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문체반정(文體反正)과 역사교과서
<대구논단>문체반정(文體反正)과 역사교과서
  • 승인 2009.09.2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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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흥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역사에서 반정이란 `잘못하는 왕을 쫓아내고 올바른 왕을 모셔 정치를 바른 곳으로 되돌린다.“ 는 뜻이다. 흔히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을 들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종의 성공한 `쿠데타’를 말한다. 그렇다면 문체반정은 `잘못된 글을 올바른 곳으로 되돌린다.’ 는 말이다. 이것은 조선 정조 때 일어난 사건으로 “문체를 정통고문(正統古文)으로 되돌리려 한 운동”을 말한다.

정조는 조선시대 왕들 중에서 신하들과 학문적으로 대결하여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학(好學)의 군주였다. 잘 알려진 대로 아버지 사도세자가 한 여름 뒤주 속에서 굶어 죽는 비운을 보았다.

자신 역시 어렵게 왕이 되었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과 싸워야 했던 점을 보면, 논리적으로 상대방 세력을 누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할아버지 영조와 같이 조선 중기 이후부터 누적되어온 많은 문제점들을 개혁하고자 했던 개혁군주였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문체반정이다. 이를 보는 시각은 정조의 정치적 판단이라는 주장과 국문학의 암흑기라고 보기도 한다. 즉 조선후기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보여준 소설체 형식과 해학적인 표현이 정조의 탄압으로 쇠퇴하였다는 것이다.

정조는 문체는 정치현실과 관련 있다고 보고, 당시 유행하는 소설체 형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전에 나오는 고문(古文)의 문체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변해가는 사회를 공자나 주자의 시대로 되돌려는 정책이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강하였다.

고문의 형식을 잘 알 수 있는 것으로 과거 시험 답안지나 상소 등이 있다. 여기서 문장은 일률적인 형식과 경전의 중요한 문구들을 인용하여야 격조가 높은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조선후기 사회의 변화로 과거답안지에 소설류의 문체가 유행하고, <삼국지연의>, <수호지> 등 흥미를 위주로 하는 소설류의 책이 유행하였다.

소설류의 책들은 읽기 쉽고, 재미있으며, 글의 형식이 자연스러웠다. 성현의 말씀보다는 이야기류를 더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조는 이러한 책들은 세상을 나쁜 곳으로 변화시킨다고 생각하여 금지시킨 것이다.

정조는 명·청나라의 소설류 책의 수입을 금지하는 한편 사서삼경 중 지금의 문고판 형식의 책까지 수입 금지시켰다. 즉 성현의 말씀을 누워서 보는 책은 불경하다는 것이다. 문체를 바로잡기 위하여 과거 답안지 중 형식에 어긋난 경우 채점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또한 정조 16년 5년 전(정조 11) 연애소설을 읽다가 들킨 관료 이상황과 김조순으로 하여금 반성문을 제출하게 하였다. 또한 당시 소설체 문체를 유행시킨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에게 반성문의 제출을 요구하였다. 이에 박지원은 정조에 대한 칭송과 자신의 책이 젊은 날의 치기라고 하면서 반성문을 제출하였다. 물론 관직은 유지되었지만 이후 별다른 작품은 없었다.

여기에 걸려든 대표적인 사람이 이옥이었다. 정조 16년 10월 과거에서 이옥이 소설 문체로 답안지를 제출하자 이를 문제 삼아 사육문(四六文) 50수를 짓게 하고, 문체를 고친 후 과거를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옥은 자신의 문체를 고수하다가 과거 자격 박탈, 두 번의 수군의 편입 등 고초를 겪었지만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살았다.

최근 법원에서 출판사가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저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한 것은 저자의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보고 배포를 금지시켰다. 문제가 된 것은 현 정부가 기존의 한국근현대사의 내용이 좌편향적이며 반시장적인 내용이 많다는 이유로 수정을 지시하면서 부터이다.

학자들은 `다양한 교과서 발행’이라는 근본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하였지만 작년 12월 수정 출판되었다. 여기서 정부의 수정 지시 권한이 어느 선인가하는 문제다. 교과부가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수정을 명할 수 있다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저자와 출판계약 조건 등을 근거로 출판사가 임의로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다.

반대로 교과서의 저자들은 정부가 마음대로 교과서의 내용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법원은 교과부는 검정 합격을 취소하거나 발행정지를 명령할 수는 있어도, 임의로 교과서를 수정해서는 안 된다, 라고 판결하였다.

물론 교과서에 실린 글은 모든 면에서 누구나 본받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저자의 동의 없이 수정될 수 있는가? 그 내용과 형식, 문체를 강요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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