿐이었다. 여성 산악인들이 분기하여 여기에 도전장을 냈다. 누가 제일 먼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은 센세이션을 좋아하는 매스컴의 영향력에서 비롯된다. 외국의 여성 산악인 한 사람과 국내의 오은선, 고미영이 도전의 주인공이다. 오은선과 고미영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지만 그 기세가 너무나 날카로웠다.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졌다.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불과 4시간 차이로 올랐다. 오은선은 이로서 12좌를 올랐고 고미영은 11좌를 마쳤다. 나머지는 각각 2좌와 3좌다. 그런데 고미영이 하산 길에 실족하여 저 세상으로 떠났다. 설산에는 에델바이스가 피어있다. 고미영도 한 떨기 꽃이 되었다. 한국 여성 산악인의 대표적 인물 하나가 안타깝게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전북 부안에서 상경하여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히말라야에 반하더니 대망을 이루기 직전 조난을 당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삼가 명복을 빌며 산은 결코 경쟁을 하거나 명성을 얻는 지름길로 알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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