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묶인 ‘1천년 역사’...방치 불상 지키는 외로운 절 ‘운암사’
규제에 묶인 ‘1천년 역사’...방치 불상 지키는 외로운 절 ‘운암사’
  • 김정석
  • 승인 2015.06.0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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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기 불상 모시는

북구 함지산 위치 운암사

방문 불자위해 천막 설치

관련 법규에 매달 벌금 신세

북구청 “어쩔 수 없다”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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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 운암사지 관세음보살좌상(왼쪽)과 불상이 모셔져 있는 운암사의 천막과 가건물 모습. 김정석기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팔공산 갓바위까지 자주 올랐는데, 한 스님이 혀를 차며 말하더군요. 이 높은 곳까지 올라오지 말고 함지산으로 가보라고. 갓바위 부처님이 할아버지면, 함지산 부처님은 할머니라면서요.”

대구 북구 운암지에서 등산로를 따라 함지산을 오르다 보면 ‘운암사’라는 절 아닌 절에 닿는다.

주민들 사이에서 ‘운암사지 미륵불’로 불리는 한 관세음보살좌상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천막과 가건물이 바로 ‘운암사’다. 불경 소리와 공중에 매달린 연등이 아니었다면 자연인이 사는 움막으로 보일 정도로 허름하다.

가건물 맞은편 좌대에 올라 앉아 있는 불상 하나가 눈에 띄어 다가가니 운암사 총무를 맡고 있는 김형욱씨가 이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김 총무는 “오래 전 영남대에서 온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불상이 만들어진 때는 통일신라 시기다. 기복신앙을 믿은 주민들이 부처님 코와 귀를 갈아 먹지 않았다면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운암사지 관세음보살좌상이 통일신라기 만들어졌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불상이 최초 발견됐던 함지산 정상부에 통일신라 시기 축조된 팔거산성이 자리하고 있고,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김천 직지사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이 운암사의 불상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무려 1천여년 이상 함지산을 지켜온 불상인 만큼 전해 내려오는 설화도 풍부하다.

30여년 전 사내 4명이 불상을 훔쳐 산을 내려가다가 갑자기 벼락과 비바람이 몰아쳐 겁을 먹고 달아났다는 이야기, 불상이 처음 발견됐을 때 함께 묻혀 있던 금덩이를 흥청망청 썼다가 결혼을 일곱 번이나 실패하고 객사한 남자의 이야기 등이 모두 운암사를 찾는 노령의 불자들이 전하는 ‘경험담’들이다.

간절한 불공으로 난치병이 치유됐다거나 어려운 고시에 합격했다고 하는 가피(加被·부처가 중생에게 힘을 주는 일)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이처럼 높은 역사적 가치와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지닌 것 치고 관세음보살좌상의 처지는 다소 곤궁하다.

10여년 전 운암사 주지 정환스님이 무속인들의 굿터로 전락한 관세음보살좌상 주변을 오랜 노력 끝에 정화하고, 도난과 훼손의 위험에서 부처님을 보호하기 위해 가건물을 세운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운암사 일대를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담벼락 하나 세우기가 어렵고, 개발제한구역에 불법 건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북구청에 주민 신고까지 들어와 매년 두 차례씩 수백만원의 벌금이 부과되고 있다. 이에 운암사에서 점유 허가 요청을 몇 차례 전달했지만, 북구청 측에서도 “법규에 위배되는 사안인 데다 신고까지 들어온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욱 총무는 “웅장한 사찰을 지어달라는 게 아니라 보살들이 지낼 거처 하나, 화장실과 식수대 하나 지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석기자 kjs@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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