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사윤, 詩를 노래하다
시인 김사윤, 詩를 노래하다
  • 황인옥
  • 승인 2015.05.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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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조 밴드 ‘비바다비’ 리더
밴드비바다비공연모습
밴드 ‘비바다비’ 공연 모습.

김사윤
시인이자 밴드 ‘비바다비’ 리더 김사윤.
지난 3일 시인 김사윤(48)을 만나기 위해 그가 운영하는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라이브카페 ‘비바다비’를 찾았다. 규모에 비해 꽤 넓은 무대와 무대를 채우고 있는 악기들, 그리고 카페 입구에 마련된 책꽂이에 빼곡히 꽂혀있는 시집 등이 여느 카페와 다름을 암시했다. 카페에는 시인이면서 카페를 운영하며 7인조 밴드 ‘비바다비’ 리더를 맡고 있는 카페 주인장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 일찍부터 ‘현대시’의 기대주로 부각

시인이자 음악가로 살고 있는 김사윤의 첫출발은 시인이었다. 그것도 꽤 이른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데뷔한 ‘현대시’ 기대주였다. 등단도 빨랐지만 시인으로서의 DNA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초등학교 시기 이미 발아했다. 문교부 및 과학기술부에서 주관한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시로 여러 개의 굵직한 상들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낸 것. 그는 이 시기를 “신이 내리듯 시가 내려왔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시인’으로 사는것을 원치 않았다. 특히 부모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문학쪽으로 관심 두는 것을 우려하셨어요. 계명대 음대 출신으로 음악인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에 비춰볼때 시인은 음악인보다 더 힘든 직업이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결국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문학과는 무관한 경영학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해 대학원까지 마쳤다. 하지만 그에게 시는 ‘신내림’과 같은 것이어서 무당이 점사(占辭)를 토해 내듯 시를 토해내야 했다. 첫 시집인 민중시집 ‘나 스스로 무너져’를 대학 2학년이었던 1995년에 엮어내며 시인의 삶을 시작했다. “무당이 신내림을 받았다면 저는 시내림을 받았다고 해야 겠죠. 시를 쓰지 않으면 몸이 아팠어요.”

이후 ‘내가 부르는 남들의 노래’(2010), ‘돼지와 각설탕’(2011), ‘가랑잎 별이 지다’(2013) 등 사회적 약자를 다루면서도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거칠면서도 정제된 시들을 발표하며 중견 시인으로서의 족적을 쌓아왔다. 이른 등단에 비해 발표작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후백 황금찬문학상’을 수상하고 트위터 팔로우가 2만명을 넘어서는, 대한민국 현대시인으로서는 인지도가 꽤 높은 작가로 성장했다.

그의 시에서 중심이 되는 감성 코드는 ‘슬픔’이다. ‘슬픔’을 모티브로 소시민의 아픔과 희망을 절절하게 녹여낸다. 굳이 그의 ‘슬픈 감성’에 대한 논리적 사족을 달자면 ‘슬픔’ 중에서도 슬픔이 차고 넘쳐 마침내 한(限)이 되어버린 ‘절절한 슬픔’ 쪽과는 선을 긋고 싶다. 그의 ‘슬픔’은 이제 갓 슬픔을 알기 시작한 소년의 ‘슬픔’, 슬픔의 스팩트럼 중 가장 좌편에 있는 ‘순수한 슬픔’쯤으로 분석된다.

음악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에게 ‘슬픔은 언밸런스 아니냐?’고 묻자, “사실 체화된 슬픔”이라고 고백했다. ‘체화된 슬픔?’ 체화(體化)로 타인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감정이입이 가능할까. 그는 단호하게 “예스”라고 했다. “어린시절부터 슬프거나 상처받은 친구들이 제게 아픔을 토로하는 일들이 잦았어요. 저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지만, 그들과 헤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그들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파했죠.”

◇ ‘시’의 감성을 음악으로 풀어

시인의 발표작이 민중시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활동에 제한을 받으며 절필에 가까운 시기를 보내다가 느닷없이 음악을 시작한 것은 2010년 봄이었다. 밴드 ‘비바다비(VI vada VI)’를 결성한 것. 비바다비는 ‘비가 내리는 바다 그리고....다시 내릴 비’라는 의미로 비와 바다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반영된 이름이다. 사실 밴드의 시작은 그보다 훨씬 이른 10여년 전, 그의 나이 33세때였다. 서울 홍대 앞에서 거주할 당시 취미로 밴드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활동은 대구에 삶의 터전을 잡으면서 부터다. 대구에서 7인조 밴드 ‘비바다비’를 재결성해 대구수변공원, 대구스타디움, 수성못, 대구문학제, 지하철 역사 공연 등의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김사윤은 자신의 밴드를 ‘감성밴드’라고 지칭했다. 감성의 최극점에서 길어 올린 ‘시’를 노래로 표현하는 밴드라는 의미가 담겼다. “저의 시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차원이 너무 어렵다’는 독자들의 소리를 듣고, 시를 조금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죠. 슬픔을 노래한 제 시에 음률을 붙여 노래하는 행위는 저의 시에 대한 이해도를 극대화 시키는 방편이지요.” 그에게 밴드활동은 자신의 시를 독자들과 더 깊이 공감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던 것.

‘비바다비’ 밴드의 레퍼토리는 주로 김사윤의 시에 곡을 붙인 창작곡들이다. 작곡과 피아노는 김사윤 담당이다. 음악적 재능은 그의 아버지의 음악적인 영향과 어깨넘어 배운 피아노와 고등학교 시기에 처음 접한 기타 연주가 바탕이 됐다.

인터뷰 내내 카페에 울려 퍼진 그의 음악들은 마치 벤자민버튼의 시간처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듯 추억을 자극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이 70, 80년대 대학가요제 곡들과 닮아 있었다. “저는 시와 노래를 통해 슬픔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지요. 그렇게 슬픔의 극한까지 끌어내려 정화된 슬픔으로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를 보내지요.”

그는 현재 밴드 활동과 함께 라이브카페 ‘비바다비’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연습실로 시작했지만 카페로 선회했다. 밴드 활동이 ‘시’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카페 운영 또한 ‘시’인으로 살기 위한 또 하나의 이유다. 그는 비바다비 카페에서 저녁마다 보컬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시인으로는 가장의 역할을 할 수도 없고 밴드 운영도 어려움이 있지 않겠어요. 이 둘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수입이 있어야 했죠.”

김사윤은 올해 11월에 문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다섯 번째 시집 ‘여자, 새벽걸음’ 출간한다. 이시집에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감성들이 세월의 무게에 둥글어지고 단단해졌다는 그의 최근 감성이 담긴다. 대놓고 희망적이기보다 처절한 슬픔의 밑바닥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그의 주옥같은 시들이 독자들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그는 다시 한번 “음악이나 카페는 시를 쓰기 위한 방편”이라며 “영원한 시인으로 살고 싶다”고 독백처럼 읊조렸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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