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대구 수성구청 주민생활지원과에는 한 통의 반가운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 달라’며 해마다 쌀을 기증하는 ‘수성구 키다리 아저씨’의 전화다.
‘수성구 키다리 아저씨’는 지난 22일에도 수성구민운동장 주차장으로 주민생활지원과 직원을 불러 쌀 1천포를 전달했다.
수성구청 직원들이 이 얼굴 없는 독지가를 ‘키다리 아저씨’로 부르게 된 것은 처음 구청을 방문해 쌀을 기증한 2003년부터다.
직원들이 선행을 알리려 했지만 한사코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서 그때부터 외소한 체격의 80대 중반의 독지가를 희망을 나눠주는 ‘키다리 아저씨’로 부르게 된 것.
키다리 아저씨는 6년전부터 구청에 쌀을 전달하기 전, 늘 똑같은 조건을 얘기한다.
‘쌀을 받게 될 수혜자가 직접 나와서도 안 되고 자신의 신분이 언론에 공개되면 그날부터 쌀을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쌀도 직접 트럭에 싣고 오면서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달라’는 주문 외에는 일체 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다.
쌀을 전달하는데 꼭 필요한 직원들을 제외한 간부 공무원이 현장에 나오는 것도 키다리 아저씨는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2005년 연말에는 당시 구청 복지행정과장이 주민들을 대신해 인사를 전하려고 현장에 갔다 “여기 나올 시간 있으면 다른 이웃들을 돌보라”며 호통 치는 바람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키다리 아저씨가 매년 쌀을 트럭에 실어오는데에도 이유가 있다. 어렵게 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얼굴 없는 키다리 아저씨는 지금까지 모두 1억 5천만원 정도의 쌀을 수성구청에 기증했다.
아흔이 된 올 해에도 “더 많이 (기증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매년 쌀을 기증할테니 (절대 신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나 잘 지켜라”고 당부했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쌀을 받으러 가서 ‘수성구 키다리 아저씨’를 처음 뵙게 됐는데 외소하고 검소한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며 “자신의 선행을 알리지 않고 아흔의 연세에도 매년 이웃을 돌보는 ‘키다리 아저씨’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성구 키다리 아저씨’는 평안남도가 고향이며 6·25전쟁으로 부산에서 잠시 머물다 대구로 올라와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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