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시론> 술탄과 앵무새
<팔공시론> 술탄과 앵무새
  • 승인 2009.08.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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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옛날 어느 곳에 자신을 무척 어질고 지혜롭고 인망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한 술탄이 있었다. 그가 원래부터 그런 자부심과 착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술탄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큰 나라는 아니었지만, 풍요로운 오아시스가 있어 그런대로 번영하는 나라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슬람식 정원을 갖춘 술탄의 로맨틱한 저택에는 먼 나라에서 진귀한 물건을 가지고 상인들이 매일처럼 드나들며 술탄에게 선물을 바쳤다. 통상 상인들은 우선 먼 나라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술탄에게 들려준 다음, 선물을 꺼내 그것이 얼마나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인지를 설명하고 술탄에게 바쳤다. 물론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진기한 선물을 받은 왕은 상인에게 교역의 편리를 봐주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연히 술탄을 만나러 오는 상인들은 모두 웃는 얼굴로 예의 바르게 그것도 하나같이 술탄은 지혜롭고 자비로운 왕이시라고 추켜세우기 마련이다. 한 번도 아니고 자신을 알현하는 수많은 상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수없이 들어온 술탄은 어느새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말을 못 할 만큼 술탄이 우둔하거나 군주의 덕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군주가 되려고 노력하고 고민은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탄 자신은 누구한테나 사랑받고 있고, 아득히 먼 나라에까지 명군이라 알려진 훌륭한 왕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술탄에게,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먼 나라에서 한 상인이 찾아왔다. 상인은 술탄에게 바칠 선물로 커다란 광주리를 들고 왔는데, 천으로 덮여 있어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안에는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진귀한 새가 들어 있습니다.” 상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광주리의 천을 치우지도 않고, 이 나라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술탄은 누가 오면 진귀한 선물이 무얼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되었기 때문에, 진귀한 새에 자꾸 신경이 쓰여 상인이 하는 얘기도 모두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자신이 상인에게서 도대체 무슨 요청을 받았고, 거기에 대해 어떤 약속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술탄의 하해 같으신 아량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상인은 비서관한테서 술탄의 약속을 기록한 서류를 받아들고는 바쁘게 술탄의 궁정을 빠져 나갔다. 아마도 그 서두르는 모습에서 상인은 술탄에게서 파격적인 조건을 이끌어내고, 술탄이 딴 소리하기 전에 서둘러 빠져 나간 것 같았다.

한편 술탄은 상인이 나가자마자, 얼른 옥좌에서 내려와 광주리로 달려가 덮여 있던 천을 벗겼다. 광주리 안에는 현란한 색채의 날개가 달린 새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 아름다움과 진귀함에 놀란 술탄이 “정말 훌륭한 새로구나!” 하고 감탄하자, 새도 술탄의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어 말했다. “정말 훌륭한 새로구나!” 술탄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새는 술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술탄이 여느 때처럼 물이 흐르는 연못과 화사한 꽃과 푸른 관목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정원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말하는 새와 유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새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바보 같은 술탄을 속이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러고는 몇 번이고 이 말을 되풀이 했다. “바보 같은 술탄을 속이는 건 일도 아니야.”

그 자리에 있던 술탄과 신하들과 하인들 모두 순간 놀라고 당황했다. 이 앵무새는 언젠가 자신이 들은 인간의 목소리를 기억했다가 그대로 흉내만 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모두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앵무새의 목소리는 그 상인과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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