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에도 나와 안부 묻고
벤치에 앉아 햇볕 쬐고…
저렴한 식당 찾아
소주잔 비우며 시름 달래
21일 오전 11시께 차가운 바람에도 공원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백발성성한 한 노인이 다가와 큰 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오랜만에 보는데 잘 지내셨소. 일이 있어서 6개월만에 나왔는데 다들 건강하지요?” 누구하나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는 한 노인에게 “같이 약주한잔씩 하던 송씨는 요즘 안보이던데 무슨 일 있소?”라며 ‘건강하라’는 말을 여러번 강조했다.
공원 바로 옆은 노인들의 사교공간이다. 카바레, 성인텍이 모여있고 오래된 식당들이 많다.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카바레 건물 앞은 한껏 차려 입은 노인들이 지나다녔다. 근처 편의점에서 초로의 여성이 화장을 고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흔한 트리장식이나 연말임을 알리는 표시하나 없는 건물 사이 골목은 오가는 사람이 적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음식 만드는 수증기가 그나마 따뜻함을 더했다.
인적이 드문 골목 끝, 모닥불을 피운 노점상 할머니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정지 화면같은 풍경에 간혹 한두명이 지나갔다.
하지만 한적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노포(老鋪)마다 손님들이 그득했다. 국수 2천원, 국밥·칼국수 3천500원 등 저렴한 가격의 식당들에 젊은 사람을 찾기는 힘들었다. 대신 혼자 혹은 일행들과 값싼 안주에 소주를 비우는 노인들이 많았다.
한 식당에서 70대로 보이는 노인 2명은 0.5인분에 3천원하는 석쇠불고기를 각각 한접시씩 시키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다. 셀프여서 다른 가게보다 소주가격이 1천원가량 쌌다. 한병, 두병 불고기 한접시를 앞에 두고 마시던 술은 3병째로 늘어났고 두 노인은 아내기일에서 시작해 경조사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식당 종업원은 “여기는 연말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며 “날씨가 추워지니까 항상 오시던 분들이 안보이면 걱정되고 그렇다”고 말했다.
경상감영 공원 일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인사말은 “건강하시오”였다. 연말, 새해를 앞둔 특별함보다 내일도 오늘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연륜이 그 한마디에 묻어있는 듯 했다.
정민지기자 jmj@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