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정도령 세상인가
<대구논단> 정도령 세상인가
  • 승인 2009.09.1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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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몇 군데 피난지(避難地)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전쟁이나 난리가 났을 때에도 그 곳에만 있으면 화를 면한다는 얘기다. 가장 이름난 곳은 누가 뭐래도 계룡산 신도안이다. 태백산 골짜기도 유명하고 모악산 금산일대도 많은 사람이 모인다.

이들 세 산(山)이 공교롭게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에 고루 퍼져 있는데 산수 좋은 경상도에는 왜 없을까. 6.25사변이 났을 때 보니까 피난지로 이름난 곳은 모두 쑥대밭이 되었지만 아무런 표지가 없던 경상도만 진짜 피난지가 되었다.

이런 실례(實例)가 있어 피난지의 무속성(巫俗性) 소문은 헛것이 되었지만 오랜 세월 내려온 전통은 아직도 그 일대에 그대로 남아있다. 무당을 중심으로 한 굿판도 벌어지고, 신점(神占)을 내세운 사주도 성행한다. 그들의 생활 일면은 요즘에는 무형문화재로 대접받기도 한다.

그들과는 약간 다른 면이긴 하지만 그 동네에 가면 반드시 도인(道人)을 만날 수 있다. 복장과 머리가 옛날 사람들 방식이어서 금방 표시가 난다. 이들은 혼자서 득도의 길을 가기도 하지만 집단적으로 떼를 지어 살기도 한다. 지리산 청학동에 가면 거대한 돌 성(城)을 쌓고 징을 쳐야 관광객들을 안내해 주는 삼신(三神)의 도인들이 큰 집단을 이루어 살기도 한다.

이들이 모두 자신의 신앙에서 우러난 신념으로 그런 생활을 하고 있기에 속인의 입장에서 함부로 이래저래 말 할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들에게 전설처럼 `徨萬’ 새로운 세상을 세운다고 하는 정도령 얘기는 심심치 않다.

기독교의 메시아나 불교의 미륵불과 비교하면 시끄러운 반발을 불러 올 수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려있는 `정도령’은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불러오는 우리만의 신화다. 정도령은 삼천갑자 동방석과 함께 영원히 나타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사라지지도 않을 영겁을 같이할 바로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도령 때문에 별명을 `정도령’으로 불리는 정씨 성을 가진 이들은 수두룩하다.

정도령이 정씨 중에서 어떤 한자(漢字)를 쓰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鄭)씨가 숫자로는 제일 많지만 정(丁)씨도 있고 정(程)씨도 있으니 막연하게 정도령이라고 부르면 범(汎) 정씨들은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초 중 고등학교 시절 공부 잘하고 똑똑한 정도령이 많이 양산되었다. 정도령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줄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정도령의 별명은 별로 싫어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다만 머리 좋은 정씨 성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 정도령이 한두 명에 그치지 않았기에 “정도령!”하고 부르면 서로 뒤돌아보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진 일도 생겼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를 요리하는 중요 직책을 가진 이들 중에서 갑자기 정씨들이 불어나 화제다. 우선 총리로 지명된 정운찬이 화두에 올랐다. 집권당의 대표로 정몽준이 나서고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정길이다.

야당에도 민주당 대표가 정세균이요, 현재는 무소속이지만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이 건재 한다. 이들 중에서 정세균만이 정(丁)이고 나머지는 모두 정(鄭)이다. 이들을 통틀어 정도령이라고 부르면 이 나라는 `5정’의 능력과 경륜이 합해져 크게 비약하는 나라로 탈바꿈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미소지어본다.

이들의 경력을 살피면 모두 일기당천의 용사들이다. 나름대로 배짱과 경륜으로 다져진 사람들이다. 다만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정정길은 현실 파워는 있지만 정치를 계속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머지 네 도령은 그동안에도 기회만 있으면 대권도전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다. 정동영은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과 맞붙어 600만 표를 얻었고, 정몽준은 입후보까지 했다가 막판에 노무현과 후보단일화를 이뤘으나 다시 번복했던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정운찬 역시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경력으로 주로 야당 측의 기수로 거론됐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좌절되었다. 정세균은 현재 제일야당의 대표로 자타가 공인하는 후보군에 든다.

대통령 후보가 될 만한 사람은 정도령 말고도 박근혜 등 부동의 주자들이 버티고 있다. 다만 현실정치를 요리하는데 하필이면 정씨 다섯 사람이 한 시대의 인물로 등장한 것이 흥미를 끈다. 그들의 정치적 이념을 보면 야당의 두 사람은 현실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띄고 있으며 여권의 세 사람은 보수적 경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정운찬은 엊그제까지도 약간의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극좌나 극우가 아닌 중도적 정치성향을 가진 이들이다. 얼마든지 타협과 협상이 가능한 사람들이라고 본다. 어차피 그들은 한 시대에 태어나 똑 같이 정치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중이고, 북핵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절박한 입장에 있다.

다섯 도령이 힘을 합하면 이뤄지지 않을 일이 없다. 한 사람의 정도령도 아니고 다섯이나 되는 정도령이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모처럼 도래한 기회를 활용했으면 멋진 정치가 출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정도령 세상을 만드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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