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동구나무는 기다리고 있다
<대구논단>동구나무는 기다리고 있다
  • 승인 2009.09.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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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일전 벌초를 위해 고향 마을에 들렀더니 어김없이 아름드리 동구(洞口)나무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무 밑에서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나무에 기대어 멀리 읍내를 바라보는 사람도 없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이 나무 아래에서 누구를 만나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떠나고 마을이 비게 되자 이 그늘을 찾는 사람들이 자꾸만 줄어들고 말았다. 연전에 경기도 수원 어느 공장 마당의 큰 느티나무 밑에서 반가운 잔치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새삼 떠오른다. 공장이 들어서기 전 이곳 마을에 살던 정겨운 이웃들이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나 서로 끌어안으며 등을 쳤다는 것이다.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와 큰 공장이 들어서게 되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으나 동구나무인 이 느티나무만큼은 보호해 주도록 부탁하였고, 공장에서는 이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이 나무 밑에 모여 옛정을 되새기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나무가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옛 농촌 사회에서 동구나무는 마을 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의 건강과 소원 성취를 비는 신성한 기도의 대상이었고, 마을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맨 먼저 모이는 피난처였으며 해결 본부였다.

또한 시원한 그늘 밑은 농부와 길손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쉼터였고,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이자 마을 어른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배움터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길을 떠나는 가족들을 보내고 기다리는 이별과 만남의 광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도 마찬가지였다. 아랫마을에서 윗마을로 올라가는 봇둑에 큰 느티나무가 두어 그루 서 있었는데, 여름이면 그 나무 밑에서 연로하신 어머니가 땀을 식히셨고, 도회지로 공부하러 나가는 자식을 배웅해 주셨다. 그 나무가 있으므로 하여 고향은 한층 더 정겨웠다.

그런데 갈수록 나무들은 쇠약해지고 있었다. 입구의 느티나무는 그런대로 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맨 안쪽에서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던 왕 버들은 그렇게 커보이던 둥치도 한 아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데다 푸석거릴 정도로 말라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냇가에 줄지어 서있던 왕 버들 숲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사람과 더불어 나무들도 떠나는 중이었다.

시인 정지용은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중간 줄임) //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냐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라고 읊어, 돌아 온 고향은 언제나 예전 같지 않다고 노래하였다. 만약 울창한 숲이나 큰 나무가 있었다면 그의 노래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언제 돌아와도 고향이 고향 같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사람이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정겨운 이웃이 있으면 그곳이 비록 객지일지라도 고향과 다를 바 없어진다. 그러나 흘러가는 사람을 어찌 잡을 수 있으랴. 이는 우리의 애타는 바람일 뿐이다.

옛 시인 두보(杜甫)는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이라고 노래하였다. 비록 사람은 떠나가도 산천초목은 변함없으며 도리어 무성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무성했던 숲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낯선 공장이 들어서서 기계소리를 울리고 있거나 대형 창고가 들어서 골목을 삼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 그렇게 많이 다녔던 길이 지금은 잡초로 뒤덮여 이곳이 과연 길이었던가를 의심하게도 한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의 고향 마을에 큰 동구나무를 다시 세우고 정성 들여 가꿀 일이다. `언덕이 있어야 등을 비빈다’고 하였다. 정감 있는 나무라도 한 그루 있어야 사람들은 이 나무와 더불어 떠난 사람들을 더욱 그리워하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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