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와 에드윈 라이샤워
마크 리퍼트와 에드윈 라이샤워
  • 승인 2015.03.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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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정 소설가
지난 3월 5일 적일백천에 서울시내한복판 세종문화회관에서 경천동지할 사건이 일어났다.

박근혜대통령이 중동을 순방중인 가운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 홍사덕)초청 조찬강연회에 참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식사도중 좌파시민운동가인 김기종(55)의 과도공격으로 얼굴에 80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어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외국공관이 설립된 지 135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고 남북이 분단되어 적대해온지 70년이 넘도록 북한의 도발과 핵위협이 상존하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 일, 중, 러의 각축이 그 어느 때 보다 미묘한 가운데 발생되어 참으로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이 사건은 51년 전 일본의 도쿄에서 일어난 주일 미국대사 피습사건과 너무나 흡사하다.

1964년 3월 24일 도쿄 한복판의 미국대사관후문 앞에서 에드윈 라이샤워(1910~1990) 미 대사가 한·일국교정상화교섭을 위해 일본을 방문 중인 한국의 김종필 공화당의장과 점심을 같이하기 위해 막 차에 오르려는 순간 19세의 극우파청년에게 칼로 머리와 허벅지를 찔려 큰 부상을 입게 되자 도쿄올림픽과 선진국진입을 앞두고 있던 일본조야가 발칵 뒤집혔다.

이에 이케타 하야타 일본총리는 즉시 미국의 존슨대통령에게 위로전문을 보내고 치안총책임자인 국가공안위원장을 경질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서 범인이 ‘내가 취직을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 때문이다, 한·일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언제나 한국 편만 든다’는 등의 횡설수설을 하자 정신분열증으로 몰아 기소도 하지 않고 단순사건으로 서둘러 봉합해버렸다.

이로 인해 일본사회의 불안이 점증되고 대일감정이 악화되자 네 시간의 수술과 수혈을 받은 라이샤워 대사가 ‘이제 내 몸에도 일본인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는 소회를 밝혀 일본열도가 열광했으며 하와이에서 요양 중인 그에게 여러 사람들이 귀국을 권했으나 ‘지금 내가 퇴임하면 일본사람들에게 책임감을 지우게 된다’며 2년5개월을 더 근무하고서야 귀국했다.

에드윈 라이샤워가 누구던가, 그는 일본에 파견된 미국선교사의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나 17세까지 일본에서 자랐고 하바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를 지낸 세계적인 석학이며 프랑스와 중국에서도 공부한 아시아 전문가로 일본총리가문의 딸과 재혼하여 일본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일본의 뿌리는 백제’라고 한 객관적인 학자적양심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1937년 미국인 매큔과 함께 한국어를 서양언어에 가장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매큔·라이샤워표기법’을 고안하였으며 2000년에 우리는 이를 모태로 새 표기법을 만들었으나 북한과 국내의 일부 영자신문에서는 지금도 이 표기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마크 리퍼트는 누구인가, 그는 1973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스탠퍼드대학에서 국제정치학석사학위를 받고 중국의 베이징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기도 했으며 해군정보장교로 이라크전참전과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기도 했다.

오바마상원의원의 외교정책보좌관, 오바마?바이든정권인수팀 외교담당부국장, 국방장관비서실장과 국방부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국가안전보장회의비서실장 등을 거친 오바마대통령의 최측근이며 중국의 팽창을 겨냥한 ‘미국의 아시아회귀정책’을 입안한 당사자이다.

최연소 주한미대사로 부임하여 친한파가 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고 목숨을 잃을 번한 변을 당했으면서도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같이 갑시다’라고 하여 우리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박대통령도 중동에서 귀국즉시 그를 문병하여 정중하고도 자상한 예를 표했다.

우리는 이 두 번의 사건에서 리퍼트와 라이샤워의 위기대처능력과 세련된 외교적 처신을 보고 소름끼치는 미국의 위대함을 발견했으며 미국이 세계제일의 국가임을 재삼 확인했다.

한미동맹을 훼손하려던 북한과 종북좌파들의 노림수는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는 우리국민과 리퍼트 대사의 의연한 대처 앞에 여지없이 분쇄되고 말았지만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테러방지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국격을 한층 더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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